동전의 양면과 같은 역사! 러시모어산 미국 대통령 석상
캐나다 로드트립을 마치고 밴쿠버에서 시애틀을 거쳐 미국으로 내려온 뒤 벌써 4개 주를 지나왔다. 캐나다를 횡단하는 동안 운전석이 계속 남쪽이라 몸의 왼쪽 부분만 탔다. 반대로 미국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을 하니 다행히 지금은 몸의 그 반대쪽을 태우고 있다. 부디 양쪽의 색깔이 비슷하게 탔으면 좋겠다. 피부는 이렇게 교대로 태울 수라도 있지만 안전벨트는 방향을 바꿔 멜 수 없다. 미국과 캐나다를 횡단하는 내내 안전벨트가 닿았던 왼쪽 어깨의 통증은 여행 후 6개월은 지속되었다. 미국 여행 후 다음 목적지가 운전석이 반대쪽인 호주라는 게 참 다행이었다. 오늘 와이오밍주를 벗어나 다섯 번째 주인 사우스 다코다주로 들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주 초입에 위치한 러시모어산의 내셔널 파크(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에 들릴 예정이다. 산에 역대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거대한 크기로 조각해 놓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가이드북이 없어서 그런지 여행이 더 심플하고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곳곳에 설치된 표지판에서 지역과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휴게소와 함께 자리한 인포메이션 센터에는 지역의 지도와 볼만한 곳을 정리해둔 가이드북을 항상 무료 배포하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는 경우도 많다. 공사 현장을 만나면 한참을 대기하는 경우도 많은데, 한국처럼 "빨리빨리"문화가 없는 미국과 캐나다는 아예 시동을 끄고 10~20분을 기다기도 한다. 안전 요원이 시동을 끄고 기다려도 좋다 말하면 짧게 끝날 대기는 아니므로 안전요원과 본격적인 수다를 떨기도 한다. 공사장 인근에서 교통 통제를 하는 일을 북미에선 성별과 나이 구분 없이 하는 편이다.
이 아주머니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짧지 않은 거리를 자차로 출퇴근한단다. 화장실도 없고 편하게 밥 먹을 곳도 없어 힘들 것 같은데 표정은 밝기만 하다. 참고로 이날 자동차 계기판이 가리키는 실외 온도는 42도였다. 유쾌한 이야기를 나눈 아주머니와 헤어질 때 나는 아껴두었던 오리온 초코파이를 하나 건네주었다. 땡볕에서 고생하는 게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특유의 유쾌함 때문에 이야기를 나눈 잠깐 동안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게 바로 한국의 정(情)이니까.
보통 왕복 2차선 도로를 공사해야 할 때, 한쪽 차선은 막고 다른 한쪽 차선은 양방향 차들이 교대로 이용해서 사용하게 되는데, 이때 안전요원이 양쪽에 배치되어 차량 통행을 통제한다. 수 킬로미터 전부터 공사를 알리는 안내판과 함께 줄어든 임시 규정속도가 표시된다. 서서히 속도를 줄이다가 정지 싸인을 들고 있는 안전요원을 마주하면 그 앞에 정지하면 된다. 공사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가끔은 캄보이(convoy) 차량이 와서 인솔을 하기도 한다. 위험을 앞에서 미리 감지하거나 규정속도를 지키기 위함이다. 공사 현장을 다 지날 때까지 캄보이 차량과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가면 되는데 어떤 곳은 공사구간이 수 킬로미터인 곳도 있다. 공사구간이 끝나면 캄보이 차량은 비상등을 켜고 갓길로 세우고 일반차량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수신호를 보내준다. 이때 나도 엄지를 치켜세워 고맙다는 인사를 절대 잊으면 안 된다. 나는 엄지를 쉽게 난발하는 아메리카의 문화가 너무 좋다. 소소하지만 이런 작은 의사소통이 도로 위를 더욱 훈훈하게 만든다. 마치 들이받을 것 같이 앞으로 끼어든 다음 비상등으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시 하는건 사실 그렇게 친근함을 표시하는 방법은 아니다.
산맥을 하나 넘고 있는 중인데 길은 꼬불꼬불해도 운전이 재미고 경치가 꽤 좋다. 북미 횡단을 처음 시작할 때는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여행을 마치고 생각해보니 여행 중 최대 위기가 바로 지평선이 1000km 넘게 이어졌던 캐나다의 중부지방이었다. 끝없는 고독함, 지루함의 싸움이었다고나 할까? 사람보다 가축들이 많이 보이는 중부지방을 2~3일 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는 누구인가?', '지금 여긴 어디인가?' 하며 강제 자기 성찰을 하게 된다. 사람은 역시 자신의 경험에 의해 방어기제와 캐릭터가 결정된다. 지평선이 보기 힘든 나라에서 자란 나는 지평선을 동경했지만, 질리도록 경험하고 나니 다시 고갯길이 그립니다. 굽이굽이 오르막길의 정상에는 항상 절경이 있고 그다음에는 내리막길이 이어진다는 것은 단순한 인생의 진리와도 같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답게 러시모어산을 오르기 전 꽤나 큰 마을을 만났다. 우리는 마을을 지나쳐 곧장 조각상이 있는 러시모어산으로 향했다. 중턱 정도 올랐을 때 그 웅대한 조각상들이 실제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으로는 많이 봐왔던 익숙한 그 조각상이다. 어느 랜드마크나 그렇지만 사진으로 흔하게 보던 것들을 실제로 마주할 때 제일 큰 관건은 역시 그것의 크기이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시작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등 4명의 대통령 얼굴이 새겨져 있는 이 조각상은 얼핏 봐도 정말 크다. 사람 얼굴을 산에다가 세길 생각을 하다니 미국애들도 참 대단하다. 1927년에 작업이 시작된 이 조각상은 1941년까지 400명에 가까운 조각가들이 동원되어 진행되었으나 자금난에 의해 중지되었다. 그래서 상반신을 모두 조각하려 했던 원래 계획과는 달리 두상만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 유명세만큼 공원의 입구에는 인파로 가득했다. 높게 쌓인 돌담과 힘차게 휘날리는 깃발들이 그들이 바라는 미국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지나왔던 국립공원들의 주인이 자연 그 자체였다면 이곳은 반대로 우리가 여행 중 만난 가장 인공적인 국립공원이었다.
원래 러시모어산은 라코타 인디언들에게 '6명의 할아버지들'이라고 알려진 성스러운 장소였기 때문에 선정 당시에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미합중국은 1868년 래러미 요새 협약을 어기며 이 땅을 징발해 갔고, 많은 미국 원주민들은 이러한 행동과 이 산이 미국 대통령을 조각한 기념물이 된다는 사실을 모욕으로 간주했다. 러시모어 산 근처의 산 중턱에 거대한 크레이지 호스(라코타 인디언 부족의 추장) 조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며, 완성되고 나면 이것은 보글럼의 작품(대통령상)을 추월할 것이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유적 1001 중 발췌>
역사를 잠시 치워두고 보자면 참 흥미로운 조각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배경을 알고 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때 말싸움 끝에 "네 맘만 있어? 내 맘도 있거든!" 하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는 하지만 21세기에는 패자를 포옹하는 것이 승자의 미덕이다. 두 번의 큰 세계전쟁을 거치면서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거나 죽이면 안 된다는 윤리가 우리 마음속에 자리를 잡은 지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놀랍게도 탐욕스러운 인간의 차별과 전쟁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개인이던 국가던 부끄러운 과거 몇 개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실수를 하지 않는 것도 중요 하지만 이미 벌어진 과거의 실수를 대면하는 태도 역시 상당히 중요하다. 세계 2차 대전 후 독일과 일본의 정부가 보이는 서로 다른 태도만 봐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느 쪽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지구의 배꼽이란 별명으로 호주의 상징이 된 울루루 역시 원래 그 땅에 살던 원주민들의 신성한 집과도 같은 곳이라 해서 현재는 울루루에 오르지 말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울루루는 정복할 대상이 아니다"라는 캠페인을 펼치며 등반보다는 올레길처럼 그 주변을 돌며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할 것을 권하고 있다. 울루루의 정상에서 바라는 풍경을 기대하며 열흘 넘게 달려간 나는 등반 대신 "등반포기 지지서"에 서명을 하고 돌아왔다.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현재 우리의 평화를 위해 밟고 올라섰던 사람들의 과거 희생이다. 승자의 모뉴먼트 앞에서 자기 것을 지키려 맞섰던 희생자들의 숭고한 마음을 가슴에 새기며 우린 러시모어 산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