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운다. 사막의 밤은 왜 추운지. 사막은 햇빛의 열을 오랫동안 품지 못해 금방 식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막은 낮에 덥고 밤은 춥다.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여행하며 실감하는 일은 즐겁다. 평생 써먹을 때 없을 줄 알았던 것들을 한 번이라도 써먹을 수 있어 기쁘다. 아침에 일어나 텐트를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 모든 불편을 감수할 만큼 멋진 전망의 캠핑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미국 서부의 전형적인 풍경이었다.
줄리도 기상하여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오늘도 갈 길이 멀다. 이제 정말 여행 막바지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조금 타이트하게 일정을 감행해야 할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5일 안에 다시 캐나다에 도착해야 하고 열흘 뒤면 우린 호주에 있을 예정이니까. 그래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잊지 않는다. 커피를 끓이고 마시는데 걸리는 약 10분, 이런 작은 사치가 여행과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커피와 함께 잊지 못할 풍경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는다.
우리는 오늘 옐로우스톤을 지나느라 잠시 벗어났던 90번 도로를 다시 만난다. 그리고 가던 길을 쭈욱 따라서 역대 대통령들의 거대한 얼굴 조각으로 유명한 러시모어산으로 향한다. 나무 한그루 없는 산은 척박해 보였지만 길은 넓고, 차는 적어 묘한 풍요로움이 교차했다. 이제 미국을 떠올리면 화려한 고층 빌딩이 아닌 이런 풍경이 떠오를 것만 같다. 작은 마을을 지나고, 어제 묵으려 했던 작은 도시를 지나고, 또다시 시골을 지난다. 우리가 어제 하룻밤을 묵었던 협곡들을 여전히 백미러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어제 저 산 넘어 언저리 어디선가에서 하룻밤을 잔 거야", "응! 풍경이 진짜 끝내줬지...ㅎㅎㅎ". 어제 일을 마치 오래전 일처럼 회상하며 우리는 그 환상의 협곡과 멀어져 갔다. "와~ 공항이다!?" 도로가에 보이는 어느 시골의 한 공항에서 옛 군용기처럼 생긴 비행기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상당히 미국스러운 풍경들을 예상치 못한 채 자주 만났고 덕분에 지루할 틈 없는 로드트립이었다. 멋진 풍경일 수도 있고, 마을일 수도 있고, 멋진 자동차일 수도 있다. 잦은 빈도로 감탄 거리를 계속 만나게 되는 미국 여행이었다.
때로는 거대한 집 한 채가 도로 위를 달리는 풍경도 볼 수도 있다. 갑자기 사이렌을 킨 승용차가 다가와 주의를 주길래 갓길 쪽으로 차를 세웠는데 그 뒤로 2차선의 도로를 모두 차지하는 크기의 집을 기다란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미국은 땅이 크니까 집을 짓는데 필요한 자재와 인부들을 옮기는 대신에 한 곳에서 집을 뚝딱뚝딱 만들고 완성품을 통째로 옮겨버리는 게 더 효율적인 건가? 왠지 이런 게 미국이나 중국 같은 대국만 할 수 있는 발상인 듯하다. 이럴 땐 그냥 헛웃음을 지으며 엄지 척을 한번 해주면 된다.
대국 스타일의 이사를 구경하고 한동안을 또 여유롭게 달리다 보니 이번엔 예고 없이 또 협곡이 펼쳐진다. 길의 폭이 좁고 고불고불해질수록 풍경은 더욱 멋있어진다. 때마침 햇빛의 방향까지 연출한 듯 드라마틱하다. 그 풍경이 절정에 이른 느낌이 왔을 때 우리는 잠깐 쉬어갔다. 협곡의 정상에서 맞이하는 잠깐의 꿀 같은 휴식 시간.
이번 캐나다와 미국을 달리는 북미 횡단 여행은 총 20일의 일정이다.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20일은 미국과 캐나다를 모두 돌기에 상당히 빠듯한 시간이었다. 일정이 조금 더 있었다면 시애틀에서 미국의 서해를 타고 캘리포니아와 LA까지 내려가서 서부의 낭만을 즐기고 라스베이거스와 애리조나, 그랜드캐년 등을 거쳐서 캐나다로 돌아왔을 것이다.
일정상 그랜드캐년을 포기했던 일이 가장 아쉬웠는데, 어제오늘 예고 없이 협곡을 원 없이 만난다. 사진 찍는 건 좋아해도 찍히는 건 싫어하는 내가 수줍게 카메라를 줄리에게 내밀었다. 가이드북이 없어 협곡의 이름도 몰랐고 다시 찾아가라고 해도 못 찾을 확률이 높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는 이곳이 인생 최고의 협곡이었다.
여행은 그런 거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그만큼 무언가를 다시 얻고, 매 순간 하는 작은 선택들에 따라 무엇을 잃고 얻는지 달라지겠지만, 인생에 마냥 지는 게임은 없다. 나는 오늘도 예상치 못한 큰 것 한방을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