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
우리는 미국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서쪽 입구로 입장해서 간헐천들을 구경한 뒤 동쪽의 출구로 퇴장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동거리가 100km가 넘는다. 전체 크기가 우리나라의 경기도와 맞먹을 정도의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은 와이오밍주와 몬태나주, 아이다호주까지 세주에 걸쳐있다.
자연의 아름다음을 규모로만 따지긴 어렵다. 우리나라는 또 그것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조상들은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부르지 않았던가. 우리도 그것들을 조금 더 소중하게 다루고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국립공원을 나오니 뉘엿뉘엿 해가 질 시간이다. 이동하는 중에 오늘 밤 잘 곳을 찾아야 한다. 얼마나 더 달릴 수 있을까 상의하면서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풍경이 심상치가 않다.
시야에서 나무들이 점점 사라지더니 협곡이 펼쳐지고 길이 굽이굽이 그 사이를 흐른다. 가이드북이 없다 보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이곳의 지명도 역사도 잘 몰랐지만 풍경만으로만 놓고 보자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못지않았다. 간헐천 투어를 마치고 '오늘 하루가 다 끝났다'하며 긴장이 풀릴 때쯤 갑자기 이런 풍경이 이어지니 왠지 감동이 두배가 되었다. '정말 이런 광활한 자연에서 하룻밤 자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쯤 거짓말처럼 캠핑장 하나 나타났다. 원래 가려고 예정했던 캠핑장이 아직 50km 이상 남았는데, 해도 뉘엿뉘엿 져가니 우선은 한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여행자에게 잠자리는 매우 중요하다. 글로벌 호텔 체인들이 세계 각지에 있는 자신들의 호텔을 비슷한 동선으로 꾸미는 것 역시 사용자가 언제 어디를 가던 비슷한 환경 속에서 집 같은 익숙함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안락한 시설도 중요하지만 결국에 잠자리는 마음의 안정 또한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캐나다와 미국 횡단 여행을 하는 동안 주로 국립공원의 캠핑장이나 KOA라는 미국 브랜드의 캠핑장에서 주로 캠핑을 했기 때문에 매일 바뀌는 잠 자리안에서도 어느 정도 일정한 느낌의 안정감을 느꼈다.
반면 주립공원이라는 표지판과 가격만 덜렁 적혀있는 이 캠핑장의 매표소에는 직원조차 없었다. 봉투에 입장료를 넣어서 수거함에 넣으면 셀크 체크인이 완료된다. 와이파이는커녕 전화가 아예 터지지를 않고 화장실은 너무 멀었다. 관리인의 숙소로 보이는 건물이 캠핑장 한쪽에 있었으나 인적은 없고, 약간의 기부를 하면 원하는 만큼 가져다 쓸 수 있는 장작이 옆에 쌓여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확인하는 사람은 없지만 입장료를 지불하고, 하룻밤을 날 만큼의 땔감도 기부를 한 뒤 가져왔다. 온수가 없고 화장실도 재래식인 캠핑장은 여자들에게는 다소 가혹한 캠핑 환경이다. 그러나 하룻밤 씻지 않는 값으로는 경치가 너무 멋졌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밤을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산 뒤로 넘어가는 햇빛이 구름을 만나 갈라지면서 마치 산 뒤의 후광처럼 느껴졌다. 마치 저 산 뒤에 천국이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린 오늘 밤 천국을 뒤에 두고 자는 거야. 천국에선 씻을 필요도 없으니 샤워장도 없지ㅎㅎ"
오늘은 저녁 메뉴를 특별히 준비할 시간이 없어 아이스박스에 남아있던 모든 음식을 그릴에 구워본다. 하지만 좋은 풍경을 안주삼아 먹으니 소시지도 너무나 근사한 요리가 되었다. 캠핑장을 둘러싸고 있는 협곡의 풍경은 캠핑장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고 정말 멋있었다. 이번 여행에 그랜드캐년을 여행할 수 없어 너무 아쉬웠으나 지금 느끼는 그 감동은 그랜드캐년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 캠핑장의 진가는 날이 저물자 발휘되었다.
해가 완전히 들어가고 잠시 암흑이 세상을 뒤엎나 했는데 잠시 후 별천지가 펼쳐졌다. 척박한 미국 서부의 땅으로 온 세상의 별이 쏟아질 것 같이 흐르는데, 비 오는 날 차창에 흐르는 빗물만큼 많은 별똥별이 밤새 떨어졌다. 캠핑장에는 그 흔한 가로등 하나 없었지만 덕분에 하늘에 별자리 지도를 하늘에 펼쳐놓은 듯이 모든 별들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보였다. 달과 별 만으로도 가로등이 필요 없는 캠핑장이었다. 북두칠성은 물론이고 은하수도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했다. 혹시나 자는 동안 별이 텐트 위로 쏟아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별을 보면 외갓집 옥상이 생각난다. 외갓집에는 옥상이 있었는데, 여름밤에는 자주 옥상 평상에 앉아 외할머니랑 외삼촌이랑 별을 보고는 했다. 살면서 여유도 많이 잃었지만 더 이상 서울 하늘에선 별을 보기도 힘들었다. 별을 보려 떠난 여행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많은 별을 보니 그동안 잊고 살았던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소중한 것들은 이미 내가 모두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간헐천의 분출도 그렇고 오늘은 정말 길이길이 기억에 남을 자연 속에서의 낮과 밤이다. 이런 곳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낼 수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