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은 미국에서의 첫 캠핑을 했다. 생각보다 안락한 잠자리에 편안한 밤을 보냈다. 캐나다의 캠핑장과 미국의 캠핑장은 그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는데, 이 글의 연재 끝에 여행 중 묵었던 캠핑장 이야기만 쭈욱 모아서 글을 한편 써보려 한다. 미국에서는 거의 KOA라는 캠핑장 브랜드만 이용하게 되었는데, 시설이나 운영방식 모두 너무 마음 들었다. 미국 횡단 막바지에는 KOA라는 노란색 간판만 봐도 집에 온 거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늘은 또 열심히 장거리를 달리는 날이다. 벌써 여행 14일 차로 이번 여정의 중반을 넘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90번 도로를 따라 쭈욱 달리다가 간헐천으로 유명한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들릴 예정이다. 가이드북도 없는 우리는 오늘 목적지 역시 구글맵을 이용하여 찾았다. 우리의 루트 위에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 상당히 흥분했다. 간헐천은 화산활동으로 데워진 뜨거운 물과 수증기가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분출하는 온천이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는 화산활동의 증거이자 지구의 숨구멍 같기도 한 이 간헐천이 200개 정도 있어 유명하다. 말로만 듣던 그 간헐천을 오늘 드디어 내 눈으로 확인한다. 미국에는 정말 없는 게 없다. 미국 애들이 왜 굳이 세계여행을 하지 않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거대한 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바다다, 사막과 협곡, 간헐천까지 인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대자연의 풍경들까지 모두 가지고 있으니 굳이 다른 나라에 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실제로 캐나다에 사는 동안 인생의 대부분을 나고 자란 곳에서 보내는 현지인들을 꽤 많이 봤다. 최대한 비행기를 많이 타려 하는 우리랑은 조금 상반된 모습이라 놀랐다. 대학이나 고등교육을 잠시 외지에서 받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여생을 그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고향에 대한 애정이나 자부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대로 자국을 로드트립 하는 여행자들은 정말 많이 만날 수 있다. 자동차는 물론이고, 캠핑카, 자전거, 오토바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여행을 한다. 특히 옐로우스톤에 거의 다 다르자 정말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 모여들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들린 주유소에서부터 이미 여행자들의 냄새가 난다. 날씨 때문인지 오늘은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는 그룹 여행자들을 특히 많이 만났다. 여행 중에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는 것은 항상 유쾌하다. 여행 일정이나 정보를 공유하며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 유대감을 느낀다. 도로 위에서 만나는 여행자끼리 나누는 간단한 손인사에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큰 힘을 얻기도 한다. 특히 북미에서 오토바이는 대부분 취미나 여행을 위해 타기 때문에 맞은편에서 오는 오토바이 여행자들을 만나면 손인사를 하거나 가끔은 창문을 열고 엄지 척을 해준다. 할리를 탄 오토바이 여행자들을 만날때마다 내가 지금 미국횡단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거 같아서 항상 고맙다. 나는 자동차 여행자지만 그들 역시 나에게 엄지로 화답할 때 그 소름은 해본 사람만 안다. 짧은 교감이 큰 감동과 격려가 되는 것 역시 여행이 주는 여유 또는 관대함 때문이다.
드디어 옐로우스톤으로 들어가는 관문을 만났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은 그대로 관통하는데만 100km가 넘는다. 하루, 이틀 만에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다 본다는 건 무리가 있다. 그래서 일정이 빠듯한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 "옐로우스톤에서 제일 큰 간헐천(Old faithful Geyser)을 보는 것". 운이 좋으면 오늘 밤을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안 캠핑장에서 묵을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이미 우리를 위한 잠자리는 없었다. 미국은 역시 캐나다와 인구 밀도가 다르다. 알려진 곳에 방문한다면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공원에 입장하자마자 야생동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곳곳에 차들이 정차하여 풀을 뜯고 있는 야생동물들을 보고 있다. 아이들은 신기한 광경에 마냥 신이 났다. 동물도 아이들도 겁이 없다. 서로를 전혀 경계하지 않는다. 동물들은 먹고 자는 것에, 그리고 아이들은 그런 동물들에 오롯이 집중한다.
우리나라의 국립공원과 달리 캐나다나 미국 국립공원에 들어가면 사람이 객이 된다는 느낌이 확연하게 든다. 미국이 인구밀도가 높다는 건 캐나다에 비교했을 때이지 한국의 그것과는 또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국립공원에 (역시 상대적으로) 많은 인원들이 국립공원에 몰리다 보니 자연을 즐기러 온 건지 사람 구경하러 온 건지 구분이 안될 경우가 많다. 특히 단풍철에 단풍보다 알록달록한 등산복 때문에 패션쇼장에 온 느낌마저 든다. 로키산맥의 밴프 국립공원이나 옐로우스톤은 광활한 자연을 그대로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안에서 사람은 잠시 머물다 가는 말 그대로 손님이었을 뿐 그곳의 주인공은 야생동물들이었다. 사람이 지나는 곳에는 항상 쓰레기나 음식물 찌꺼기, 자동차 매연 등이 남기 마련이니 사람의 발길이 닿으면 모든 자연은 그때부터 본래의 모습을 잃기 시작하기 마련이다. 국립공원의 크기와 방문객의 수가 이 정도 비율은 되어야 사람에 의해 훼손이 된 자연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치유가 될 것 같다. 여담인데 예전에 한라산 백록담을 보고 내려오는데 쓰레기가 보이길래 하나씩 주머니에 주어 넣었다. 하산 한지 3분의 1도 되지 않아 금세 양쪽 주머니가 꽉 찼다. 산에 오를 때는 실수로라도 쓰레기가 날리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번 북미 횡단 여행을 통해서 자연 앞에 조금 더 겸손하게 사는 법을 배운 듯하다.
공원에 입장한 뒤로 길을 따라 조금 달리다 보니까 곳곳에 간헐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간헐천 근처에는 주차장이 잘 마련되어 있고 산책로가 잘 되어 있어 특별히 지도를 보지 않아도 스폿들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어떤 것은 꾸준히 활동하고 있고, 어떤 건 잠시 쉬고 있기도 했다. 이미 화산활동이 끝나고 물이 말라버린 곳도 있다. 간헐천이 신기한 이유는 지구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 깊은 곳에서 화산활동이 진행되고 있고 그래서 땅의 어딘가는 끓고 있다는 뜻이다. 간헐천을 그것을 증명하는 지구의 숨구멍이라 할 수 있다.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광경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니 살아있는 지구를 더욱 실감하여 흥분되었다. 유황 특유의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하지만 오묘한 컬러는 정말 아름답다.
옐로우스톤의 여러 간헐천 중 역시 제일 유명한 곳은 "Old faithful Geyser"이다. 평균 1시간 간격으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분출을 하는데 그 높이가 60미터를 넘는다. 입구에 들어올 때 직원에게 물어보면 전화번호를 하나 주는데 전화번호를 누르면 자동응답기가 간헐천이 터지는 예상시간을 알려준다. 그 앞에는 레스토랑과 기념품샵을 포함한 휴게시설이 있어 간단한 식사와 쇼핑이 가능하다. 우리는 따로 시간을 확인하고 가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두 초집중 상태로 간헐천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니 간헐천이 곧 터질 시간인 것 같았다. 우리도 숨을 죽이고, 모든 사람들과 한마음이 되어 간헐천을 바라본다. 그 간절한 마음들이 간헐천에 모아졌다. 고요하던 간헐천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더니 이내 굉음을 내며 터졌다. 그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두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면서 기뻐했다. 기다림의 시간은 제각기 달랐겠지만 감격한 마음을 담은 탄성의 크기는 너나 할 것 없이 같았다. 타임스퀘어 앞에서 하는 뉴 이어스 데이 카운트다운처럼 옆사람과 포옹이라도 나누어야 할거 같은 분위기였다. 간헐천은 5분 안팎으로 굵은 물줄기를 분출해되는데 그 자연 분수는 정말 죽기 전에 꼭 한번 봐야 할 장관이다. 간헐천이 터지는 순간은 환호와 셔터 소리로 주변이 어수선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사람들은 이내 차분해지고 경건한 마음으로 신비한 자연의 힘을 바라본다. 간헐천의 분출 활동이 끝나면 그 많은 인파들이 순식간에 일사불란하게 사라지는 광경 또한 매우 흥미롭다. 5분여의 짧고 굵은 관람시간이 조금 허무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터지는 순간의 그 짜릿함은 직접 봐야만 안다.
오늘 계획했던 가장 큰 미션을 클리어했으니 휴게실에서 정말 오랜만에 외식을 한다. 그리고 이 시간쯤에 밀려오는 고민은 항상. '오늘 밤 우리 어디서 자지??'이다. 매일매일 어디서 자야 할지를 고민하는 떠돌이 여행자 신세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다. 인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진기한 것들을 매일 보며 기분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옆자리에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귀여운 할머니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내 카메라에 담아본다. 그리고 오늘 하루 얼마나 우리가 러키 했는지를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