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제 여행, 하루 8시간만 운전합니다.

90번 도로를 따라 미국 횡단 시작

여행에도 밸런스가 중요하다. 자동차가 생긴 뒤로, 비행기표가 저렴해질수록, 인류는 더욱 멀리 여행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여행지까지 이동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힘들게 얻은 휴가 비싼 돈 들여서 해외까지 갔는데 이왕이면 우리는 되도록 많은 것을 보고 돌아오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그러나 그 욕망을 조절하지 않으면 몸은 피곤하고 느끼는 것은 없는 여행이 되기 쉽다. 가이드북이나 여행사에서 제시하는 관광지를 일정에 많이 끼어 넣으면 넣을수록 "여행"이 아닌 흔한 "관광"이 될 뿐이다. 여행의 밸런스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침 일찍 로맨틱한 도시 시애틀을 떠난다. 도시를 떠날 때는 항상 6시 전에 기상한다. 출근 시간의 교통정체를 피하는 게 자동차 여행 중 시간을 절약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떠나기 전날까지 그곳을 최대한 즐길 것. 그리고 아침이 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시를 떠날 것. 이 횡단 여행의 시작 날 몬트리올을 떠날 때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우리는 아침 6시에 시애틀을 떠난다.



지난 열흘 동안 캐나다 동부의 몬트리올에서부터 밴쿠버까지의 횡단 여정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첫날 오타와와 토론토 같은 대도시들은 최대한 그냥 지나쳤고 수세인트마리, 선더베이 같은 소도시를 몇 곳을 들렸다. 횡단 여행이 아니었으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곳들을 더 많이 보고자 익숙했던 온타리오주를 최대한 빨리 지나기 위함이었다. 기대를 품고 갔던 위니펙과 리자이나를 거쳐 캘거리까지 1,000km가 넘는 캐나다의 중부 평원지대를 달렸다. 한국에서는 보기가 힘든 지평선을 며칠 꼬박 보았다. 캘거리를 지나 로키산맥의 밴프 국립공원으로 들어오면서는 정말 멋진 산세를 만날 수 있었고, 그 좋은 기운을 받아 우리는 무사히 밴쿠버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몬트리올까지 돌아가는 앞으로 10일간의 미국 횡단 여정은 마치 캐나다 횡단의 데칼코마니를 역순으로 지나간다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먼저 로키산맥의 미국 부분을 다시 넘어야 하고, 1000km가 넘는 평원지대를 지나 시카고까지 갈 것이다. 그리고는 디트로이트와 나이아가라를 통해 다시 캐나다로 들어갈 생각이다. 캐나다보다 남쪽으로 더 내려와 미국 서부를 지나는 것이기 때문에 아마 더위와의 싸움이 될 것이다. 홈그라운드인 캐나다도 벗어났기 때문에 교통법규나 혹시 만날 사고들에 조금 더 긴장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미국 횡단을 하는 동안에는 90번 도로를 자주 애용하게 될 것 같다. 시애틀에서 시작된 90번 국도는 미국을 가로질러 동쪽의 보스턴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이 90번 도로를 타고 옐로우스톤 국립공원과 러시모어산, 시카고를 들릴 예정이다. 90번 도로는 루트 66처럼 유명한 도로는 아니지만 이국적인 뷰와 캐년, 국립공원 등을 끼고 있어 한번쯤 달려볼 만하다.


시작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처음에는 캐나다와 비슷한 풍경이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완전 다른 미국 서부의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서부의 황량함에 하늘마저 건조하게 보였다. 사진으로만 듣던 미국 서부의 이국적인 풍경이다. 말 그대로 광활하고 황량했다.


_MG_4701.JPG
_MG_4707.JPG


잠시 들린 흔한 미국의 휴게소 풍경조차 범상치가 않다. 휴게소 안의 사람들의 마치 세상의 마지막 인류인 것처럼 느껴졌고 그 외의 풍경은 너무나 적막했다. 문득 여기서 누구 하나 갑자기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거 같아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황량한 곳까지 길을 내고, 전기를 끌어오고, 휴게소까지 만들어 놓은 인간이 잠깐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저 넓은 풍경 안에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극히 일부분인 것을 보면 자연은 더욱 위대하다. 자연을 모두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오만일 뿐이다.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숭고라는 감정은 무기력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왜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사실 로드트립을 하면서 제일 보고 싶었던 풍경 중 하나가 이런 것이었다. 아마도 지평선으로 둘러싸인 평원에 홀로서 두려움과 성취감을 동시에 맛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출발하는데 계기판 실외 온도계가 40도를 가르친다. 캐나다 밴프 국립공원에서 느낀 청량함이 아직 몸에 남아서인지 우리가 지금 여름의 정 중앙에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차 안의 에어컨에서도 40도의 열기가 느껴지는 거 같아 자주 수분을 보충해주었다. 장거리 로드트립에서 수분 섭취를 위해서는 직접 물을 마시는 것도 좋지만 과일을 먹어주면 더 좋다, 무언가를 씹는 것이 운전 중에 졸음을 쫓아주는데, 껌보다는 과일이 시원한 느낌도 들고 수분 함유량이 높아 우린 청포도나 방울토마토 같은 과일과 채소를 운전 중에 자주 먹고는 했다.



_MG_4785.JPG
_MG_4780.JPG


차를 타고 가는 중 대부분 음악을 듣거나 줄리와 이야기를 하지만, 도시가 가까워지면 인터넷에 그 도시를 검색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이드북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짧게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아는 도시보다 모르는 도시가 더 많았고, 그래서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재밌는 게 있으면 작은 도시라도 쉬어 갈 겸 들러 구경하고 가고는 했다. 글로벌 시대가 되면서 세계의 도시들이 모두 비슷비슷 해지고 있다. 그래서 여행 가면 "여기 어디 같다"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한국도 이제는 서울보다는 지방에서 한국적인 모습을 많이 찾을 수 있듯이 미국도 작은 소도시에서 미국의 전형적은 느낌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산업화와 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미국 특유의 모더니즘이 미국의 뿌리인 유럽의 흔적과 병합되어 형성된 전형적인 미국의 느낌을 작은 도시들에서는 아직 찾을 수 있어 좋았다. 마치 옛날 미국 영화에서 보던 한 장면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그 짤막한 공부와 휴식을 통해 "지극히 미국스러운 풍경"이란 대도시의 빌딩 숲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열심히 달리다 보면 퇴근시간이 다가오는데, 그 말은 곧 오늘 밤 잘 곳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캐나다를 가로질러 오는 동안 제법 로드트립에 노하우가 생겼다. 나름의 루틴과 여유가 생긴것이다. 해가 지기 전에 캠핑장을 찾고, 저녁을 차리고 식사 후에는 나름의 여가시간을 보낸다. 맥주를 한잔하기도 하고, 캠핑장을 산책하고, 모닥불을 피며 그날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나름 하루 8시간 노동에 주말은 쉬는 주 5일제 여행이라고나 할까? 저녁 시간을 잘 보내야 하루 여행의 만족도가 높고 다음 날도 즐겁게 여행할 수 있다. 인생이던 여행이던 그런 밸런스는 매우 중요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