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횡단 로드트립의 시작, 가자 시애틀로!!
4천5백 킬로미터를 직접 운전하고 온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인상을 주었던 캐나다의 밴쿠버. 그곳을 오늘 떠난다. 밴쿠버는 지역 주민, 상인, 예술가들이 상생하는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개인이 가진 부의 크기와 상관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며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삶에 대하여 고민하는 복지사회였다. 캐나다를 그리고 밴쿠버를 왜 매년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와 도시로 선택하는지 그 이유를 격하게 공감하고 떠난다. 어떤 세상이 좋은 세상인지, 나는 그 안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윤곽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다. 이로써 이번 여행의 1막이었던 캐나다 횡단 로드트립이 끝나고 시애틀, 옐로 스톤, 시카고, 디트로이트를 거치는 이번 여행의 제2막, 미국 횡단이 시작된다.
오늘은 밴쿠버에서 차로 국경을 넘어 미국 시애틀로 갈 예정이다. 북미 대륙을 양분하여 위로는 캐나다 아래로는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캐나다의 유일한 인접국으로써 많은 캐나다의 대도시들이 미국 국경으로부터 100km 안팎에 위치해 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겨울이 길고 추운 자연환경 탓에 최대한 남쪽에 자리를 잡은 이유도 있지만, 많은 산업들이 미국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유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두 나라 모두 영국에서 넘어온 이민자가 세웠고, 그래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건국 배경, 정치이념, 정책 등이 매우 다르다. 미국은 개인에게 주어지는 커다란 자유의 크기만큼 그 책임 또한 무겁다. 반면에 캐나다는 북유럽의 국가들과 비교될 정도의 복지국가이다.
나에게 미국은 그동안 뉴욕, LA, 시카고 같은 몇몇 대도시의 이미지로 대변되어 왔다. 거대한 나라 미국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아는 것이 많이 없었다. 어릴 때는 미국과 외국이 동의어인 줄 알았다. 미국에 사는 아버지의 친구분이 매년 한번 한국에 올 때마다 사다 주셨던 달콤한 초콜릿과 캔디, 그리고 보드게임들, 그것이 내가 어릴 적 가진 미국의 이미지였다. 맥도널드와 스타벅스의 나라. 할리우드의 영화에서 보던 그 나라. 이번 여행을 통해 이미지 속에만 있는 미국에 대한 퍼즐을 실제로 차근차근 맞춰보려 한다.
여행기의 서두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이번 여행은 매우 단순하게 시작되었다. 캐나다에서의 2년 생활을 마무리하며 내사 사는 곳에서 제일 멀리 자동차로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 밤 어디서 잘지도 정하지 않은 채로 몬트리올을 떠난 첫날처럼 오늘 미국으로 넘어가는 것 역시 다소 즉흥적이었다. 2주 후에 호주행 비행기를 몬트리올에서 타야 하는데 이왕이면 올 때와는 다른 풍경을 보며 몬트리올로 돌아가고 싶었다. 캐나다를 무사히 횡단하면서 생긴 자신감과 미국에 대한 호기심이 동시에 작용한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미국 여행 가이드북도 없이 조금은 무책임(?)하게 미국으로 향했다. 덤으로 얻은 미국 횡단 여행은 캐나다 횡단 여행의 별책 부록 같은 느낌인 것이다.
이틀 동안 묵었던 밴쿠버 외각의 캠핑장은 규모는 조금 작아도 여태까지 묵었던 캠핑장 중 시설이 제일 좋았다. 지인이 일하는 카페에서 밴쿠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브런치를 먹었다. 몬트리올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이 작년 밴쿠버로 이주하여 살고 있던 것이다. 처음 가는 도시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꽤나 기쁜 일이다. 아는 사람이 하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도시가 괜히 더 친근하게 느껴지니까 말이다. 작별은 늘 아쉽지만 사람의 인연은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될지 전혀 모르는 일이다.
밴쿠버와 시애틀은 거리상으로 200km 정도 되어 캐나다의 다른 도시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다리를 하나 넘으면 금방 국경이 나온다. 몬트리올과 뉴욕 사이를 차로 꽤 왔다 갔다 했지만 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일은 여전히 설레고 신기한 일이다. 섬 아닌 섬나라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인은 아마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자동차로 국경을 넘으려면 기본적으로 여행자의 신원에 대한 서류, 그리고 자동차 등록증, 보험 등 자동차에 관한 서류들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톨게이트처럼 생긴 부스를 차로 지나며 입국심사관에게 여권을 비롯한 요구서류들을 보여준다. 미국 비자나 시민권을 소유한 사람은 바로 톨게이트를 지나 미국으로 들어가고, 비자가 없는 경우에는 비자 발급을 위해 사무실로 이동을 하게 된다. 캐나다와 미국은 그 사이를 출퇴근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가까운 나라기 때문에 예전에는 두 나라의 시민권자라면 여권이 없이 운전면허증만 있어도 국경 통과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에는 보안검색의 강화로 캐네디언이나 미국인이라도 여권이 있어야 국경 통과가 가능하다. 두 나라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생하는 이유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국가보안 문제나 경제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밴쿠버와 시애틀 두 도시 모두 인구가 많고 거리가 가깝다 보니 국경을 넘어 오가는 차들이 항상 많다. 덕분에 검문검색에 걸리는 시간도 꽤 긴 편이다. 우리는 가지고 있던 미국 여행비자가 만료되어 사무실로 들어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추가로 캠핑을 위한 식재료를 차 안에 가득 담고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검사도 받아야 했다. 나는 술 같은 것이 문제가 될까 신경을 썼는데 오히려 성분 표기가 안된 음식물이나 채소류의 반입에 꽤나 엄격한 심사를 하는 편이었다. 우리는 예상 밖의 물건들이 문제가 되었다.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 사용하는 각 주차공간의 옆에는 테이블이 위치해 있어 차에 있는 짐들을 꺼내 검색할 수 있다. 캠핑으로 숙박을 해결하며 장기여행을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식재료와 짐이 많았는데, 덕분에 까다롭게 검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차가 검사를 받을 동안 사람은 사무실에서 입국심사관과 관련 서류를 작성하는데, 나는 평소처럼 금지품목을 소지 여부 체크란에 모두 '아니오'를 선택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요리에 사용했던 감자와 한국 마트에서 구매한 불닭볶음면에 영어 표기가 안되어있어 문제가 되었다. 이런 경우 상황에 따라 입국이 안될 수도 있고, $100 상당의 벌금을 내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는 누가 봐도 불우한 장기 여행자처럼 보였고, 고의성 또한 없어 보여 입국심사관이 너그러이 봐주었다. 다음부턴 주의하라는 말과 함께 발견된 음식만 압수당하고 무사히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국경을 통과하는 일은 자주 해봐도 늘 긴장이 되기 마련이다. 입국심사관의 결정에 내가 당장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10분 걸릴 입국심사에 30분, 1시간 이상 지연될 수 있고, 생각했던 비자를 받지 못하거나 아예 입국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누구며 직업과 재산의 규모와 상관없이 그들에게 의심 가는 점이 있다면 심사는 길어지고 이어지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대한민국의 여권 파워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심사는 문제없이 통과가 된다. 하지만 과거 입국심사에서 거절을 당한 이력이 있거나, 수속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면 이 한 가지만 기억하자. 입국심사관 앞에서 무조건 웃자. 웃는 얼굴에 침 뱉는 입국 심사관은 여태까지 본 적이 없다.
까다로운 심사 덕에 밴쿠버에서 시애틀까지 두 시간 거리를 우리는 다섯 시간이 걸려서 도착할 수 있었다. 시애틀의 상징인 니들 타워를 포함한 시애틀의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역시 미국의 도시가 주는 느낌은 캐나다와는 확실히 다르다. 앞으로 미국을 횡단하는 동안 미국은 또 우리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해줄까. 그리고 잠 못 드는 시애틀의 밤은 얼마나 로맨틱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