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동부, 퀸즐랜드 로드트립
맨리(Manly)라는 작은 도시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브리즈번에서 기차를 타면 1시간 정도 걸리는 작은 마을이다. 기본적으로 로드트립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해 떠나는 여행도 좋다. 짐이 줄어드는 만큼 자연스레 더 좋아하는 것들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매년 새해 카운트다운을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 보냈는데,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줄리와 단둘이 조촐하게 보내보았다. 호주에 온지도 이제 벌써 반년이 되어 가고 있다. 6개월 차 워홀러들은 생각이 많아진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사업장 한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최대 6개월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무언가 변화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나이 두 살은 캐나다에서 먹었고, 올해는 호주에서 한 살을 먹었기 때문에 현실감이 떨어지는 이 현실이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변함 없는 건 지금 이 시점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는 사람 중 내 나이가 제일 많을지도 모른다.
친구의 비즈니스 트립에 동행하게 되었다. 워홀러 주제에 사업을 하는 친구가 있다는 게 신기하겠지만, 워홀 막차의 막칸에 탄 늦깎이 워홀러인덕에 이미 호주에 자리를 잡은 또래 친구들도 있었다. 최근 새로운 사업을 인수하게 된 친구 커플이 퀸즐랜드 동부에 흩어져 있는 매장들을 둘러보기 위에 떠나는 여행에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직접 운전하여 브리즈번을 출발, 번다버그와 멕케이의 매장을 둘러보고 마지막 2박은 에얼리 비치라는 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올 예정이다. 친구 덕분에 차가 없으면 가기 힘든 지역의 생활 풍경도 보고 여행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다를 끼고 1천 킬로미터 이상 달리는 건 캐나다 횡단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캐나다에서도 물론 바다 같은 호수와 강을 끼고 달렸지만, 이건 '같은'이 아니라 '진짜' 바다다. 밀물과 썰물이 있고, 짠내가 나는 에메랄드 빛 진짜 바다. 덕분에 중간중간 멋진 뷰포인트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동할 수 있었다. 친구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이야기하며 현지 사정과 워홀 라이프를 직접 들을 수 있었는데, 이 얘기는 나중에 따로 묶어 다뤄보려 한다.
번다버그에서 멕케이로 향하는 길에 만난 이 작은 카페는 직접 만든 홈메이드 빵과 파이, 그리고 여행자에게 필요한 주전부리와 기념품 등을 팔고 있었다. 상점 곳곳에는 주인장의 취향이 드러나는 사진 등 수집품 컬렉션을 볼 수 있었다. 지역의 역사와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이런 소소한 수집품들은 역사책에서 보는 사진들보다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옛날 앨범을 구경하는 느낌이랄까? 어릴 적 사진을 보고 그 친구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그 지역 또한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로드트립 중 이런 로컬 음식점을 만나는 것이 자동차 여행의 진짜 묘미인데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 그 자리를 글로벌 페스트 푸드점들이 채우고 있어 운좋게 이런 상점을 만나면 더 감사해야 한다. 물론 아무것도 없던 곳에 길이 생기고 휴게소가 새로 생겨 어디에서나 균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음식 체인점이 들어서는 건 여행자로서 매우 환영할 일이다. 매일 낯선 여정에 피로감을 느끼는 여행자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체인들이 기존에 운영되고 있던 지역의 특색 있는 로컬 상점들 자리를 대체한다 하면 그건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여행 중 조금 불편하더라도 로컬 상점들을 이용하고, 지역 술과 특산품을 시도해보는 건 여행 중 내가 지키는 작은 소신이다. 민주주의의 국민은 투표로 말하고 자본주의의 소비자는 소비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지하고 지킨다.
2박 3일을 달려 도착한 에얼리 비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브리즈번에서 약 1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은 론리 플레닛에서 뽑은 최고의 여행지 10곳에 선정된 휘트선데이 제도의 관문으로 74개의 섬과 그곳의 아름다운 하얀 모래사장으로 유명하다. 공항이 있어 브리즈번에서 비행기를 타면 약 1시간 40분 정도가 걸린다. 풍경은 내가 생각하던 호주의 전형적인 휴양지였다. 말 그대로 배산임수의 지형이라 마을 뒤로는 산이 그리고 앞으로는 멋진 바다가 이어진다. 산기슭을 따라 멋진 숙소들이 자리 잡고 있어 대부분의 숙소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여행자가 많은 지역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관광 상품이 있어 상황과 취향에 맞추어 골라하는 재미가 있다. 상점마다 붙은 구인광고들이 나를 유혹했다. 여행자로서 봐도, 그리고 워홀러로 봐도 상당히 매력적인 동네였다.
섬 전체가 리조트인 데이드림 리조트가 특히 유명하지만 우리는 자동차로 갔기 때문에 숙소를 에얼리 비치에 잡았다. 그리고 휘트선데이 섬(Whitsunday Island) 투어와 스노클링, 데이드림 리조트 입장권이 포함된 일일 투어 프로그램을 따로 예약했다.
다음날 일찍 셔틀버스가 숙소로 우리를 태우러 왔다. 예약할 때 주소를 알려주면 픽업 서비스를 해준다. 설레는 마음으로 커다란 크루즈를 타고 섬으로 향했다. 무인도인 휘트선데이 섬에는 항구가 따로 없어 근처까지 크루즈로 간 다음 작은 보트에 옮겨 타고 섬으로 들어간다. 배까지 갈아타며 섬에 들어가니 무인도에 들어가는 게 더 실감이 났다. 보트에서 내리면 하얀 백사장과 에메랄드 빛 해변이 7km 정도 이어진 화이트헤븐 비치(Whitehaven Beach)로 이어지는데, 높은 전망대에서 해변의 풍경을 바라보면 정말 천국이 따로 업다. 태초의 아담과 이브가 살았을 것 같은 정말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었다. 이런 천연 무인도가 주는 해방감 때문에 관강객들이 이곳을 더 많이 찾는다고 한다.
섬을 구경한 뒤 포인트 두 곳에서 스노클링을 했다. 가이드의 말로는 호주 바다 수온이 많이 올라 현재는 산호초들이 많이 죽은 상태라고 했다. 운 좋게 거북이와 물고기들을 볼 수 있지만 가이드가 말한 바다 생태계 파괴를 실제로 느낄 수 있었다. 스노클링을 경험이 있다면 '어디 해변 바닷속이 더 예쁜데'라고 단순 비교할 수 있지만 서해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서해가 중요하고, 동해 사는 사람들한테는 동해가 소중한 것이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바다를 아끼고 오래오래 지키려 하는 현지 가이드들의 마음이 전해져서 왠지 응원하고 싶었다.
이 패키지에는 데이드림 아일랜드 리조트 경유가 포함되어 있었다. 리조트를 뛰어노는 왈라비들을 가까이서 보고 만져볼 수 있다. 바닷물로 만든 연못에는 대형 가오리와 열대어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바닷물을 개운하게 씻어내고 시원한 수영장에 들어가 바에서 주문한 칵테일을 한잔 하면 이곳이 천국이다 싶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