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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지 평생 살래도 못 사는 성격

가장 이상적인 호주 라이프

내가 휴양지에 살고 싶은 이유는 3가지가 있다.

하나. 휴양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기분이 좋다.

둘. 일이 끝나면 노동자 또한 휴양지의 낭만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다. 

셋. 젊은 여행자와 워홀러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끊임없이 받을 수 있다.


호주에 갈 때 제일 꿈꾸었던 라이프 스타일은 역시 이런 거였다.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섬. 멋진 노을과 이국적인 리조트가 있는 그런 곳에서 일을 하며 지내보는 것. 길을 걷다 눈을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미소를 건네며 Hi 하고 인사하던 호주의 대표 휴양지 골드 코스트는 나에게 그런 호주 드림을 갖게 한 곳이었다. 좋은 풍경에서 기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나 역시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즐겁게 일하고 퇴근 후에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친구들과 매일 파티를 하고 싶었다. 


천국 평화로웠던 호주 에얼리비치(Airlie Beach)의 풍경


호주 대부분의 도시들이 해안가에 몰려 있고 주변에 섬도 많아 브리즈번 근처만 해도 그런 지역이 많이 있다. 앞에 언급했던 골드 코스트가 그랬고, 선샤인 코스트, 에일리 비치 등 유명 휴양지가 많이 있다. 계획과 다르게 나는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브리즈번에 정착하게 되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휴양지 라이프에 대한 로망이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못했던 건 도시생활에 너무 쉽게 안주했기 때문이다. 한국 교민이 적어 언어문제나, 식재료 수급 등 불편한 점이 많았던 캐나다 생활에 비해, 호주 브리즈번은 모든 것들이 너무 편했다. 원래 너무 푹신한 침대, 편한 소파일수록 박차고 일어나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게을러지는 게 싫다면 일부러 불편을 조금 감수하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다. 물론 도시에 살면서 배운 것들도 많다.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의 리얼 라이프 스타일을 볼 수 있었고, 그 안에 살고 있는 한국 워홀러들의 삶 또한 볼 수 있었다. 



워킹홀리데이라는 제도 자체가 적은 자본으로 해외생활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젊음을 담보로 미래를 끌어 쓰는 대출 상품 같은 거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유학을 하고 그것을 발판 삼아 해외 인턴이나 취업을 경험해 볼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이 워홀이 될 수 있다. 물론 젊음 외에는 투자한 게 없기 때문에 당장 부담이 없고, 더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콤플렉스, 자격지심 등을 혈기 왕성한 20대가 완전히 숨기기란 어렵다. 언어능력이 완벽하지 않은 워홀러들은 결국 호주라는 큰 외딴섬 안에서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의지를 할 수밖에 없고,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만든 그 커뮤니티 안에서 가끔은 서로는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물론 상처가 생기고 치유되는 과정에서 사람은 또 성정 한다. 


가끔은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다. 무난한 집안에서 큰 우여곡절 없이 자라 성격에 구김이 없는 '엄친아'같은 캐릭터 말이다. 어린 시절 형제끼리 맛있는 반찬 두고 눈치게임을 벌이지 않아도 되었고, 부모의 사랑을 부족함 없이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자기 것을 나누는 것에 전혀 인색함이 없다. 그 반대의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상대방의 호의를 호의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자격지심이 발동하여 이상한 방어기제를 발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엄친아도 나름의 속사정이 있고 콤플렉스도 있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의 상처가 제일 아픈 법이다. 


생각보다 로맨틱하지 않았던 호주의 서머크리스마스 퍼레이드 풍경


호주나 필리핀은 그 경제규모 차이가 다르지만, 두 곳 모두 연중 온화한 기온으로 날씨에서 만큼은 콤플렉스가 없었다. 식량이 부족한 겨울 걱정이 없던 그들은 좋게 보면 낙천적이고 나쁘게 보면 지루하다. 물론 우리 관점에서 보면 말이다. 실제로 경험한 서머 크리스마스가 생각보다 지루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 여름을 싫어했지만 캐나다에 산 후부터 여름이 매우 좋아졌다. 캐나다의 겨울은 혹독하고 길기 때문에 여름을 잘 나야 겨울을 잘 버틸 수 있다. 그래서 캐네디언들은 여름을 정말 누구보다 사랑하고 즐긴다. 도시에는 무료로 즐길 수 있는 파티가 많아 모든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햇빛과 음악, 맥주를 즐긴다. 그런 문화에 익숙해지니 여름이 자연스레 좋아지고, '그럼 여름이 1년 내내 이어지는 호주는 얼마나 더  재밌을까?'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한 것이다. 그런데 겨울이 없는 호주 사람들은 여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절박함은 모르고, 매사 너무나도 여유가 있었다. 애초에 '여름은  즐겨야 해'라는 프로그래밍이 전혀 되어있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사람들은 경험의 폭이 넓고 그만큼 싫고 좋음 사이의 감정 폭도 굉장히 크다. 우리가 극단적인 비극 뒤에 느끼는 카타르시스에 쉽게 중독되는 이유다. 반대로 엄청 힘든 육체노동 뒤 마시는 맥주 한잔, 팀원들의 끈끈한 팀워크, 만취 상태에서 내놓는 서로의 진실한 감정 등을 겨울이 없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겨울을 겪어본 사람들이 느끼는 28도와 겪어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28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호즈 브리즈번의 연말 불꽃놀이 


호주는 연말연시 불꽃놀이로 유명한데, 특히 헬기에서 촬영한 시드니 신년맞이 불꽃놀이는 정말 장관이다. 브리즈번에서도 연말 불꽃놀이를 하는데, 허공에 터지는 그 불꽃이 문득 나에게는 공허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한 가지 깨달은 건 그렇게 지긋지긋했던 시련 , 갈등, 그리고 콤플렉스가 나을 성장시켰다는 것이었다. 물론 구김 없는 성격의 태평한 사람들이 나는 여전히 부럽다. 하지만 이미 받은 상처들을 지울 수 없고, 그 상처들 덕분에 내가 성장했다는 걸 감안하면 역시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 사는 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휴양지에 살지 못한 아쉬움은 여행으로 달랠 수 있었다. 브리즈번의  6개월 생활을 마무리되어갈 때쯤 조금씩 근교 여행의 비중을 늘려갔다. 그중 첫 번째 여행은 친구 따라 떠난 북동부 로드트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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