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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박쥐가 산다?

배트맨은 호주 출신인가?

추운 겨울이 없는 호주의 날씨를 사람들만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생물들이 그곳에 살기를 좋아한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마저 많은 부분을 사람과 야생 동물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은 인간에게도 여러 가지로 매우 유익하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는 동물들의 크기가 모두 너무 크다는 거다.


호주 브리즈번 도심안 공원은 숲과 그 안의 생태계까지 그대로 유지하여 다양한 동식물을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 '도심'하면 흔히 떠오르는 여의도나 강남의 빌딩 숲 안 나무와 꽃들은 대부분 인간의 손에 의해 가꾸어졌다. 호주나 캐나다의 도시에서는 조금 더 날 것의 자연을 볼 수 있다. 애초에 도시를 계획할 때 그곳에 원래 있던 나무와 숲을 보존한 채로 도시를 건설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 자리에 존재하던 기존 생태계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자연 없이는 살 수 없으므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 하면 동물들 역시 살기 좋아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호주 제3의 도시 브리즈번에는 인구밀도만큼이나 야생동물의 밀도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시의 평균보다 높다. 종류도 다양하며 그중 몇몇 동물은 도시에서 인간과 함께 살기엔 조금 크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따오기과의 아이비스(Australian white ibis)


사진 속의 하얀 새는 호주 도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쓰레기통을 뒤진다고 하여 '거지 새'라고 부른다. 그 크기가 참새의 열 배? 비둘기의 세배 정도 될까? 아이비스(Ibis)라는 따오기과의 호주 토종 새로 원래는 해안에서 갑각류를 잡아먹도록 부리가 긴 게 특징이나 습지가 점점 건조해지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는 도심에 거주하며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사람이 떠난 식당 테라스의 남은 음식을 먹어 치우고 있다. 날개를 활짝 펼치면 웬만한 강아지보다 크기 때문에 음식을 향해 달려들면 사람들은 쉽게 놀랄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호주에서 마주하면 깜짝 놀랄 대표 야생동물 몇 가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혐오감이 들 수 있는 사진은 첨부하지 않기로 했다. 궁금하신분들은 직접 검색을...)


1. 바퀴벌레

호주에 사는 동안 개인적으로 제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게 바로 바퀴벌레다. 어릴 땐 많이 봤지만 한국에선 그 개체수가 점점 줄고 있는 바퀴벌레들이 아마도 지금은 모두 호주에 모여 살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호주의 기름지고 짠 음식들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그 크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심지어 날기까지 한다. 호주에 사는 동안 셰어하우스에 거주했기 때문에 진짜 나의 공간은 사용하는 방뿐이었다. 화장실과 욕실도 다른 친구들과 공유하는데, 마치 캠핑장의 공용 욕실처럼 욕조 안에 들어가 샤워 커튼을 쳐야만 오롯이 내 공간이 된 것 같은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가끔 그 안정감을 방해하는 불청객이 불쑥 나타나고는 한다. 알몸이 된 나의 팔꿈치와 허벅지를 툭툭 치는 무언가가 있어 이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 나 외에 또 누군가가 있구나 소스라치게 놀라서 보면 그 범인은 바로 날아다니는 바퀴벌레다. 하루 동안 얻은 불결함을 씻으려고 스스로 알몸이 되었는데, 거기에 바퀴벌레라니. 이건 정말 겪어본 사람만 아는 트라우마다. 벌레를 쉽게 죽이지 못하는 줄리와 나는 샤워하러 들어가서 옷을 홀딱 벗었다가 기겁하며 다시 옷을 입고 나온 적이 셀 수 없이 많다. 다행히도 아래층에 살던 벌레 잘 잡는 동생들을 불러 이 바퀴벌레를 처리하고는 했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샤워하기 전에 항상 확인하는 게 욕실 안 바퀴벌레의 유무였다. 이 스트레스는 정말 겪어본 사람만 안다. 정기적으로 집에 연막탄 같은 바퀴벌레약을 터트려 소독을 하지만, 브리즈번 전체에 바퀴벌레 개체수가 워낙 많고, 그렇게 벌레가 많은데도 집에 방충망이 없어 외부에서도 계속 들어온다. 기분 좋게 시내 한복판을 걷다가 내가 발을 디디려고 했던 하필 그곳에 바퀴벌레가 기어가고 있어, 놀란 발이 갈 곳을 잃고 뒤로 나자빠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바퀴벌레가 이 정도로 많으면 도시 차원에서 손을 써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현지인들은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2. 박쥐

 배트맨이 살고 있는 고담시티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그리고 그 배트맨의 배트(bat)가 박쥐를 의미한다는 것 또한. 그런데 실제로 박쥐가 도시 안에 살고 있는 모습은 우리 상식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호주 브리즈번에 사는 동안 시내 중심으로 출퇴근하기 위해 매일 넘어야 하는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왕복 2차선 도로 위의 횡단보도를 건너면 그 언덕의 정상이며,  두세 명이 걸을 정도의 폭의 계단을 따라 쭈욱 내려가면 브리즈번 시티 한복판으로  향한다. 그 비탈길은 동시에 공원이기도 해서 산책로와 밴치가 있고, 이파리가 큰 나뭇잎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체감온도가 40도가 넘는 날에는 그런 그늘마저 너무 소중하다. 하루는 밤늦게 퇴근을 하는데, 그 나뭇잎 중 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뭇잎에 눈이라니.. 그렇다. 그것은 박쥐였다. 얇은 나뭇가지를 발가락으로 꼭 움켜쥐고 거꾸로 매달린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눈이 딱 마주쳤다.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그 나뭇잎의 정체를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그 나뭇잎들은 길게 늘어져 가끔은 나의 머리카락을 스칠 정도로 가까웠다. 이것은 한 여름 서늘한 기분을 내기 위해 지어낸 납량특집 이야기가 아니다. 100% 실화다. 배트맨의 아이디어는 사실 미국이 아니라 호주인 걸까?


3. 포썸(possum)

바퀴벌레나 박쥐는 평소 우리가 그것과 조우하는 경험이 그리 흔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들이 지구에 존재함을 익히 알고 있던 것들이다. 혹시 '포썸'이라는 동물의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한국의 도심에 청설모가 산다면 호주에는 이 포썸이 산다. 캥거루와 쥐를 합쳐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설명하면 이해가 제일 빠를 것 같다. 크기는 우리가 흔히 키우는 애완견 몰티즈 만한데 다람쥐처럼 전깃줄이나 나무를 타기도 하고 캥거루처럼 두발로 일어서기도 한다. 어디든 가지 못하는 곳이 거의 없다. 약간은 외계인처럼 생기기도 한 이 생물체를 동물원 같은 곳에서 본다면 신기하고 반갑겠지만 늦은 밤 공원의 풀숲에서 파란 눈을 반짝이며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튀어나온다면 그 충격과 공포에 어떤 사람은 수명이 1년씩 단축될지도 모른다. 솔찍이 말하면 우리 와이프 줄리가 그랬다. 


한 번은 이 포썸이 집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호텔에 파티가 있어서 새벽 2시가 되어서 퇴근을 했다. 웬일로 그 시간에 줄리가 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알고 보니 포썸이 우리 침실까지 들어왔고, 하필 바퀴벌레를 잘 잡는 동생들마저 외출 중이라 어떻게 할 수 없어 밖에 나와 나를 기다렸다고 한다. 바퀴벌레 잘 못 잡는 내가 포썸이라고 잡을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리는 3층 침실로 올라가지 못하고 2층 주방에 앉아 의미 없는 작전 회의만 했다. 집주인 형은 깊은 잠이 들었는지 전화를 해도 응답이 없어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는가. 우선 염탐이라도 하기 위해 인기척을 죽이고 살포시 침실로 올라갔다. 긴장한 채로 침실에 들어갔을 때 방은 비어 있었다. 뒤로 돌아 나오다 보니 포썸은 목이 말랐는지 화장실 변기 위에 올라서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것(?)과 나는 잠시 대치를 이루었다. 용기를 낸 나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화장실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잽싸게 문을 닫았다. 화장실 안에 가둔 것이다. 남은 그날 밤은 우선 아래층 화장실을 써야 했다. 그날 술에 만취가 돼서 일찍 잤다는 집주인형은 그다음 날 일어나서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처럼 벌레 하나 못 죽이는 선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결국엔 형의 와이프, 동갑내기였던 내 친구가 포썸을 타올로 감싸고 양동이에 담아 집 밖으로 탈출시켜주었다. 방생을 해주었는데도 바로 달아나지 않고 우리 집 쪽을 계속 바라보며 아쉬워하던 포썸의 눈빛이 아직도 선하다.



내가 살기 좋다고 생각하는 곳은 남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동물과 곤충들도 마찬가지다. 지구가 점점 병들고 아파 그 증후들이 여러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는 요즘, 현명한 공생법에 대하여 우리는 조금 더 심오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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