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계급은 있다.

21세기형 계급제도

직업에 귀천이 있을까? 적어도 한국 문화에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호주에서 생활하는 동안은 어땠을까?


힐튼 호텔 취업 초반, 생각지 못한 곳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바로 호주식 영어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거주했던 지난 2년 영어와 불어를 함께 배우느라 고생했었는데 '호주에 가면 영어만 해도 되니 훨씬 편하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이 오지 잉글리시(Aussie english)라고 부르는 호주식 영어는 영국과 호주 특유의 악센트가 더해져 가끔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거기에 줄임말들이 더해져 업무 시작 전 미팅을 할 때 알아듣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매번 질문을 할 수 없어 말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은  문서를 자주 참고했다. 업무 중 말로 전달받은 내용들은 캐나다에서 했던 업무 경험으로 예측하며 그때그때 위기를 넘겼다. 리스닝이 안되니까 너무 힘들어 라디오를 하나 샀다. 3개월 동안 귀가 노는 시간에는 언제나 현지 라디오를 켜놓고 살았다. 그렇게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핸디캡을 줄여나가려고 노력했다.


업무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난 뒤에야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호주는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업무분장이 확실하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은 호미로만 막지 절대 가래를 쓰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시급 30불짜리에게 20불짜리가 해도 될 일을 절대 시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호텔에서 연회 하나를 진행해도 필요한 장비를 운반하고 세팅하는 팀, 연회를 진행하는 팀, 청소하는 팀, 이렇게 인력을 다 따로 쓴다. 심지어 작은 식당이나 매장들도 종업원이 퇴근하면 청소업체 직원이 청소를 하러 온다. 


어떤 업태의 어떤 업종이던 피라미드의 맨 아랫부분에는 이 청소 직업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를 워홀러들이 많이 커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워홀러의 대부분은 유색인종이다. 가끔 이게 기분이 되게 이상할 때가 있는데, 전날 밤 퇴근할 때 파티하는 백인들이 어지럽혀 놓은 거리를 다음날 아침 외국인 노동자들이 깨끗이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다. 말 그대로 어지럽시는 사람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데, 어지르는 사람 대부분은 백인이고 치우는 사람의 대부분은 유색인종이라는 거다.


호텔에서 근무하다 보면 기업에서 주최하는 내부 파티나 세미나 등을 업무상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 해당 기업의 인종 구성을 대략 볼 수 있다. 이때 역시 화이트 컬러에는 여전히 백인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이유를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아마도 가장 큰 장벽은 언어 때문일 것이다. 워홀러들만 봐도 영어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은 손님을 직접 마주하는 서비스업 업을 택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식당, 카페 외에도 휴양지가 많은 호주에는 급여가 높은 다양한 서비스직이 있다. 리조트나 관광지에서 여행객들을 상대하는 일들은 단기간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결과적으로 영어가 부족한 상태에서 워킹홀리데이나 이민을 가면 최대한 사람과 마주하지 않고 몸은 힘든데 급여는 상대적으로 적거나 비슷한 직업을 구할 수밖에 없단 이야기다. 해외 생활 전 충분한 언어 공부가 중요한 이유다.


물론 청소일을 해도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만큼의 급여를 받기 때문에 풍족한 생활이 가능하고 직업만으로 차별을 받지도 않는다.(물론 같은 유색인종끼리 차별하는 경우는 오히려 흔하게 볼 수 있고, 언어를 못해서 차별받는데 그것을 인종차별받았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한마디로 호주에선 직업에 귀천이 없다.

  

청소, 건설, 일부 서비스업 등의 육체노동자들은 일이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나는 경우가 많아 호주나 캐나다나 빠르면 2~3시부터 퇴근시간이 시작된다. 이들은 펍과 레스토랑의 해피아워(음료를 할인해주는 시간)를 즐기거나 서핑을 하며 도시의 여유로운 오후 분위기를 연출하고는 한다.  


브리즈번의 여유로운 오후 풍경


정리하면 호주에서 최소한 직업에 대한 '귀천'은 없다고 느껴졌지만, '계급'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였다. 언어의 레벨로 구분되는 계급이라고나 할까?


세계의 어떤 도시나 화이트 컬러의 직업만으로 도시가 유지될 수 없다. 교육 수준이 높은 도시는 점점 육체노동을 하려는 사람이 줄어드는데, 호주에선 그런 일자리들을 충당하는 게 바로 워홀러들이나 유학생이다. 나는 이런 게 21세기형 계급제도인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재밌는 건 노예라고 하면 보통 자유가 없고 그 일이 즐겁지 않아야 하는데, 이 21세기의 노예들은 그 일을 자처하며 저 멀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그들도 주인들처럼 남 부럽지 않은 여가를 즐기며 산다는 거다. 


조금만 노력하면 그들도 화이트 컬러가 될 수 있는 충복한 능력을 가졌는데. 현재 생활에 만족하며 산다. 선진국을 경험한 한국의 청년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지만, 그냥 그대로 호주에 눌러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전 06화 주 20시간 일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