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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운전석이 오른쪽입니다

전 세계 아티스트들이 모여들던 바이런베이 로드트립


장거리 여행을 한번 다녀온 뒤 나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여행 다니기 시작했다. 호주 여행 동안 발이 되어줄 자동차를 계속 찾았지만 마음에 드는 매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캐나다를 횡단 때 탔던 피아트 500은 크기는 작아도 트렁크 입구가 큰 3 도어 형태라 생각보다 짐이 많이 들어가 커플이 여행하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연비도 좋고 달리기도 꽤 잘하는 재밌는 자동차였다. 호주에서도 조금은 특별한 차로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워홀러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도요타의 캠리 같은 차량은 왠지 피하고 싶었다. 한 번은 컬러가 너무 이뻤던 푸조 206CC가 매물로 나와 직접 보러 갔었지만 엔진오일 누유 등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 포기했다. 내가 호주에서 여행하고자 하는 루트는 캐나다 횡단할 때보다 조금 더 오지이고 길 또한 험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차량 선택에 더욱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의 실패를 겪고 나니 자동차 구매의 기회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캐나다에서도 차를 구매하기 전 종종 렌터카를 빌려 여행을 다니고는 했었다. 호주에서도 처음으로 렌터카를 빌려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스즈키의 SWIFT라는 소형차다. 호주에서 운전을 처음 시작한다면 운전석이 우리와는 반대인 오른쪽에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한국에서 운전 경력이 긴 사람일수록 오히려 호주 운전에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요즘 자동차는 대부분 자동변속기이기 때문에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것 자체는 생각보다 빨리 적응할 수 있다. 하지만 차량 진행 방향도 반대인 좌측통행이라는 것은 조금 더 오랜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사거리에 섰을 때 확인하는 방향의 순서가 완전히 반대인 것이다. 거기에 한국에선 많이 볼 수 없는 회전교차로와 신호가 없는 사거리 통과 법, 보행자 우선 문화 등 조금이라도 헷갈린다면 완전히 서서 정확히 판단하는 게 좋고, 역시 맨 앞에서 달리는 것보다는 앞에 차를 두고 쫓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칫 길을 잘못 들어 역주행을 하게 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익숙해질 때까지는 서행, 또 서행하는 것이 좋다. 


렌터카를 타고 떠난 첫 여행지는 바이런베이였다. 브리즈번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한 바이런베이는 호주 대륙에서 가장 동단에 있어 제일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유명 이온음료 광고를 여기서 촬영했을 정도로 파란 하늘과 바다, 멋진 절벽, 그리고 그 위에 상직적인 등대의 조합까지 더해져 멋진 풍경을 만드는 곳이다. 바이런베이 타운은 작지만 아기자기한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가 있어 브리즈번에서 당일치기 데이트 코스로도 참 좋다. 히피 또는 보헤미안 문화가 도시 전반에 깔려 있어 전 세계의 아티스트가 모여 서로 영감을 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과 해변에서 장기 여행자와 아티스트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점심을 먹었던 레스토랑 앞에서 버스킹을 하던 티모라는 이 청년은 독일에서 왔다. 아마 우리 같은 워홀러이거나 장기 여행자일 수도 있다. 캐나다 여행 때도 느꼈지만 역시 살기 좋은 곳에는 아티스트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티모의 음악으로 만든 여행 영상입니다. 당시 분위기를 잘 표현해줄 것 같아 첨부해봅니다.


호주는 특히 밴드 문화가 많이 활발했다. 캐나다의 호텔에서 근무할 때 파티를 열면 보통 DJ를 섭외한다. 그런데 호주에서는 DJ보다는 진짜 밴드를 초대해 라이브 연주를 하는 경우가 많다. DJ와 밴드 모두 음악을 들려주는 건 같을지 몰라도, 필요한 장비나 준비시간면에서 많이 다르다. DJ는 DJ 본인과 컴퓨터, 턴테이블과 믹서 등 관련 음향기기만 있으면 되는 반면 밴드는 최소 3~4명의 밴드 멤버와 각각의 악기가 있어야 하고 공연 전 합주 연습할 시간과 공간도 필요할 것이다. 당연히 이에 따른 섭외 비용도 다르다. 내가 브리즈번 호텔에서 근무하는 6개월 동안 주말 파티에 같은 밴드가 두 번 이상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6개월 동안 주 1회 파티만 했다고 쳐도, 그리고 브리즈번 내에 그런 파티를 열 수 있는 행사장이 내가 근무했던 호텔만 있는 것이 아님을 생각해 봤을 때 브리즈번에만 최소 100여 팀 이상의 아마추어 밴드가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남을 가르치는 일이 아닌 순수하게 현역 연주가로 먹고살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그 지역에 라이브 음악을 원하는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 


미디어의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우리는 연극보다 영화를 많이 보고 지역 라이브 밴드의 공연보단 유명 가수의 음반을 듣고 유튜브 영상을 본다. 생각해보면 예술 외의 것들도 그렇다. 지역 음식점보단 글로벌 체인의 패스트푸드를 즐기며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다. 누군가 예술을 직업으로 한다면 그걸로 밥벌이가 될까 걱정부터 하게 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연극, 뮤지컬, 콘서트 등 라이브 공연의 매력을 실제로 경험해보면 화면에선 느낄 수 없는 살아있는 생동감과 희열을 느끼지만, 현재 우리는 라이브 공연에 돈과 시간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점점 귀하고 멋지게 느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버스커들의 기타 케이스에 고민 없이 지폐를 넣어줄 줄 아는 사람이 많은 도시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도 점심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떠나기 전 멋진 음악과 연주를 들려준 티모의 CD를 한 장 구매했다. 멀리 타국 땅까지 와서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하는 그를 응원하며.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해 질 무렵 다시 찾은 바이런베이 타운은 차분했던 낮의 동네 모습과는 또 완전히 달랐다. 거리 여기저기에 노란 백열등이 켜지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여름밤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의 말소리로 꽤나 북적거리고 시끌벅적했다. 소박했던 한 낯의 거리 풍경과 너무 상반되는 모습이라 되려 화려하게 보였다. 낮에는 조용히 자연을 즐기던 사람들이 해가 지고 밤의 파티를 시작한 것이다. 통기타를 치던 티모의 노랫소리는 그치고 어느새 흥겨운 팝 음악이 거리를 메웠다. 진짜 파티는 이제부터인 것이다. 바이런베이의 이런 모습을 모르고 하루 일정으로 온 게 너무나 아쉬울 정도였다. 



바이런베이를 떠나기 전 우린 마지막으로 한번 더 바다를 보러 갔다. 칠흑 같은 어둠이 짙게 깔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말 그대로 밤바다였다. 찰싹찰싹 파도소리와 그 앞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며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브리즈번으로 돌아오는 길, 낮에 샀던 티모의 음반을 자동차 CD플레이어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티모가 낮에 레스토랑 앞에서 연주했던 곡들은 대부분 여름 바다에 어울리는 다른 가수들의 경쾌한 곡들이었다. 그중 진짜 티모의 노래는 단 한곡뿐이었고, 앨범에 실린 다른 곡들은 다소 심오하고 어두운 노래들이 많았다. 거리의 여행객들을 위해 그는 흥겨운 노래를 연주했지만 사실 그의 내면에는 어두운 마음이 공존했던 것이다. 바이런베이의 밤과 낮처럼 말이다. 티모가 진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이런 것들이었구나 생각하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삶에 낮과 밤이 모두 필요하듯이, 오른손잡이도 왼손잡이도 우리 세상에 모두 필요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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