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루루의 수렁에서 구해준 댓글 하나
멜버른을 떠난 뒤로 울루루까지 우리는 점점 문명과 멀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목표는 바로 하나 울루루이다. 문제는 울루루를 보고 난 다음인데, 렌트한 캠핑카를 엘리스 스프링에서 반납하고 나면 다시 나올 방법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우선 엘리스 스프링에서 리로케이션 캠핑카를 빌리면 갔던 길을 그대로 돌아 멜버른으로 가는 노선뿐이라 시간 낭비 같았다. 엘리스 스프링 공항에서 출발하는 호주 국내선 비행기 가격 또한 알아봤는데 내가 다음 목적지로 하고 싶었던 다윈, 퍼스 모두 1인당 가격이 최소 500불 이상으로 하루에 $1~5짜리 캠핑카를 대여하던 우리에게 너무 큰돈 같아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호주 여행을 계속 이어나간다면 하고 싶은 게 두 가지 있었는데 첫 째는 퍼스(Perth)나 다윈(Darwin) 둘 중 한 곳으로 가 벙글벙글(Bungle Bungle)이 있는 퍼눌룰루 국립공원(Purnululu National Park)을 비롯한 호주의 북서부를 여행함으로 호주 일주를 완성하는 것, 둘째는 이 여정에서 다윈에 사는 (필리핀 어학연수 때 영어 선생님이었지만 지금은 형 동생이 되어버린) 필리핀 친구 몬(Mon)을 만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캠핑카로 멜버른까지 다시 2천여 킬로미터 돌아 나와 퍼스까지 차로 계속 이동하는 건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했고,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은 비용이 부담되었다.
왠지 막다른 길에 몰린 것 같았다. 호주 서북부 여행을 포기하더라도 우선은 괜찮은 비용과 일정으로 엘리스 스프링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우선이었다. 엘리스 스프링에서 탈 수 있는 모든 비행 편 가격을 확인했지만 적당한 비행 편을 찾을 수 없었다. 호주에서 인도네시아가 가까워 호주 워홀 후 발리 여행을 많이 간다는 정보를 듣고 발리는 물론 주변국 경유 후 한국으로 들어가는 방법까지 검색해봤지만 그마저도 너무 비쌌다. 지금 상황으로썬 엘리스 스프링에 도착하는 순간 우리는 완전히 그곳에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울루루는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정한 상징적인 종착지라 무조건 들어가야 했지만 계속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페이스북에 구세주 같은 댓글이 하나가 달렸다. 나는 우리의 여정을 페이스북에 계속 기록하고 있었다. 댓글로 베트남 하노이에 살고 있는 줄리 친구 '아라'랑 소통하던 중 "(베트남으로)와"라는 외마디 답글을 남긴 것이다. 하노이??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엘리스 스프링에서 하노이로 떠나는 비행기 편을 검색해 봤다.
엘리스 스프링에서 다윈과 쿠알라룸푸르 총 2번을 경유하여 베트남 하노이로 가는 비행기 편을 찾았는데 1인당 가격이 $558로 다윈으로 가는 편도 비행기표와 가격이 같았다. 비행기를 3번 타는데 한번 타는 가격이랑 비슷하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가능했다. 가격만으로도 이미 너무 좋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더 놀라운 건 다윈에서 33시간 45분을 경유하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1박을 해야 했다. 만나고 싶었던 몬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 호주를 떠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와.. 이건 정말 운명인가?'싶어 소름이 끼쳤다. 나는 바로 베트남행 티켓을 예약하고 댓글로 인증샷을 남겼다. 가끔 사람의 간절한 바람과 인연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결국 우리는 엘리스 스프링에서 다윈까지 갈 티켓 가격으로 다윈과 하노이를 거쳐 반가운 얼굴 두 명도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하노이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표도 검색해 봤는데 그 티켓 역시 미화 $155로 너무나 저렴했다. 캐나다에서 시작된 이 여행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끝나는 것 또한 재미있는 일이었다. 아니 소름 끼치도록 신기한 결말이구나.
문제는 가끔 이렇게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해결된다. 인생이라는 게 참 얄궂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