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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버리던 뒷골목이 '힙'해진 이유

권위는 없고 표현의 '자유'만 있던 멜버른에서 우리는 비로소 '해방'됐다

오랜만에 재회한 시드니는 좋았다. 누군가 나에게 '멋'의 외적, 내적 발란스가 잘 맞는 도시를 뽑으라 하면 주저 없이 그 안에 시드니가 속할 것이다. 짤막했던 그 재회가 끝나고 이제는 동생들과도 작별할 시간이다. 시드니 공항에서 우리는 멜버른행 비행기를, 그리고 동생들은 브리즈번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시드니에서 멜버른까지 가는 캠핑카 노선이 없어 비행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때문에 호주의 수도인 캔버라는 들릴 수 없게 되었다. 태즈메이니아 역시 너무 좋다고 꼭 가보라는 추천을 많이 받았지만 역시 캠핑카 일정에 맞추다 보니 지나치게 되었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 같아 하고 싶은 일을 모두 선택할 수는 없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 또한 있기 마련이다. 알면서도 언제나 이별은 쉽지 않다. 특히 외국 여행 중 만난 인연은 같은 하늘 아래 있음에도 '다시 만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아 더 가슴 아프다. 필리핀에서도, 여기 호주에서도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지만 언제 또다시 여기에 돌아올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항상  더 슬펐다. 그래도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우리 여행의 다음 목적지는 멜버른이다. 멜버른은 호주에서 두 번째 큰 도시로 우리에게는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많이 알려져 있다. 나는 드라마는 보지 못했지만 OST '눈의 꽃'을 너무 좋아해서 뮤직비디오에 나오던 멜버른의 호시어 레인(Hosier Lane) 거리 풍경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덕분에 멜버른은 나에게 히피스럽고 낭만이 살아있는 예술의 도시처럼 느껴졌는데 실제로는 어떨지 기대가 많이 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멜버른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 가득한 구름은 카메라 조명의 소프트박스처럼 거리를 두루 비추어 도시의 채도를 한 것 올려주었다. 그래서 왠지 더 감성적으로 느껴졌다. 호텔 체크인 후 산책 나온 피츠로이 정원(Fitzroy Gardens)에는 비가 그치고 해가 나오길 기다리는 신랑, 신부가 야외 결혼식을 준비 중이었고, 사람들의 낙서로 새겨진 보도블록은 나를 피식 웃게 했다. 작은 보도블록 하나하나에 담긴 개인의 이야기가 모여 완성하는 공원의 산책로 스토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작은 일이라도 허투루 하지 않고 꾹꾹 의미 눌러 담아 만든 이런 것들이 나는 참 좋다. 내면은 심오하지만 표현은 심오하지 않은, 낙관적인 멜버른 사람들의 태도가 사뭇 마음에 들었다.



이런 예술혼은 멜버른의 거리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미술관 안의 권위적인 예술이 아니라 친근한 키치 아트 느낌이 도시 전체에 만연했다. 일상의 권위로부터 도망쳐 해방되고 싶은 여행자에게 이곳보다 더 어울리는 도시가 있을까? 특히 그중에서도 피츠로이(Fitzroy)는 우리의 홍대 같은 느낌, 아니 홍대보다도 더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밤늦게 이 거리를 혼자 걷는다면 다소 위협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지켜져야 하는데, 그 선이라는 게 나라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어 외국 여행에서 흔히 생길 수 있는 오해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에만 관심 있을 뿐 그 선을 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거리 곳곳에 그려진 벽화와 한대 섞여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트램, 자전거와 스케이트 보드를 보는 것만으로도 괜한 해방감을 주었다.



멜버른에서 맞이한 첫 아침, 새소리에 잠에서 깼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앵무새가 산다는 게 호주 생활 반년이 지나도 아직 적응이 잘 안 된다. 채비를 하고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Flinders Street Station)으로 향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호주에서 제일 오래된 기차역이다. 황금빛 건물 외곽가 돔형의 지붕이 정말 이국적인 느낌을 낸다. 멜버른의 아이콘인 구형 트램까지 그 앞을 지나가면 마치 시간여행을 온 듯하다. 



우리가 도착하기 일주일 전에 F1(포뮬러원) 그랑프리 개막전이 열렸는데, 아직 그 열기가 채 식지 않았는지 시내 곳곳에서 스포츠카 동호회들의 거리 오토쇼가 열렸다. 페더레이션 광장(Federation Square)의 AMCI 앞에는 수십대의 포스쉐 올드카가 전시되어 있었고, 또 그 포르쉐를 보기 위해 자신의 포르쉐를 타고 온 사람들의 포르쉐로 거리는 완전히 포르쉐판이었다. 최신 기술이 망라된 따끈한 최신형 자동차를 만나는 일은 상당히 즐거운 일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부러운 건 신형 포르쉐보다 구형 쪽이다. 신형 포르쉐가 미래라면 구형은 과거라 할 수 있는데, 미래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가능성(혹은 희망)이 있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는 우리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주말에 이렇게 자신의 올드카를 가지고 나와 자발적(?) 전시를 하는 동호회를 간혹 볼 수 있는데, 가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건 오랫동안 잘 관리된 그들의 자동차라기보다는 그들이 그 차와 함께 쌓아온 추억에 대한 이야기다. 



"이 차는 내가 결혼하기 전 산 첫 차인데, 그때 지금 와이프와 이 차를 타고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녔다네", "이 차는 우리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차인데, 어릴 적 아버지 옆에 타고 다녔던 이 차를 잘 관리해서 나도 나중에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다네"등. 내가 전시된 차를 진지하게 구경하고 있으면 차주가 슬쩍 다가와 묻지도 않은 자기 자동차의 역사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고는 한다. 다양한 외국인들을 경험하다 보니 경제적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보다 좋은 추억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 또한 멋지게 사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어릴 때부터 희한하게 올드카를 좋아하던 내가 누가 타던 올드카를 구매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타는 차가 올드카가 될 때까지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아마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일 거다. 나의 할아버지 세대는 자식이 배곯지 않게 하는 것이 그들의 숙명이라 생각했고, 우리 부모 세대는 자식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는 것이 그랬다. 그렇다면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숙명은 유산이 될만한 좋은 추억을 자식들과 함께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오늘은 부활절 주말이기도 했다. 세인트 폴 성당(St Paul's Cathedral)에서 미사가 막 끝났는지 사제와 신도들이 성당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이곳은 호주 최대의 가톨릭 성당이다. 나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그 모습에 끌려 나도 모르게 성당으로 향했다.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며 계란을 나눠 주는 날이다' 내가 아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퇴장하는 신도들 사이로 우리는 입장을 했다. 멀리서 보니 퇴장하는 신도들 하나하나 손을 잡고 축복의 인사를 전하는 대주교를 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대주교라는 호칭도 잘 몰랐으나 후에 찾아보니 이분은 2001~2018년간 멜버른의 대주교를 역임한 Denis Hart였다.

여행객이라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아니면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신도들을 따라 맨 뒤에 줄을 섰다. "우리는 한국인인데 캐나다에 살다가 지금은 호주를 여행 중입니다. 지금을 울루루를 향하고 있습니다"라고 짤막하게 우리 소개를 했다. 신부님은 우리의 안전한 여행을 바라며 신도도 아닌 우리의 여정을 축복해주셨다. 나는 아직 신의 존재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우리를 축복해줄 신이 진짜로 존재하기를 바랐다. 우리는 계란 대신 계란 모양의 작은 초콜릿을 하나씩 받아 성당을 나왔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속 그래피티가 가득했던 거리, 호시어 레인은 성당에서 불과 한 블록 떨어져 있었다. 레인(lane)은 보통 뒷골목을 말하는데,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많이 봤음직한 화려한 색깔의 그래피티가 거리 곳곳에 그려져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계획도시의 빌딩 뒤편에는 물건이 들어가고 나오는 이런 뒷골목이 있기 마련이다. 뉴욕이나 LA를 배경으로 한 흑인 래퍼들의 뮤직비디오에서 많이 보았을 법한 이런 뒷골목은 평상시에는 쓰레기를 버리거나 휴식시간의 노동자들이 나와 담배를 피우는 도시의 음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일반인들은 통행을 꺼려하는 곳이다. 대부분의 거리에 (우리나라의 도로명 주소 같은) 이름이 붙는 호주에서 그런 골목길은 이름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전형적인 비주류 거리가 이렇게 세계적으로 여행자의 큰 주목을 받는 건 역시 거리 예술가들의 다양한 그래피티 덕이다. 호시어 레인의 그래피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오래된 그림 위에 매일 또 다른 그림이 그려지며 새로운 레이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직접 라커를 가져와 자신만의 그래피티를 기념으로 새기고 가는 관광객들도 볼 수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정말 '힙'한 거리라고 할 수 있다. 이 '힙하다'는 말이 원래는 주류문화를 거부하고 자기의 개성이 담긴 새로운 것들을 추구한다는 표현이었는데 최근에는 최신 유행을 잘 따른다는 뜻으로 '트렌디하다', 인기가 높다는 '핫하다'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아마도 예전에 힙했던 비주류 문화가 지금은 널리 퍼져 주류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힙하다'는 말의 의미도 점차 바뀌게 된 것 같다. 이 힙하다는 형용사처럼 이 멜버른의 뒷골목 그래피티 역시 비주류 문화에서 지금은 주류 문화가 되어버려 지금 말 그대로 정말 '힙'한 거리다.


나는 대중들에게 정신적 풍요를 주는 예술가들이 지금보다 더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유명 예술가 몇몇이 오랫동안 예술판을 쥐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리 응원하지 않는다. 아마 오리지널 힙스터들 역시 그런 권위에 맞서고 싶어 주류문화가 아닌 힙스터 문화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프랑스혁명의 주역 68세대도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보수적인 기득권 세력이 되었듯 과거의 힙스터 문화도 지금은 주류문화에 편입 었다. 하지만 기존의 권위를 가진 주류들에게 저항하고 싶었던 그들의 마음을 우리가 잊지 않았으면 한다. 매일매일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는 이곳 호시어 레인이야 말로 '권위'는 없고 '자유'만 있는 정말 '힙'한 그런 예술판(?)이었다.


야라 산맥에서 시작하여 멜버른을 관통하는 야라강 주변은 정말 여유로웠다. 신의 축복 덕인지 오후에는 구름마저 걷혀 파란 하늘을 마음 것 볼 수 있었다. 강을 따라 걷다가 전망 좋은 공원이 나오면 잠깐 앉거나 누워 바람과 하늘을 즐겼다. 멜버른이 화려하게 보였던 것은 각자의 개성을 숨기지 않고 뚜렷하게 표현하는 멜버른 사람들의 표현력 때문이었다. '표현의 자유'가 가득한 멜버른에서 우리는 확실히 무언가로부터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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