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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캠핑카로 꼭 가봐야 할 드라이브 코스

호주 그레이트 오션 로드 따라 400km

시드니와 멜버른 두 큰 도시 투어를 모두 마치고 두 번째 캠핑카 로드트립이 시작되었다. 이번 여정은 멜버른에서부터 시작하여 최종 목적지인 울루루까지 간다. 드디어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지던 호주의 중앙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캠핑카는 멜버른 근교에서 픽업하여 엘리스 스프링에 반납을 해야 한다. 렌트비는 하루 $5씩 총 5일 치 $25을 지불하였고, 역시 유류비로 $300을 지원받았다.(자세한 내용은 지난 글 '1달러에 호주에서 캠핑카를 빌렸습니다'편 참고) 캠핑카의 제원상 연비는 리터당 7.6km로 덩치를 감안하면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다. 문제는 렌트 중 허용 주행 가능 거리가 2,819km였는데, 픽업 장소에서 드롭 장소까지 바로 가더라도 최단거리가 2,239km로 여유 거리 600km 정도는 조금 빠듯했다. 초과된 주행거리에 대해서는 0.55km당 $1가 부과되는데, 예정대로 그레이트 오션 로드와 울루루를 모두 돌면 주행거리가 초과를 염두에 둬야 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토키(Torquay)에서 앨런스포드(Allansford)까지 이어진 240km의 해안도로로 호주 국가 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도 자주 선정되는 호주의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다. 길 따라 수많은 해변과 절벽으로 이뤄진 절경이 쉬지 않고 펼쳐지는 곳. 그 정점에는 12 사도라는 기념비적인 지형이 있는데 천만년 이상 석회암이 바닷물에 깎여 탄생한 자연 돌기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12 제자를 의인화하여 이름 붙였다고 한다. 2005년, 2009년에 각각 하나씩 무너져 지금은 12개의 기둥 중에 7개만이 남아 있고, 침식작용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라 언제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다. 멜버른에서 해안선을 따라 12 사도까지 가는데만 약 4시간이 걸리는 이 코스는 멜버른에서 당일치기 투어로도 많이 오지만 우리는 12 사도 근처의 캠핑장에서 1박을 하고 그대로 에들레이드를 거쳐 울루루까지 올라갈 예정이다. 



오전 10시 캠핑카 픽업이라 이틀 밤 머물렀던 멜버른의 숙소를 서둘러 체크아웃하고 차량 픽업 장소로 갔다. 이번에는 누적거리가 26만이 넘는 배테랑(?) 폭스바겐의 캠핑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번에 탔던 메르세데스 캠핑카 쪽이 더 신형이라 누적 주행거리도 짧고 디테일도 더 좋았지만 기능적인 실내의 구성이나 장비는 비슷해 두 차량 모두 가난한 여행자에게 감지덕지였다. 역시 캠핑카 이용에 대한 교육을 짧은 영상을 통해 받았다. 캠핑카는 이동하는 집인 만큼 신경 써야 할게 많다. 텐트처럼 매일 피고 접지 않아도 되니 사용할 때는 좋지만 사용 후 오물을 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번거롭다. 그래서 화장실만은 절대 사용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캠핑카와 짧은 적응 시간을 마치고 멜버른을 떠나 곧장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캠핑카 여정이고 도시를 달리지 않아도 되는 경로라 적응이 빨랐다. 가는 길에 마트를 만나 냉장고부터 우선 채웠다. 식사는 캠핑 분위기는 내되 최대한 조리가 간편한 재료들로 채웠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라면과 소시지, 이미 구워진 전기구이 통닭을 샀다. 먹고 남은 통닭은 나중에 살을 발라내어 닭죽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물과 맥주로 냉장고 나머지를 채웠다. 멋진 전망을 만나면 꼭 라면이나 맥주가 생각난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알리는 입간판을 지나자 시작부터 멋진 해변들이 나타난다. 듣던 데로 죽기 전에 꼭 와봐야 할 드라이브 코스다. 특히 캠핑카로 여행하기 정말 좋은 코스였다. 어차피 속도가 많이 안나는 캠핑카이기 때문에 천천히 달리면서 바깥 풍경을 즐길 수 있었고, 멋진 풍경 근처에는 어김없이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잠시 쉬어 목도 축이고 배도 채워가며 여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호주 하면 "자유"만큼 많이 생각나는 단어가 '평등'이다. 정부의 복지정책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연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물이라는 자연 유산이 제공하는 해택에는 빈부에 차별이 없다. 물놀이는 가장 원초적인 놀이 중 하나로 바다에 가까이 사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놀면서 수영을 배운다. 필리핀에서 만난 아이들이 바다수영을 하며 노는 모습을 많이 보았는데 물안경 하나만 있으면 겁도 없이 깊은 바다로 풍덩 뛰어들고는 했다. 호주의 물가는 필리핀보다 훨씬 비싸지만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노는 방법도 많이 있다. 캠핑과 바다가 그렇다. 도시에는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해변이 있어 서핑이나 수영을 하며 놀다가 추워지면 다시 햇빛에 몸을 데운다. 정부에서 마련해주는 거라곤 해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공용 바비큐 그릴과 안전요원 정도다. 해변에 누워 테닝을 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여유롭게 보인다. 바다에서까지 래시가드로 몸을 꽁꽁 싸매고 다니는 우리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날씨가 흐린 게 한 가지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하루에도 사계절을 느낄 수 있다 할 정도의 변덕스러운 이곳 날씨의 끝에 또 어떤 풍경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쉬고 다시 달리기를 반복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상징적인 게이트라고 할 수 있는 메모리얼 아치(Memorial Arch)를 지난 뒤로 론(Lorne), 아폴로 베이(Apollo Bay) 등 멋진 명소들이 많이 있었지만 우리가 가장 보고 싶은 건 역시 12 사도상이었다. 해가 지기 전 도착해 일몰을 보고 싶었는데 너무 여유를 부렸는지 시간이 조금 아슬아슬했다. 그 와중에도 멋진 스폿이 너무 많아 그냥 또 지나치기는 매우 아쉬웠다. 조금 더 일정을 여유 있게 짰으면 좋을 뻔했다.



이정표의 거리가 조금씩 줄어들더니 마침내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정말 보고도 믿기지 않는 풍경이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남극해는 말 그대로 망망대해로 눈앞의 12 사도상 외에는 작은 섬 하나 보이지 않아 과장을 조금 하면 수평선의 중앙이 봉긋한 곡선을 이루어 둥근 지구의 모습을 내 육안으로 직접 확인한 느낌이었다. 여전히 구름은 많아 해는 찾을 수 없었지만 덕분에 하늘이 더 깊고 넓게 보여 더욱 드라마틱하게 보였다. 너무 신이 나서 연신 셔터를 눌렀지만 역시 그 웅장함을 모두 사진으로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망대 아래로 내려가 해변을 걸으며 거대한 돌기둥을 더 가까이에서 보려던 찰나 서서히 하늘의 색이 변하고 있었다. 해가 지평선 가까이 도달하면서 구름과 바다 사이 파란 하늘이 열린 그 틈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뿜어 내고 있었다. 하늘은 핑크에서 보라까지 오묘한 색의 스펙트럼을 만들며 정말 멋진 장관을 이루었다. 그렇게 몽환적인 하늘은 난생처음이었다. 가슴이 정말 벅차오를 정도로 아름다웠고, 줄리는 그 광경을 보다가 결국 눈물을 흘렸다. 이래서 죽기 전에 이곳에 꼭 와봐야 한다고 했구나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말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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