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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한가운데 기름이 없어 차가 섰다..

20L 기름을 공짜로 준 청년에게 내가 제일 아끼는 것을 주었다.

울루루에서 나올 방법이 해결되고 나니 이제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달리기만 하면 된다. 나의 경우는 우선 목표가 정해지면 달리는 일은 훨씬 수월하다. 멜버른의 12 사도 석상을 떠난 첫날은 애들레이드(Adelaide)까지 쭈욱 달렸다. 



어느새 해가 지평선에 걸리고, 노을이 아름다워 해를 따라 계속 달리다 보니 그 끝에 한적한 캠핑장이 나왔다. 주에서 관리하던 이 캠핑장은 말이 캠핑장이지 부대시설 하나 없는 노지 같았다. 덕분에 자연을 그대로 즐길 수 있고 가격도 무료였다. 캠핑카로 머물기에는 아쉬움이 없었다. 캠핑장을 둘러보니 여행의 고수들이 모여있는 아지트 같은 느낌이라 포근하게 하룻밤을 났다.



울루루에 가까워질수록 인적이 점점 드물어졌다. 도시는 마을이 되고, 마을은 휴게소가 된다. 주유소 하나 덩그러니 있는 인공 오아시스에서 차에 필요한 기름과 사람에게 필요한 물을 공급받는다. 이마저도 간격이 점점 늘어난다. 주유소를 만나면 무조건 차의 기름을 가득 채워야 한다. 캠핑카가 아니었다면 이런 환경이 조금 막막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대부분을 문명 속에서 살던 인간이 스스로 문명을 등지고 오지로 들어가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했다. 지금 이 길을 달리고 있는 것이 태초 이래 내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순간이 오면 세상과의 마지막 연결고리마저 끊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났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인류가 만든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으며, 간간히 마주오는 자동차들이 이 길 위에 있는 게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망망대해에서 접선이라도 하듯 상대편 운전자와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와 김성균처럼 "아이고 김 사장"하며 번쩍 팔을 들었다. 다음 차는 박사장, 그다음 차는 최 사장, 상대편 차에 우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겠지만 우리의 반가운 입모양은 충분히 전달되었으리라.



꼬박 15시간을 운전해 드디어 울루루의 코 앞까지 왔다. 땅은 점점 건조해지고 색은 붉어진다. 이런 환경에도 나무가 살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랍다. 해가 지자 하늘은 어둑해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길 위를 가득 채운다. 무언가 계속 따라오는 느낌이 들어 차를 갓길에 잠시 세우고 라이트를 껐다. 별이 어찌나 많던지 눈앞의 지평선 바로 위까지 촘촘하게 별이 보였다. 우리를 계속 따라오던 건 바로 저 별들이었다. 울루루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밤은 그렇게 수많은 별 아래에서 보냈다.  


우루루와의 극적인 조우를 앞둔 D-day! 먼길을 돌아 여기까지 달려온 만큼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 나도 모르게 조급한 마음이 생겼다. 그 결과로 사막 한가운데에 차가 서버리는 불상사가 생겨버렸다. 선택지는 두 가지, 여기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느냐 아니면 적극적으로 주유소를 찾아 나서느냐 였다. 주유소까지 걸어간다면 왕복 4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리고 여기는 사막 한복판이다. 아직 오전 일찍이라 괜찮지만 해가 뜨기 시작하면 당장 기온이 올라가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날테다. 이 더위에 주유소까지 14km를 걸어 왕복할 생각 하니 아찔했다. 그렇다고 제한속도가 시속 130km인 인적 드문 사막 한복판에서 도움을 줄 차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혹시나 차를 세운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우리 둘 쯤 여기서 흔적 없이 사라져도 쥐도 새도 모를 것 같았다.


어떤 것이 리스크가 더 적을까 고민하다가 우선은 기다려 보기로 했다. 히치 하이킹으로 주유소까지 가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제일 좋은 시나리오였다. 다행히 캠핑카에 먹을 음식과 물은 있었다. 이른 아침 우리처럼 울루루를 향해 달려가는 누군가를 우리는 오매불망 기다렸다. 처음 마주친 몇 대의 차량은 우리를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나는 '우리는 절대 위험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듯 조금 더 온화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은 흔들었다. 히치 하이킹을 시작한 지 약 한 시간쯤 지났을까? 우리를 지나쳐갔던 검은색 픽업트럭이 차를 세우고 후진으로 우리에게 다시 다가왔다. 



화물칸에는 오토바이와 타이어가 잔뜩 실려있었다. 오프로드 바이크를 즐기는 사람 같았다. 고맙고 반가워서 나는 차 쪽으로 뛰어갔다. 백인의 젊은 청년이었는데 우리의 상황을 설명했더니 흔쾌히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여유분의 휘발유를 우리 차에 넣어주었다.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여행하며 퍼스까지 향하던 그 여행자는 다행히도 오토바이와 차에 넣을 여분의 휘발유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 듯했다. 히치 하이킹만 해도 정말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휘발유를 얻을 수 있다니 운이 너무 좋았다. 다음 주유소까지 7km만 가면 되니까 약 2리터 정도만 있어도 충분한데 굳이 20리터짜리 말통에 있는 휘발유를 모두 우리 차에 넣어주었다. 사막 한복판에서 받은 이 은혜의 고마움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과분한 친절에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건네주려던 휘발유 값을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나는 수줍게 신라면 두 봉지를 그에게 내밀었다. 지금 생각하면 쑥스럽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돈 다음으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이었다. 때마침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던 그에게 한국의 매운맛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 안에 우리의 고마운 마음과 정이 잘 전달되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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