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날, 강진 그리고 해남
바빴다. 일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기 싫을 정도로 바빴다. 중간중간 쉬는 날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바빴고 이상하게 다른 의욕이 없었다. 리프레시가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날, 특히 개천절 이 때 쯤에는 한 번씩 어딘가로 여행했던 것 같다. 여름휴가 이후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딱 좋은 시점이 아닌가. 이번에도 역시 이때쯤에 맞춰 여행을 가기로 미리부터 계획했다. 갈 곳은 해남! 저 멀리 땅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동행의 오랜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욕없음으로 인해 언제 어디로 갈지만 결정한 채, 여행날의 아침이 밝았다. 사실상 계획없이 떠나는 여행이었다.
승용차를 타고 간다는 것은 굉장한 기동성을 갖는 일이다.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힘든 곳을 보다 쉽게 갈 수 있게 만든다. 저 멀리 남도 끝, 해남을 여행하는 일은 사실상 차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연휴이기에 막히는 줄 알면서도 차를 타고 갔던 이유다. 물론 차를 탐으로써 얻는 이점도 많다. 특히, 이번처럼 계획없는 여행에 나섰을 경우, 순간순간의 생각과 선택으로 여행을 진행할 수 있는 그런 장점이 있다. 그런 장점을 충분히 즐겼던 그런 여행이었다.
긴 시간을 달려 내려온 남도. 시간은 이미 많이 지나 저녁 때가 되었다. 밥을 먹을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식당을 찾아야 했다. 불현듯 생각난 곳은 강진 병영. 가고자 했던 해남은 아니지만 해남과 가까워 저녁을 먹고 해남으로 넘어가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진 병영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친척집이 있는 곳이라 간혹 찾아갔던 곳이기 때문이다. 갈 때마다 가는 곳 중 하나가 이번 여행의 첫 저녁을 먹은 수인관이다. 남도식 한상차림이 나오는 맛있는 식당이다. 그리고 유명한 식당이기도 하다.
어둠이 내린 병영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과연 여기에 식당이 있기는 한 건지 의아해하는 동행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 그런 조용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수인관을 찾아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이 동네 사람들이 다 이곳에 모여 있었던 것마냥.
음식은 여전히 맛있었다.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그런 곳이라 더 좋았다. 바뀐 것 같으면서도 그대로인 것 같은 그런 공간이었다. 함께 한 사람도 정말 맛있다고 계속 얘기해 더 좋았다.
저녁을 먹으며 한편으로는 숙소를 검색했다. 이제는 자야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검색 끝에 해남에서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전화로만 예약한 거라 숙소에서는 꼭 와줄 것을 당부했다. 여기 아니면 잘 곳 없는 우리 역시 꼭 가겠다고 답했다. 식당을 나서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시골길을 달리고 달려 해남에 도착했고, 간식거리와 다음날 아침에 먹을 것을 사들고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는 한옥펜션이었다.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은 공간에 한옥펜션이 떡 하니 있었다. 대문 안팎이 서로 다른 공간인 것 같았다. 숙소를 잘 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감탄하며 첫째날이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