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드디어 땅끝.
둘째날 아침, 느즈막히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준비를 하고 숙소를 나왔다. 숙소주인은 어딜가냐고 물었다. 땅끝마을에 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가기 전에 두륜산과 대흥사를 가면 좋을 거라고 조언해주었다. 사실 바로 땅끝마을에 가도 딱히 할 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숙소주인의 조언을 듣기로 했다. 목적지는 두륜산 그리고 대흥사였다.
추천을 받아 간 두륜산에는 케이블카가 있었다. 날씨가 흐려서 올라가도 잘 보이지 않을 것이라 적혀있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길, 점점 안개와 구름이 가득해지고 한치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바람은 많이 불어 케이블카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무서워했다. 내려서 전망대로 올라가니 역시나 보이는 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다 잘 보였으면 좋았겠지만 구름으로 가득한 두륜산 전망대는 그 나름대로 좋았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이 잘 만들어져 있어서 충분히 오고 가며 두륜산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이번에는 대흥사로 향했다. 대흥사는 어린시절 기억이 남겨져 있는 곳이다. 초등학생 때, 해남이 고향인 담임선생님을 따라 친구들과 함께 해남으로 여행온 적이 있었다. 그 때 갔던 곳 중 하나가 바로 대흥사였다. 여러 곳을 갔지만 대흥사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이 곳에서 물놀이를 한 기억이 정말 강렬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대흥사를 본 기억보다 대흥사 앞에 있는 계곡에서 물놀이를 한 게 훨씬 기억에 남아있었다. 내 기억 속 대흥사는 그런 곳이었다.
대흥사 주차장에서 내려 대흥사까지 걸어가는 길은 고즈넉하니 좋았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길이었다. 큰 절인 대흥사 경내의 느낌보다 가는 길 그것이 더 좋았다. 대흥사 경내는 너무 커서 오히려 조금 부담스러웠다. 분명 처음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절이었겠지만 지금은 그 크기가 커짐과 동시에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아쉬웠다.
대흥사 가는 길에 있는 유선여관. 방송에도 나올정도로 유명한 공간이다. 밤에는 숙박이 가능한 것 같고, 점심에는 식당을 운영한다. 파전과 도토리묵 그리고 여기에 어울리는 막걸리를 판다.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파전과 막걸리를 먹었다.
엄청나게 맛있는 맛은 아니었다. 평범한 맛이었다. 하지만 자연 한 가운데라는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도 쓱싹 비우고 이제 이번 여행의 목표였던 땅끝으로 향했다.
끝이 주는 뭔가 특별한 느낌이 있다. 내가 사는 곳의 끝을 굳이 찾아가는 건 끝이 주는 특별한 느낌을 느끼러 가는 것인지 모른다. 유럽여행을 갔을 때, 굳이 포르투갈의 호까곶을 가려 했던 이유도,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넓디 넓은 육지의 서쪽 끝이라는 그 곳에 가면 특별한 느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가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다시 한반도의 남쪽 끝, 땅끝에 가면 나름의 특별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오랜만에 온 땅끝은 많이 변해있었다. 거진 10년만에 오는 곳이니 기억 속 그 모습 그대로이지 않을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땅끝 전망대에 올라가는 모노레일이란 것도 새로 생겼다. 굳이 그런게 있어야 하나 싶으면서도 신기하고 편했기 때문에 타고 올라갔다.
땅끝 전망대에서 땅끝을 바라보는 느낌은 역시나 특별했다. 한반도의 땅끝이 저기구나 싶었다. 엄청난 벅참 같은 것이 느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뿌듯하고 기분 좋았다. 여기가 땅끝이다 땅끝.
땅끝에 다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