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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긴 혼잣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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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ty noodle Mar 04. 2022

빨간 손님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불편한 당신


생리통을 치르느라 귀한 휴일을 홀랑 다 날렸다. 정말이지 생리는 지긋지긋하다. 이것만 안 해도 내 삶의 질이 95프로는 더 올라갈 거다.


한 달에 한 번, 이유도 모르고 기분이 울적해진다. 편두통이 찾아온다. 몸이 축축 늘어진다. ‘요즘 내 몸 상태 왜 이래?’하고 의아할 때쯤이면 생리가 시작된다.


초경을 겪은 지도 이십 년이 지났건만, 변기에 앉았을 때 피가 슬쩍 비친 속옷을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당혹스럽다. 당분간 펼쳐질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일주일 동안 피를 받아내는 기저귀를 차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달갑지 않은데, 여기에 생리통까지. 정말이지 가혹하다, 가혹해. 생리하는 여자들이 모두 생리통을 앓는 것은 아니라는데, 어쨌거나 나는 지독하게 앓는다. 억울하다.


처음 이틀은 거의 아랫배 안에서 전쟁이 난다. 마그마가 끓는 것 같고 잘 벼린 칼로 뱃속을 저며대는 것 같고 벌겋게 부은 자궁에 끈을 매달아 힘껏 잡아당기는 것 같다.


뜨겁고 잔인한 통증이 지나고 나면 생리가 끝날 무렵까지 쉽게 체하고 뱃속에 가스가 차고 편두통까지 찾아온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은 생리(통)에 갖다 붙여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언젠가 한 산부인과에서는 검사를 마친 의사가 "생리통이 심할 수밖에 없겠네요"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제대로 된 설명은 하지 않고 생리통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이 출산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애를 낳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폐경이 올 때까지, 그러니까 약 앞으로 이십 년 정도는 더, 한 달에 한 번씩 배와 머리를 부여잡고 생리통이 심할 수밖에 없는 내 자궁을 저주해야 하는 걸까?


아니, 이 짓을 이십 년을 더할 수는 없다. 생리통을 없애자고 출산을 감행할 용기도 없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진부하지만 미래의 과학 기술에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 생리통에서 해방되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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