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실 담배 피워."
증명해달라고 하진 않았는데 친구는 굳이 가방을 뒤적거리며 담배를 찾았다.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익숙하게 한 대를 뽑아 입에 문 뒤 불을 붙이고 연기를 후우, 천장으로 뿜었다. 그때 우린 아직 중학생이었는데 친구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자연스럽게 담배를 다뤘다.
"언제부터 피웠어?" 내 질문에 연기를 후 뱉더니, "쫌 됐어" 하고 히- 바보처럼 웃었다. 웃는 얼굴은 분명 내 친구가 맞는데 그 애 손가락 사이의 담배가 너무 낯설어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학창시절부터 이상하게 내 주변에는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이 많았다. 중학교 때 그 친구를 시작으로 고등학교 때 가장 가까웠던 친구도, 대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 중에도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내가 그 애들에게 담배를 부르게 하는 친구인건지 아님 비흡연자인 주제에 헤비스모커 마그네틱이라도 있는 건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일이다.
친구들의 영향이었는지 나도 한 번쯤은 담배를 체험해본 적이 있다. 제대로는 아니고 겨우 흉내만 낸 것이나 다름 없어서 '피워봤다'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대학교 2~3학년 때였나, 술이 진탕 취해서는 친구가 피우고 있는 담배를 빼앗아 "나도 피워볼래!"하고 한 두모금 정도 깊지 않게 마시고 연기를 흘려본 것이다.
그래서 체험해보니 어땠냐고? 술을 마셔 얼굴에 뻘겋게 열이 오른 데다 김까지 뿜고 있으니 끓는 주전자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 맛도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호기롭게 시도는 했지만 입에 대는 순간 쫄보 기질이 발동해서 몸을 사린 탓일 거다. 어쨌든 그 허망한 감각에 나는 금새 흥미를 잃었고, 그렇게 술이 취한 와중에도 친구에게 이렇게 재미도 감동도 없는 것을 대체 왜 피우냐고 물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랬던 주제에 무슨 늦바람인지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들은 금연을 시작하는 마당에 웬 뒷북.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두세시간 씩 의자에 앉아 작업을 하며 헛헛한 기분에 밀가루나 설탕 가득한 군것질거리로 손을 뻗는 것도 싫고 그 결과로 살이 찌고 여드름이 나는 것도 싫다. 누가 봐도 쟤가 지금 한숨을 쉬고 있구나 느낄 정도로 맨입으로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도 싫다.
하던 일이 막혀 스트레스가 쌓일 때 그래서 군것질이 하고 싶을 때 또는 바싹하게 추운 겨울밤에 좋은 영화를 보거나 좋은 노래를 들었을 때 그래서 감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슴이 벅차서 어쩔 줄 모를때
그럴 때,
조용히 밖으로 나가 불 붙을 위험 없는 싱싱한 풀들 속으로 들어가서 담배를 피우고 싶다.
멘솔향이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손바닥으로 바람을 가려 불을 붙이고 뻐끔, 한 번 깊이 빨아들이며 담배속과 그것을 감싼 종이가 타들어 가는 소리를 듣고 싶다. 턴테이블 위에 LP판을 올릴 때의 잡음 소리 같은 그 기분 좋은 지직거리는 소리와 매캐하지만 상쾌한 담배 냄새가 복잡한 마음과 생각을 조용히 가라앉혀줄 것 같다.
담배 한 개비를 둘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 사이에 아슬아슬하지만 단단하게 끼우고, 최대한 머리를 비운 상태로 그 녀석을 태워 없애는 일에만 집중하는 일, 어쩌면 그 행위도 명상의 일종이 되지 않을까?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이고 가부좌 틀고 머리를 비우고 자신의 호흡을 바라보는 일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모르겠다. 알고 싶다. 담배를 피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코 끝 너머로 새끼 손톱만한 빠알간 불빛이 타오르고 눈 앞으로 희미한 연기가 아른거리는 풍경을 바라본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