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긴 혼잣말

누구의 것일까요

by party noodle


정신분석이론에 투사라는 개념이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희미하게 알고 있던 이 개념을 작년 가을에 대상관계이론 수업을 통해 보다 깊이 있게 이해했다. 그리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투사는 과거의 내 모습 중에서 이해되지 않던 많은 부분을 설명해 주었다. 나는 경계가 모호한 사람이었는지 내 안에서 일어난 경험이 타인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착각한 일이 유독 많았다. 착각으로만 끝나면 다행인데, 혼자 상처받고 분노하고 심지어는 상대방을 미워하는 일도 많았다. 안 그래도 좁디좁은 인간관계는 점점 더 비좁아졌고 내 마음의 크기도 함께 옹졸해졌다.


하지만 이제는 내 안에서 올라오는 경험들 중에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다면 종종 묻는다. 이건 내 것일까, 타인의 것일까? 경험의 주체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은 상황을 훨씬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질문하기 전에 먼저 홀려버린 탓에 한참 지나고 알아차리는 일도 여전히 있긴 하지만.


상담에서 선생님과 투사에 관하여 다루는 일도 많아졌다. 오늘도 그랬다. 투사인지 모르고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불과 일주일 사이에 그것이 투사였음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거둬들인 나를 고백했다. 아니, 고발했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나를 부끄러워하면서.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남의 것인 줄 알았던 감정이 결국을 내 것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또 그 투사를 거둬들이는 일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셨다. 뒤늦게 알아차리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부끄러운 거예요.


신뢰 문제가 있는 나는 선생님의 설명에 한 번에 위안을 얻지 못하고 “모르면 부끄러워할 일도 없지 않을까요?” 되물었다. 나의 질문에 선생님은 차분히 질문으로 답하셨다. “모르고 당할래요, 알고 당할래요?” 나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당연히 알고 당하는 편이 더 좋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나도 모르게 투사를 하고 거둬들이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셨다.


상담을 받을수록, 그리고 공부를 할수록 인간은 너무나도 개인적이고 제멋대로인 존재라는 생각하게 된다. 각자 자신의 시선으로 세계를 경험하고 해석하기에, 본질적으로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공감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의 일이라고 믿게 된다. 내가 경험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나의 것인지 남의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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