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고백

by party noodle

이번 가을에는 유난스럽게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읽은 시집이 유일하다. 진은영 시인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시인의 말부터 신형철 평론가의 해설까지 확실하게 좋아서 여러 번을 읽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 집 책꽂이에 모셔질 예정이다.


가장 좋았던 시는 이 책의 제목이 된, 가장 첫 순서로 실린 시. 이 시의 첫 행이 시집 제목이 되었기 때문인지, 아님 첫 문장을 읽은 순간 마음을 빼앗겨서인지 시집을 읽기 시작한 날부터 이 문장이 종종 머릿속을 굴러 다녔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그러다 어느 날엔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궁금해졌다. 오래된 거리처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무래도 ‘거리’와 ‘사랑한다’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데. 어떻게 거리가 사랑을. 조금 양보해서 거리 사랑할 수는 있어도 거리처럼 사랑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며칠 동안 틈틈이 그 문장에 마음이 붙들렸다. 그러다 어느 저녁에, 어릴 때 살던 동네의 골목들이 떠올랐다. 몇 달 전에 엄마와 함께 밤산책을 했던 곳. 나이를 먹은 엄마와 내가 아주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찾아가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맞이해 주던 낡은 길들. 많은 것이 빠르게 사라지고 생겨나고 부수어지는 이 도시에서 어찌저찌 살아남은 그 거리들.


이제는 오래된 거리로 남아있는 일이 생각보다 쉬운 일도, 흔한 일도 아니구나. 그렇다면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한다 “는 이 말은 얼마나 단단하고 낭만적인 다짐인지. 우리가 영원을 약속하고 싶어도 ‘영원히’를 붙여버리는 순간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 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고백이자 약속이겠지. 유한한 내가 ‘널 영원히 사랑한다’는 마음을 의도에 가장 가깝게, 거짓 없이 표현하고 싶을 때 말할 수 있는.


내가 추측한 것이 시인의 의도와 일치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멋대로 그 사랑의 무게를 측정했더니 더 이상 그 문장이 머릿속을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일은 없었다. 요즘은 그 시를 외우고 싶어서 기억할 수 있는 만큼 일부러 떠올리고 되뇌인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언젠가 책을 펴지 않고도 이 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읊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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