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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사주 Feb 03. 2017

젠트리피케이션, 동네가 뜨면 주민은 쫓겨난다

지금, 여기 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이슈들

요즘 뜨는 동네는 어디일까요. 경리단길? 해방촌? 익선동? 이들 동네는 감성을 자극하는 골목과 특색있는 상점들이 가득합니다.  사실 이 동네들의 미래를 예견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방송과 SNS를 통해 '핫플레이스'로 소문이 나고 사람들이 몰리겠죠. 독특한 감성의 상점은 흔한 대기업 브랜드들로 채워질 거고요. 사람들은 좀더 색다른 곳을 찾아 떠나고 누군가에겐 '한 때 잘 나갔던 동네(?)'로 기억되겠죠. 원주민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을 테고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의 한 현상입니다. <뉴스의 배경>은 뜨는 '동네의 역설'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우리 동네 나아가 우리 도시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구도심이 번성해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쫓겨나는 현상


영국의 전통적인 중간계급 ‘젠트리gentry’에 접미사 ‘-fication(~화되기)’을 붙여 만든 조어로, 1964년 영국 도시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런던 도심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처음 사용했다. 애초에는 중간계급의 속물성을 비꼬려는 의도가 다분했지만, 영미권 도시들에서 비슷한 일이 연잇고, 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개념으로 차용되면서, ‘오래된 도시의 공간 변화’를 뜻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도시발전 양상은,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중심에서 외곽으로 인구와 생산, 소비활동이 이전하는 ‘교외화(suburbanization)’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1960년대를 전후로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노동계급 등 하층민만 남았던 도심지역에, 어느 날부터 주류사회에 저항적이고, 문화적 소양이 있고, 정치적으로 진보성향을 띤 중간계급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이다. 


동네는 점점 좋아졌고, 돈 없는 하층민들은 쫓겨났다


교외의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대안적인 삶을 찾아온 이들은, 가장 먼저 낡은 집을 ‘귀족풍’으로 개축했다. 세련된 주택은 그 자체로 유인이 되어 더 많은 중간계급들을 끌어들였다. 동네는 점점 좋아졌고, 자연스럽게 집값과 임대료가 오르며 돈 없는 하층민들을 내몰았다. 글래스는 주거환경이 개선됨에 따라 동네 주민의 계급 구성과 지역의 성격이 바뀌는 이 과정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명명했다.


1960년대 영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이 다채로운 도시문화에 대한 중간계급의 욕망에 따른 것이라면, 비슷한 시기 미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탈공업화의 여파로 추동되었다. 뉴욕 소호를 한번 보자. 


당시 뉴욕의 구도심은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탈공업화, 서비스화, 전문화가 진행되면서 쓸모를 잃은 창고와 공장으로 넘쳐났다. 빈 건물들이 우범지역이 되어 치안 문제를 일으키자, 해결책을 고심하던 뉴욕 시는 돈 없는 예술가들에게 건물을 헐값에 빌려주기로 결정했다. 예술가들도 물론 호응했다. 싼 월세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창고였던 건물의 높은 천장과 큰 창문이 작품을 설치하거나 옮기기에 매우 좋았다. 좁은 골목과 낮은 건물이 조화를 이룬 풍광도 미학적일뿐더러, 다양한 사람이 모여 사는 만큼 분위기도 자유분방했다. 


대형부동산 프로젝트로 확장되다


소호에 예술가들이 정착하자 뒤이어 갤러리가 들어섰다. 힙하고 세련된 동네 분위기에 사람들을 몰려왔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서 지역의 유명세는 더욱 높아졌다. 높은 천장, 구획되지 않은 내부, 벽돌이 드러난 벽면 등으로 대표되는 ‘로프트loft 스타일’은 차가운 도시 남녀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매김 했다.

그 다음은? 짐작대로다. 부동산 업자가 개입하고, 임대료가 오르고, 예술가들 대신 돈 있는 사람들이 들어오고, 거리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와 명품 숍이 속속 들어섰다. 이것이 ‘예술의 거리’ 소호의 영고성쇠의 역사이자, 2000년대 서울의 망원동, 상수동, 이태원,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 서촌, 해방촌 등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고전적 젠트리피케이션은 이처럼 문화자본을 지닌 중간계급 개척자, 젠트리파이어gentrifier가 값싼 작업공간을 찾아 낙후된 지역에 정착하고→그들의 활동으로 지역이 미학화되어 문화가치가 상승하면→경제자본이 들어와 미학을 평준화시키면서 이윤을 얻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헌데 20세기 말 젠트리피케이션이 전지구화 되면서,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양태가 더해졌다. 중간계급이 게토화 된 주거지역에 침투하면서 지엽적이고 산발적으로 벌어졌던 것이, 국가와 자본이 개입된 대형 부동산 프로젝트로 확장된 것이다. 대기업 등 글로벌 거대 자본과 스타 연예인들이 중간계급마저 몰아내는 슈퍼젠트리피케이션, 서민 주거지에 고급 주택단지를 조성하는 신축 젠트리피케이션이 그 예다.3 


'두리반 사건',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의 모든 것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는 2009년 ‘두리반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지하철 홍대입구역 어귀의 칼국수집 ‘두리반’은,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젠트리피케이션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당시 강제철거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속절없이 떠난 다른 가게들과 달리 ‘두리반’은 농성에 돌입했고,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던 홍대의 예술가들이 이에 연대했다. 칼국수집 주인과 예술가들은 공연과 전시, 콘서트를 저항수단으로 삼아 531일을 버틴 끝에, ‘비슷한 상권에서 영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약속을 시행사로부터 받아냈다. 


‘두리반 사건’에는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의 거의 모든 특징이 담겨 있다. 서구의 젠트리피케이션이 블록별로 새로운 중간계급의 거주지 및 편의시설이 점차 개조되는 형태라면, 한국은 많은 방문객들의 소비와 여가를 위한 핫스팟을 갖춘 상권으로 개조된다는 점, 보통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일, 주거, 상업 등 일상생활의 폭넓은 영역에서 일어난다면, 한국에서는 문화예술과 관련한 사업을 벌이는 데서 가장 집약적으로 일어난다는 점,4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가 주로 예술가/소상공인이라는 점이다.  


홍대, 외부인 건물주 75퍼센트


이러한 흐름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시장이 침체에 접어들며 가속화되었다. 아파트에서 시세차익이 나지 않자, 돈 있는 이들 상당수가 건물에 투자하기 시작했다.5 때마침 정부의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돈 많은 사람은 은행에 넣어둘 돈으로 건물을 사고, 돈 없는 사람은 대출을 받아 건물을 샀다. 홍대만 보자면, 2006년 절반에 불과했던 외부인 건물주 비율이 2015년 현재 75퍼센트를 웃돈다.6

 

건물주들은 기존 주택이나 건물을 상가건물로 고친 다음, 임대료를 높게 책정해 새로운 임차인을 받았다.7 수많은 소상공인이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 못해서, 혹은 건물주에게 쫓겨 근거지를 떠났다. 보통 임차인들은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최대 5년까지 계약기간을 보장받지만, 재건축의 경우는 예외다. 즉 건물주가 건물을 새로 짓거나 고치겠다고 하면 임차인은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무조건 나가야 한다. 혹시라도 버티면 건물주는 용역(이라 쓰고 깡패라고 읽는다)을 동원해 강제철거를 집행할 수 있다. 


그러자 작은 가게 주인과 예술가들이 연대에 나섰다. 처음에는 신촌을, 다음에는 홍대를 빼앗긴 이들은, ‘두리반 사건’을 기점으로 반反젠트리피케이션의 선봉이 되었다.8 2013년 시민단체, 변호사들과 함께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를 발족한 예술가/소상공인들은 부동산 자본에 저항하고, 동네 주민과 임차인이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문화축제를 열고, 힘을 모아 대안적 공간을 확보하는 한편, 임차인의 생존권보다 건물주의 재산권을 우선시하는 법안을 개정하는 데 온힘을 쏟고 있다.


자연스러운 변화로 수용하라! VS 건물주의 배만 불린다!


이와 같은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도시재생’이라는 긍정적인 면에 주목하면서 자연스러운 변화 과정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측이 있는가 하면, 예술가와 지역민들이 기껏 문화적 인프라를 닦아놓았더니 자본가/건물주가 무임승차로 배를 불린다는 측도 있다. 대도시 핫 플레이스는 중앙 및 지방정부가 세금으로 인프라를 구축하고 예술가와 지역민들이 문화자본을 투입한 곳이 대부분인데, 자본가/건물주들이 단지 땅과 건물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와 타인들이 생산한 부를 독식한다는 것이다.9 


새로운 자본가/건물주가 지역의 상생, 균형, 발전은 안중에 없고, 돈 벌기에만 급급하다는 것도 비판 지점이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신현준 연구교수는 “이전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역에서 나름 함께 동네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슈퍼젠트리피케이션은 그렇지 않다. 자기네들의 네트워크가 다른 곳에 있기에 동네, 장소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10 


젠트리피케이션이 부동산, 금리, 법, 부의 불평등한 분배 등 굵직한 의제들과 얽히자, 지방정부들은 잇달아 관련 대책을 내놓았다. 이를테면 서울시는 2015년 11월, 이른바 ‘뜨는 동네’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막기 위해 지원을 본격화하고 관련 법제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세부 내용은 ▲대학로·인사동·성미산마을, 신촌·홍대·합정, 북촌·서촌, 해방촌, 세운상가, 성수동 등 6개 지역 부동산을 시가 사거나 빌려서, 지역 특성을 대표하는 핵심시설을 만든 다음, 영세 소상공인과 문화예술인들에게 싼값에 대여한다. ▲상가 매입을 원하는 소상공인에게는 8억 원 안에서 매입비의 최대 75퍼센트까지 저리로 융자해준다. ▲노후 상가 건물주에게 리모델링·보수 비용을 최대 3,000만 원까지 지원하는 대신, 건물주가 일정 기간 임대료를 올리지 않고 임대기간 보장도 약속하는 ‘장기안심상가’를 운영한다. ▲상기 내용을 담은 ‘상가임차인 보호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중앙정부에 ‘젠트리피케이션 특별법 제정’을 건의한다 등등이다. 199억 원이 투입되는 정책은 임대인과 임차인, 주민, 전문가, 공무원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가 주축이 돼 추진할 예정이다.11 



참고


1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저, 신현준·이기웅 편,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 푸른숲, 2016.

2 <사랑과 영혼> <나인 하프 위크> 등 당대 영화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도예가, 미술 큐레이터, 주식중개인 등 여피yuppie로 설정된 주인공들은 소호의 로프트에서 쿨한 삶을 살아간다.

3 이 경우 원주민의 전치displacement만 있지 중간계급의 미학적 기여가 없기 때문에,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4 앞의 책

5 허환주, ‘슈퍼 젠트리피케이션 진행…마을 파괴 잔혹사’, 프레시안, 2016.2.3.

6 음성원, ‘홍대 앞 젠트리피케이션을 이해하는 4가지 키워드’, 허핑턴포스트, 2016.7.26.

7 장사가 잘 되는 가게일 경우 건물주가 임차인을 내보내고 직접, 혹은 아들딸에 맡겨 운영하기도 한다. 일설에 따르면 임차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 “(건물주) 아들이 돌아왔다”라고 한다.

8 이것이 예술가 젠트리파이어의 딜레마다. 그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비/자발적 주체이자 희생자다.

9 이태경,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의 잔인한 영겁회귀”, 허핑턴포스트, 2015.7.15.

10 허환주, 앞의 글.

11 안광호, “성수동·해방촌 등 6곳 ‘젠트리피케이션’ 막는다”, 경향신문,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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