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와 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이슈들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경제도 안 좋은데 김영란법을 좀 풀자는 얘기가 정부쪽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일부 언론이 맞장구쳤습니다. 이 법을 완화하면 경제가 살아날까요? 아니면 부정청탁으로 이 나라 경제는 유지되는 걸까요? 논란 속에 <뉴스의 배경>이 김영란법의 배경을 통해 그 의미를 되짚었습니다.
2012년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다 해서 붙었다. 애초 공직자만을 타깃으로 한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으로 발의했으나, 국회 의결 과정에서 ‘이해충돌방지’ 부분이 빠지며 지금과 같은 이름이 되었다. 공직자가 부정한 의뢰를 받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1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부정청탁과 금품수수의 통로를 원천봉쇄하여 부정부패가 일어날 수 없는 토양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처벌’이 아니라 ‘거절’의 근거(“청탁금지법 때문에 안 된다”)를 마련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청탁금지법의 배후에는 이른바 ‘벤츠 검사 사건’이 있다. 2011년 부산지법 현직 검사가 변호사인 내연남으로부터 사건 청탁을 대가로 벤츠 자동차 등 고가의 금품을 주고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검찰은 특임검사를 임명해 수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벤츠 검사’뿐만 아니라 현직 부장판사가 변호사로부터 170만 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현직 검사장급 두 명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건 및 인사청탁을 받았다는 혐의가 포착되었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은 이들이 현금을 받은 것도 아니고, 변호사와는 평소 친분이 있어 몇 번 만나 밥을 먹은 것뿐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형사입건을 하지 않았다. 관련 혐의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으로 결론 내렸다.
‘벤츠 검사 사건’ 피의자들에게도 검찰과 법원은 ‘관용’을 베풀었다. 두 사람이 2007년부터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2008년 2월부터 벤츠 승용차를 비롯해 법인카드, 샤넬 핸드백 등을 주고받았으나 어디까지나 호의였을 뿐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고, 즉 2008년부터 받은 금품이 2010년의 사건 청탁과 직접 관련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하여 대법원은 2015년 3월 14일 화이트데이에 “사랑해서 준 돈이지 청탁이 아니다”라며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시민의 56.7퍼센트가 ‘공직사회가 부패하다’고 인식하는 현실2에 정확히 부응하는 사건과 전개. 국회의원, 판검사 등 고위공직자들이 직위를 이용해 부정부패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데 반해, 사법부의 처벌은 일반 인식에 훨씬 못 미치는 미미한 수준에 그치자 시민사회는 크게 분노했다. 나아가 법을 임의적으로 해석하며 권력을 남용하는 이들을 제재할 강력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청탁금지법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발의되었다. OECD 34개국 중 '부패인식지수'가3 27위에 달하고, 선진국 중 개발도상국의 부패가 남아있는 유일한 국가라는 오명이 따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청탁금지법은 뜻밖에도(?) 명절이나 생일 같은 ‘날’이면 으레 고가의 선물이 오가곤 하는 풍토, ‘을’이 당연히 ‘갑’을 ‘접대’하는 관습, 이렇게 다진 친분을 비선으로 이용하는 불투명한 ‘관행’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법안은 2012년 8월 16일 제안돼 이듬해 7월 국회에 올라갔다. 그러나 시행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일단 국회 본회의를 거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원안에 대폭 수정이 가해졌다.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부정청탁’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죄의 경중이 아니라 돈의 액수를 형사처벌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가, 직계가족과 배우자가 청탁금지법을 어길 경우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과 형법의 ‘불고지죄’4는 양립할 수 있는가, 배우자의 죄를 물어 처벌하는 것은 연좌제가 아닌가, 국가 지원을 받는 KBS, EBS 임직원을 포함시킨다면 다른 언론사와의 형평성에 위배되지 않은가 등이었다.
특히 공직자들의 소관 업무와 관련된 법인과 단체에 4촌 이내 친족 채용을 금하고, 이들과 연관된 일을 못하도록 한 청탁금지법의 정수, ‘이해충돌 방지조항’을 놓고 첨예한 공방을 벌였다. 법관 같은 개별업무 수행자가 아닌 다음에야 제척除斥이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이유에서였다.5 오랜 갑론을박 끝에 국회는 마침내,
▲ 부정청탁의 유형을 열다섯 가지로 추리고→ 이외 부정청탁은 면죄부를 얻었다.
▲ 법의 적용 대상을 직계가족과 배우자에서 ‘배우자’로 축소하고→ 역대 부정부패 사례를 보면 부모, 형제자매, 자녀가 개입된 경우가 가장 많은데, 이를 처벌할 수 없게 되었다.
▲ KBS, EBS를 비롯한 모든 언론기관과, 국공립학교를 비롯한 사립학교, 사립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까지를 적용 대상으로 삼고
▲ 식사대접은 3만 원, 선물은 5만 원, 경조사비는 10만 원까지로 정하고
▲ 이해충돌 방지조항을 삭제한 수정안을 2015년 3월 3일 통과시켰다.6
여러 이익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일단 대한변호사협회, 기자협회, 인터넷언론사, 사립학교·사립유치원 임직원이 헌법재판소에 ①언론인과 사립학교 임직원을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점 ②배우자가 금품을 받은 것을 공직자 등이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하도록 한 점 ③음식물·경조사비 등 받지 말아야 할 금품의 최대 액수가 얼마인지 법으로 정하지 않은 점 ④‘부정청탁’과 ‘사회상규’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 등이 ‘헌법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전경련은 안 그래도 어려운 국가 경제가 더 위축된다며, 법이 시행될 경우 예상되는 손실을 11조 원으로 잡아 제시했다(이에 대해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대한민국 부패 규모가 11조란 소리냐”고 받아쳤다). 몇몇 언론사도 언론사와 언론인을 감시·감독할 합법적인 길을 사법기관에 열어줌으로써 언론의 자유가 침해될 위험이 있다며 반대 의사를 표했으나,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2016년 7월 28일 헌재는 대한변협 등이 낸 네 건의 헌법소원에 대해 모두 각하 결정을 내렸다. 청탁금지법은 2016년 9월 28일 시행되었다. 그와 동시에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은 청탁금지법을 4급 이상 공무원에만 우선 적용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새누리당 김종태, 이완영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의원도 농수축산물을 3년 동안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강남의 한 일식집은 2만 9,800원짜리 ‘김영란 특정식’을 개시했다.
참조
1 단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기준의 제정·개정·폐지 또는 정책·사업·제도 및 그 운영 등의 개선에 관하여 제안·건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시민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지 않도록 고려한 것이다.
2 국민권익위원회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 바로알기
3 CPI(Corruption Perceptions Index). 각국의 공공부문 및 정치부문에 존재하는 부패정도를 나타낸 수치. 해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다. 여기서 부패는 “사적 이익을 위한 공적 지위의 남용”으로 정의된다.
4 범죄 사실을 알고도 범인을 숨겨줄 경우 처벌하는 죄. 단 가족과 친족은 예외다.
5 조윤호, ‘“김영란법,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다”’, 미디어오늘, 2016.8.3.
6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이해충돌 방지조항이 빠진 청탁금지법은 핵심이 누락된 것이라면서, 2016년 8월 이 조항을 포함한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법안을 마련한 김영란 전 위원장도 ‘조심스럽게’ 유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