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킹_지금, 여기 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이슈들
혹시 '마스킹'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영화의 본래 화면비를 지켜주는 장치로, 영화 시작 전 검은색 천으로 남는 공간을 가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걸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영화 몰입도는 물론, 해석과 감흥이 달라집니다. 마스킹은 영화 상영의 기본이지만 국내 영화관에서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관객들이 잘 모르는데다 귀찮다는 핑계를 댑니다. 영화 시작 전 광고에 지친 관객들은 이제 가장 기본적인 볼권리조차 빼앗기고 있는 셈입니다. <뉴스의 배경>이 마스킹의 중요성과 그조차 외면하는 국내 영화관의 현실을 짚었습니다.
지금이야 가로가 길고 세로가 짧은 직사각형 스크린이 당연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초창기 스크린은 가로세로 비율이 1.33:1로 정사각형에 가까웠다. 영화감독과 제작자, 평론가들은 1.33:1이 ‘인간의 영혼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황금비율’이라고 생각했다. 해서 1.33:1은 간간이 1.37:1이나 1.20:1 같은 변주를 허락하며 수십 년 간 헤게모니를 유지했다.
위기는 1950년대 초 텔레비전이 보급되며 닥쳐왔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영화를 보려면 돈과 시간을 쪼개 극장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나오고서는 제 집 거실에 편안히 앉아 아무 때나 원하는 영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무시무시한 경쟁자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영화제작자들은 텔레비전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도록 극장경험을 극대화시키기로 결심했다. 즉 커다란 화면과 빵빵한 사운드로 사람들의 이목을 호리려 했다. 가로가 긴 와이드스크린wide screen은 이 같은 전략의 산물이었다.
시네라마, 토드AO 등 다양한 크기의 와이드스크린이 쏟아졌으나,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와 비스타비전vista vision이었다. 화면비 2.35:1의 시네마스코프는 세로에 비해 가로를 압축해 담아내는 애너모픽렌즈의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만드는 방법도 매우 간단해서, 애너모픽렌즈를 부착한 일반 카메라로 이미지를 압축해 찍은 다음, 영사할 때 풀어주면 되었다. 1926년 프랑스의 앙리 클레티앙이 발명했지만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빛을 못 보았던 시네마스코프는, 1953년에 이르러 거의 모든 스튜디오가 애용하면서 보편적 사이즈로 자리매김했다. 단 파라마운트는 예외였다. 파라마운트 사장은 기술진의 끈질긴 조언에도 “리본 같은 모양이 화면구성을 방해한다”며 끝까지 시네마스코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체 와이드스크린을 개발했으니, 바로 화면비 1.85:1의 비스타비전이다(참고로 유럽의 비스타비전은 1.66:1이다).
거문고의 생김새가 그러하기 때문에
제작사들이 돈 때문에 황금비율을 깨뜨리자, 수많은 감독과 비평가들이 들고 일어섰다. 와이드스크린은 1.33:1의 순수성에 대한 배반이다, 오락거리라면 몰라도 진지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느냐, 빨랫줄이나 찍으면 모를까 가로로 긴 화면이 대체 무슨 소용이냐며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헤게모니는 이미 와이드스크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재능 있는, 진지한 감독이라면 <파리, 텍사스>처럼 광활한 풍광으로 인물의 쓸쓸한 정서를 대변한달지, <올드보이>의 장도리씬 같은 아이디어를 낸달지, 여하간 널찍한 화면에 맞는 영화언어와 미학을 고심해야 했다. 화가의 캔버스처럼 영화감독에게 스크린은 ‘작가’로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전시하고,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몽타주와 함께 미장센이, 편집과 함께 촬영이 영화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와이드스크린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시네마스코프가 주류였다. 1980년대를 전후로 비스타비전에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2000년대 다시금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몇몇 감독들은 여전히 자신의 영화세계를 드러내고,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다른’ 화면비를 선택했다. 이를테면 봉준호는 기차, 배수로, 하수관 등 장소의 폐쇄성을 표현하는 데 가로가 좁은 화면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 <마더>를 제외한 모든 영화를 비스타비전으로 찍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에서 웨스 앤더슨은 1930년대는 1.33:1로, 1960년대는 2.35:1로, 1980년대는 1.85:1로 담아내며 영화 화면비를 시대의 틀로 삼았다. 지아장커는 <산하고인>에서 인물의 생활 반경과 함께 화면비를 1.37:1에서 1.85:1, 2.35:1로 넓혀나갔고, 자비에 돌란 <마미>의 주인공들은 줄곧 1:1 화면에 갇혀 있다가, 거리를 질주하는 순간 확장된 1.85:1의 화면에서 해방감을 만끽했다. 허우 샤오시엔은 <자객 섭은낭>을 1.33:1로 찍다가, 등장인물이 거문고를 연주하는 장면만 1.85:1로 바꾸었다. 이유는 단순명쾌했다. “거문고의 생김새가 그러하기 때문에.”
마스킹은 크게 좌우를 가리는 사이드마스킹side masking과, 위를 가리는 탑마스킹top masking으로 나뉜다. 방식은 기본 화면비가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2.35:1의 시네마스코프 화면이 기본인 극장에서 1.85:1 비스타비전 영화를 상영한다고 해보자. 세로 길이는 딱 떨어지겠지만 가로가 남는다. 사이드마스킹은 스크린 양 옆에 커튼을 설치해서 이 부분을 가리는 것이다. 요즘 나오는 영화 대부분이 시네마스코프 사이즈고, 다른 크기의 영화를 상영할 때는 남는 부분을 커튼으로 가리면 되기 때문에, 사이드마스킹은 현재 극장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안정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한국의 영화관 95퍼센트는 시네마스코프가 아니라 비스타비전을 기본으로 설계돼 있다. 2000년대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좁은 곳에 최대한 많은 상영관을 집어넣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이런 극장에서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상영한다고 해보자. (키스톤keystone 현상 등 여러 복잡한 이야기가 있지만 다 생략하고) 산술적으로 2.35:1 화면을 1.85:1 스크린에 맞추면 세로가 얼마간 남는다. 이때 화면 위아래에 넓은 회색 띠, 레터박스letterbox가 드러나게 되는데, 탑마스킹은 가림천으로 이 부분을 가리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 남는 화면은 꼭 가려야만 하나? 그냥 두면 안 되나?
레터박스는 화면이 밝을 때에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다크나이트>처럼 어둠이 중요한 영화, 음영이 강한 스릴러물들에서는 심각하게 ‘튄다’. 캄캄한 밤, 첨탑처럼 솟은 건물 꼭대기에서 고담시를 내려다보는 배트맨을 상상해보자. 짙은 어둠이 깔린 커다란 도시, 그 한 곁에 위태롭게 서 있는 베트맨의 대비는, 고담시라는 절대악의 크기와 이를 상대해야 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고독을 상징한다. 그런데 여기서 마스킹을 안 한다? 배트맨 머리 위에 회색 띠가 생기면서 악이고 고독이고 다 헛일이 된다.
화면에 대한 관객의 몰입도와 해석과 감흥도 응당 달라진다. 마스킹 없는 화면은 심사숙고해서 장면을 구성한 감독의 미학적 결정과, 온전한 이미지를 볼 관객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마스킹의 설치와 활용은 영화관 운영의 기초다. 1.66:1이나 1.33:1 비율의 고전영화를 틀 때 제대로 된 마스킹을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1.85:1과 2.35:1 비율의 영화는 반드시 정확하게 마스킹을 해야 한다.”1
2013년 한국 최대의 극장 체인 CGV(스크린 점유율 40퍼센트)가 마스킹 없이 영화를 틀기 시작했다. 상영시간 내내 레터박스가 떡 하니 나와 있으니 관객들은 당연히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자 CGV는 “마스킹 고장으로 영사사고가 발생할 시 빠른 조치가 불가하다”고, 한마디로 “천을 내리기 귀찮다”2고 답했다.
CGV 몇몇 지점의 ‘일탈’은 곧 전체 체인으로, 업계 전체로 번졌다. 이제 한국의 극장에서는 마스킹 없이 영화를 상영하는 게 ‘표준’이 되었다. 2.35:1 화면 양옆을 잘라 1.85:1에 맞추는 팬앤스캔pan-and-scan도 스스럼없이 저질렀다. 심지어 롯데시네마는 “신설 영화관에는 ‘실링Ceiling’이라고 천장에 영사기를 달아놓”는 등 “아예 영사실을 폐쇄”했다.3 이에 항의하는 관객들의 목소리는 ‘트렌드’라는 명목 아래 무시되었다. 질 떨어지는 화면을 선사하는 이 트렌드는 물론 한국에서만 있는 것이다.4
2016년 2월 CGV는 “콘서트나 뮤지컬, 오페라, 스포츠 관람이 좌석 위치에 따라 가격이 다른 것처럼, 영화도 시간대와 위치에 따라 가격을 달리”해야 한다면서, 3월 3일부터 ‘좌석별 가격차등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관객들이 덜 몰리는 시간과 보기 불편한 좌석은 좀 싸게, 붐비는 시간과 선호하는 좌석은 비싸게 값을 받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대와 상관없이 관객들은 화면이 잘 보이는 자리를 선택하기 마련, 사실상 가격을 올리겠다는 통보였다. 이에 시민들의 불만이 폭주했는데, 영화관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스크린을 독점하여 관객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영화보다 광고 트는 것을 더 중요시 여겨 상영 예정시간을 넘기기 일쑤인 CGV가 과연 가격을 올릴 자격이 있느냐는 지적이었다.5
2014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상영관 관람환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영화관 중 과반 이상이 기본도 안 된 조건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즉 관객은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언제든 시야각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올바르지 않은 영사 비율로 영화를 보거나, 적정 밝기가 아닌 스크린을 볼 가능성에 항상 노출된 셈이다.”6
참고
1 듀나, 『가능한 꿈의 공간들』, 씨네21북스, 2015.
2 “마스킹 천을 내리는 기계는 모터가 들어가 있으니 고장 날 수도 있다는 건 인정한다(지난 1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직업상 1년에 200여 편의 영화를 본다. 확률을 계산해보시라). 이런 사고가 운영에 지장을 줄 정도로 자주 일어나는가? 그리고 만약 기계가 고장 나서 마스킹 천을 내리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다고 치자. 그 결과는 어떤가. 바로 지금 CGV에서 상영하는 바로 그 상태가 된다. 다시 말해 아무리 머리를 짜도 이 답변은 천을 내리기 귀찮다는 말밖에 안 된다.” 듀나, ‘CGV는 무엇이 그렇게도 귀찮았을까’, 엔터미디어, 2013.3.27.
3 이종완, ‘“가리는 게 어렵나요” 마스킹 무시하는 영화관’, 위키트리, 2015.12.1.
4 듀나, 앞의 책.
5 이를테면 영화제작사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개인 SNS에 “좌석별 가격차등제 시행한다고요? 스크린 마스킹도 안 해주면서. 비뚤어진 스크린, 어두운 램프. 어디에 앉든 그런 스크린으로 영화 봐야 하는 관객한테 좌석 가격차등이요? 정말 너무하네요”라고 비판했다. 하성태, ‘영화다양성은 NO, 가격다양성은 OK? CGV의 꼼수’, 오마이뉴스, 2016.2.29.
6 안신호, ‘영화관에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것들’,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201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