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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사주 Nov 21. 2017

부록Ⅱ 순정? 그런 거 난 모르겠고 ②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강모림, 석동연

세간에서는 ‘순정’만화를 “비현실적인 그림체로 그린, 여자애들이나 보는 사랑 놀음”으로 정의했지만, 실제 순정만화는 다양한 그림체와 이야기로 세계를 투영했습니다. 8등신의 아름다운 인물 데생과 화려한 삽화, 쿨한 정서가 대세였던 시절 SD 캐릭터와 자기 모순적 유머로 길을 낸 강모림과, 네 컷 만화라는 틀 안에서 자유로이 상상력을 전개했던 명랑만화의 귀재, 석동연 작가를 소개합니다. 



강모림


데뷔작| 1991년 <고니의 몽상일기>

대표작| 《달래하고 나하고》 《여왕님 여왕님》 《샴페인 골드》 《10, 20 그리고 30》 《고양이 왕자》



8등신의 아름다운 인물 데생과 화려한 삽화, 쿨한 정서가 대세이던 시절 SD캐릭터와 토속적인 정서, 자기모순적 유머로 길을 낸 작가. 1969년 대전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만화 보기, 그림그리기에 빠져 지냈다. 그럼에도 딱히 만화가가 될 생각은 안 하다가, 뭐가 계기였는지 고교 졸업 후 직장에 다니며 혼자 만화를 익혔고, 1991년 『르네상스』에 <고니의 몽상일기>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필모그래피는 크게 2000년을 전후로 나뉜다.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원안이 된 《10, 20 그리고 30》같은 이성애/성인/연애물도 있었지만, 전반기에는 주로 SD캐릭터와 함께 귀엽고, 착하고,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작품을 많이 했다. 《달래하고 나하고》 《여왕님 여왕님》 같은 작품이 이 계보에 속한다. 그러다 2002년부터 몇 년 간 휴지기를 갖고서는 여러 의미로 성숙해진다. 


잘 나가던 작가가 갑자기 잠적한 속사정을 자세히 알 길을 없지만, 시장이 흥하건 망하건 꾸준히 열악했던 만화/가 처우가 한 몫 한 듯싶다. “10년 동안 만화를 그리다가 문득 갑갑함을 느껴 만화를 잠시 접었거든요. 죽어라 작업해 단행본을 내도 책값이 고작 3천 몇백 원인 현실은 허탈하기까지 하고…….”1 강모림은 이 허탈감을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재즈를 들으며 이겨냈고, 그렇게 힘을 추슬러 2006년 그림 에세이 《강모림의 재즈 플래닛》(안그라픽스)를 펴냈다. 


단촐한 별에 애벌레와 둘이 사는 복잡다단한 성격의 여왕님은 초창기 강모림의 이름을 각인시킨 캐릭터였다. 



이후에는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일단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비굴해도 괜찮아》 《그래도 고소해》 《여왕님의 별별통신》 《고양이 왕자》등 연재물을 꾸준히 발표했다. 할리우드 고전영화를 소개한 《강모림의 블랙 앤 화이트》, 관계에 대한 고민을 담은 《우주를 여행하는 그대에게》 등 그림에세이 작업도 지속했다. 재즈와 클래식 입문서 《내 인생 첫 번째 Jazz》 《내 인생 첫 번째 Classic》, 화가 마네와 모네를 소개한 《화가1》 등 교양/학습만화를 그리고, 외교통상부 기획만화 <봉수의 다이어리>를 만들었다. 2015년 “네이버 한국만화거장전: 순정만화특집”에 <마리의 연애>를 냈으며, 2017년 현재 ‘이코믹스’에 《마법사와 사는 법》을 연재 중이다. 



석동연


데뷔작| 1998년 <우리는 만화과>

대표작| 《그녀는 연상!》 《얼토당토》 《명쾌! 사립탐정 토깽》 《말랑말랑: 현란한 떡들의 맛있는 반란》



네 컷 만화의 장인. 텃밭 마니아. 공주대 만화예술과 1기 졸업생으로, 만화를 배우겠다는 일념에서 이미 다른 대학 졸업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체력장까지 다시 치르며 공주대에 입학했다. 학교고 선생이고 학생이고 모두 열정 가득한 풋내기라 과정 하나하나가 시행착오요 좌충우돌일 수밖에 없었는데, 석동연은 이 경험을 데뷔작으로 벼려냈다. 이것이 바로 1998년 1억 원 고료 서울문화사 만화대상 『나인』 부문 동상 수상작 <우리는 만화과>다.  


기승전결이 꽉 짜인 이야기, 번뜩이는 캐릭터, 해학과 아이러니를 포함한 전개, 언어를 다루는 감각이 이미 예사롭지 않던 데뷔작을 지나, 석동연은 네 컷 만화라는 틀 안에서 크게 두 갈래 길을 간다. 하나는 다른 감각과 눈으로 현실을 포착한 것이다. 연상인 여성과 연하 남성의 소소한 연애사를 재치 있게 그린『나인』의 연재작 《그녀는 연상!》이 그렇다. 

다른 하나는 동화와 만화 같은 판타지 세계 및 장르 관습을 비틀고 패러디하는 것이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 같은 유명 동화를 그야말로 얼토당토않은 방향으로 끌고 간 《얼토당토》(이 세계에서 신데렐라는 결혼 후에도 춤 버릇을 못 고쳐 ‘스텝의 제왕’이 된 왕자 때문에 속을 끓인다)가 대표사례다. 하지만 둘 중 어떤 길을 가든 캐릭터 잡는 솜씨가 기가 막혀서,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각각의 특징을 잡아내 유머러스하게 의인화하곤 한다. 각종 떡들의 일상다반사를 담은 《말랑말랑-현란한 떡들의 맛있는 반란》, 야채와 과일들의 예상치 못한 사생활 《왁자지껄 샐러드》, 셜록 홈즈를 패러디한 《명쾌! 사립탐정 토깽》들이 다 그렇다. 


네 컷 만화라는 틀 안에서 석동연은 자유로이 상상력을 펼쳐보인다. 


짧고, 쉽고, 재미있는 만화를 그린 덕분에 『윙크』 『오후』 같은 만화잡지 외에, ‘메트로’나 《씨네21》 등 타 매체에도 심심찮게 기고하곤 했다. 그러나 만화/잡지시장이 고사하면서 2000년대 중반 교양/학습만화로 장을 옮겨 《중학생이 되기 전에 읽어야 할 만화 영어 교과서》(스콜라) 등을 그리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오랫동안 텃밭을 일궈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떡볶이 아줌마의 자연탐구생활》《자연을 배우는 만화 텃밭 백과》를 냈다. 남편은 만화가 정필용이다.



참조


1 “열심히 일한 당신, 나처럼 재즈에 미쳐봐”, 조선일보, 2006.6.15. 이정애를 끝내 절필하게 만들었던 고료 미지급, 불공정 계약도 꾸준했다. 이를테면 2013년 인터넷 만화 플랫폼 ‘키위툰’은 저작권, 광고수익을 모두 회사가 가져간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작성해 물의를 빚었다. 



부록Ⅱ 순정? 그런 거 난 모르겠고 ①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김나경, 김미영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여성/만화/작가 중심의 한국 만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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