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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사주 Dec 29. 2016

남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혐오_지금, 여기 와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이슈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여성혐오를 조명했던 <뉴스의 배경>은 이 문제를 좀더 깊이 있게 다루기 위해 책에 소개된 여성혐오를 추가했습니다. 뿌리 깊은 여성혐오를 직시하지 않는 이상 이 사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여성혐오Misogyny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인식과 정서


여성혐오는 그리스어로 ‘싫어하다’라는 뜻의 ‘misein’과 ‘여성’을 뜻하는 ‘gyne’를 결합한 사회학 용어 미소지니misogyny를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어원대로라면 ‘여성을 싫어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의미여야 할 텐데, 실상은 사회적으로 복잡한 함의를 담고 있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에 따르면 여성혐오는 “성별이원제 젠더 질서의 심층적 핵”으로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 “여성의 객체화, 타자화,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여성 멸시”다.1 쉽게 말해 정치·사회·경제·문화·사상적 주도권을 쥔 남성들이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성과의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았다는 것이다. (남성에 비해) 왜소하고, 약하고, 월경을 하는 여성은 열등하고, 무능하고, 남성을 타락시키는 위험하고 변덕스러운 존재이며, 따라서 남성의 지배 아래 두어야 한다는 관념. 이것이 바로 여성혐오의 핵심이다. 


이러한 관념은 두 가지 상반된 태도로 표출된다. 한편에서는 여자를 노골적으로 깔아뭉개고 배재하고 증오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한다 등 유구한 속담(?)들이 대표 사례다. 다른 편은 보다 부드럽고 은밀한 방식을 택한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줘야/아껴줘야/지켜줘야 한다”가 이 경우다. 남성이 무시하는 여성과 인정하는 여성, 즉 ‘창녀 대 성녀’ ‘된장녀 대 개념녀’ 같은 이분법도 여기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여성혐오가 남성만의 전유물이냐, 아니다. 가부장제 사회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여성혐오를 내면화시킨다. 성폭력 생존자에게 “도대체 어떻게 행동했기에”라며 손가락질하는 여성들, 남편 잃은 며느리를 “아들 잡아먹은 년”이라고 닦아세우는 시어머니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남성이 여성을 멸시하는 동안, 여성은 자기혐오에 빠진다. 우에노의 지적대로 “중력처럼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는 구성원들의 묵인 아래 비판 없이 자행되었다. ‘보슬아치’ 같은 여성비하 용어가 일상화되고, ‘여자아이돌은 아재들의 비타민’ 같은 발언이 아무렇지 않게 전파를 탔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해 특정 부위는 물론이고, 동의 없이 성관계하는 장면을 몰래 찍어 공유하는 음란·범죄사이트 ‘소라넷’이 제재 없이 운영되었다. 외신들은 성인 여성에게 어린애 같은 언행을 요구하는 ‘애교 문화’를 여성혐오의 한 예로 소개했다. 그러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살인사건’이 터지면서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가 가시화·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비슷비슷한 논의들 중에서 우에노의 ‘여성 멸시’만으로는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여성주의 문화비평가 손희정의 주장이 눈길을 끈다. “당대 여성혐오는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멸시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삶의 조건에 내몰린 불안과 공포와 연결돼 있”으므로, 근대 가부장제와 더불어 최근의 경제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비판의 출발점이다. 


정치적 주체로서 자격을 박탈당하는 남성들의 불안


손희정에 따르면, 자본주의와 그 정치적 판본이라 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남성들 간의 평등한 관계를 약속하면서 세계사에 등장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환상에 불과하다. 돈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더 많은 자유와 권리와 기회와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여성’은 이런 진실을 폭로하는 존재다. 과거에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었다면 이제는 ‘돈=힘 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 하지만 비난은 자본주의나 돈 많은 남자가 아닌 미인에게 돌아간다. “자본주의의 거짓 약속과 그 제도적 오류를 직시하는 것보다는, 그 오류를 끊임없이 드러내는 여성을 혐오하는 편이 성별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더 쉬운 일이다. 이때 여성이 ‘액받이’가 되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성별중립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가부장제와 결합함으로써 ‘근대적 가부장체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와중에 신자유주의가 전지구화 된다. 더 이상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남성들은 그동안 당연히 누려왔던 지위를 위협받는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자신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동등한 시민으로서 시민권을 획득하고 국민의 한 명으로 인정받았던 남성들은, 자본주의 역사 이래 처음으로 정치적 주체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불안감 속에서 여성은 ‘꽃뱀’ ‘먹튀녀’처럼 남성을 등쳐먹는 존재나, 밥그릇을 빼앗는 강력한 경쟁자로 등극한다. 여성혐오의 성격도 멸시에서 위압감 혹은 박탈감으로 전환된다. 지난 세기 ‘아줌마’를 중심으로 전개된 혐오 담론이 한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다른 손에는 명품 가방을 든 여성(된장녀)과 자동차를 가진 여성(김여사), 즉 경제력 있는 여성으로 이동한 것이 그 증거다.2 여기에 교육과 경제력을 기반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남한) 여성에 대한 피로감이 더해지면 ‘김치녀’ 패러다임은 비로소 완성된다.



강남역 살인사건 한 여성이 서울 강남의 공용화장실에서 남성에게 무참히 살해된 사건


2016년 5월 17일, 한 여성이 서울 강남의 공용화장실에서 남성의 손에 살해되었다. 화장실에서 한 시간을 잠복해 있던 범인은 피해자가 오기 전까지 여섯 명의 남성은 그냥 돌려보냈다. 사건 직후 체포된 범인은 경찰 진술에서 “여자들이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으며, 피해자와는 모르는 사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범인이 평소 조현병을 앓았던 만큼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정신이상자의 묻지마 살인’으로 사건을 최종 브리핑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 등 저명한 프로파일러와 학자들도 이에 동조했다.  


하지만 여성들은 이 사건을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로 인한 범죄, 여성이기 때문에 살해된 ‘페미사이드femicide’로 인식했다. 남성들이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느끼는 박탈감과 분노, 우울을 여성에게 분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엔 산하 ‘유엔마약범죄사무소’ 자료를 보면 2008년 한국의 살인사건 피해자 중 여성의 비율은 51퍼센트로, 미국(22.5퍼센트), 중국(30퍼센트), 영국(33.9퍼센트), 프랑스(34.3퍼센트), 호주(27.5퍼센트)에 비해 매우 높다. 심지어 여성인권이 낮다고 평가되는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도 30퍼센트를 넘지 않는다.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혐오의 제로그라운드


한국범죄연구소 염건령 선임연구위원은 이 독특한 현상을, 다른 나라에서는 증오범죄가 주로 인종, 종교, 성적지향 문제로 불거지는 반면, 한국에서는 여성에게 집중되는 경향으로 설명했다. 정서상 노약자, 장애인,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폭력은 문제시되는 반면, 여성 폭력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와중에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고, 성평등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마저 희박해지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3 


사건이 보도되고부터 피해자의 입장을 공유한 여성들은, 범죄현장과 가까운 강남역 10번 출구에 ‘나는 너다’ ‘나는 오늘도 우연히 살아남았다’ 등의 추모 문구를 쓴 포스트잇을 붙이고 꽃을 놓으며 애도했다. 이에 일부 남성들이 추모 여성들의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외모를 품평하고, 모욕했다. 일부는 온오프라인에서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말라’ ‘남성혐오를 중단하라’는 항의시위를 하며 ‘여혐 대 남혐’ 구도를 구축했다. 


혐오는 결국 권력의 문제


그러나 미국 여성주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가 말한 바, “혐오 발화의 수행적인 힘은 개별 주체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문화적인 반복에서 비롯된다. 반복적으로 인용될 수 있는 역사적 맥락 없이 단지 일회적인 발화만으로는 상처와 모멸의 힘을 가질 수 없다.”4 쉽게 말해 “계집애처럼 굴지 마”가 “머슴애처럼 굴지 마”와 달리 상대를 모욕할 수 있는 것은, 이 말이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비하의 뜻으로 사용돼왔기 때문이다. 혐오는 결국 권력의 문제다. 헌데 가부장제 사회의 주체로서 남성은 한 번도 혐오의 ‘대상’이 된 ‘역사’가 없다. 남성혐오는 성립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한국 사회에 누적된 젠더 불균형 문제와 여성혐오가 폭발한 제로 지점(ground zero)이었다.


경찰 발표에 반하는 전문가 진단도 쏟아졌다.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그냥 ‘아무 사람’이 아니라 ‘여성 중 아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건이기 때문에 여성혐오 사건으로 보기에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5 서울대 사회학과 배은경 교수는 “이 사건이 진짜 조현병 증상 때문에 생긴 거라면, 오히려 여성혐오가 작동한 무의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했다.6 


정신과전문의 서천석도 “정신병 증상은 사회적 맥락에서 발현된다”면서 사건을 조현병 환자 개인의 일탈로 축소시키기보다 사회구조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시절에는 많은 조현병 환자들이 환청을 호소하면서 중앙정보부가 나를 미행하고 도청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1980년대 후반에는 CIA”가, “2000년대 이후에는 삼성이 소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여성혐오 의식이 정신병의 증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면 그 심각성을 인정하고, 사회 전반에 이런 의식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구조적 개혁을 하고 의식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7 


혐오가 차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교육을 통해 여성, 장애인, 외국인,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범죄임을 알리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이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국가/민족/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 전력, 보호처분, 성적 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다. 2007년 10월 처음 입법이 예고되었으나, 개신교 등 보수단체의 반발로 여태 미뤄지고 있다. 


2016년 6월 1일 정부는 강남역 살인사건 등에 대한 조치로 ‘여성 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 없는 범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CCTV 확충 및 신축 건물의 남·여 화장실 분리 설치 ▲여성 상대 범죄자에 대해 법정 최고형 구형 ▲여성 대상 강력범죄자에 대한 가석방 심사 강화 ▲정신질환자에 대한 응급입원 조치 시행 ▲학교에서 조기에 정신질환자를 분류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 등, 국가권력을 강화하고 ‘장애인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참고


1 우에노 치즈코 저, 나일등 역,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은행나무, 2012.

2 손희정, <우리시대의 여성혐오>, 《문화과학》, 2015.2.6.

3 김효정, <강력범죄 여성 피해자 한국 왜 많나>, 《주간조선》, 2013.7.22.

4 임옥희, 『주디스 버틀러 읽기』,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6.

5 김예지, ‘“정신병력 거론, 가해자에게 면죄부 주는 것”’, 오마이뉴스, 2016.5.19.

6 황덕현·정수영·최은지, ‘[영상뉴스]“묻지마 살인 아니라 여성혐오 살인이다”’, 뉴스1, 2016.5.19.

7 최민영, ‘“정신병의 증상은 사회적 맥락”… 서천석 정신과 전문의 ‘강남 살인사건’은 “여성혐오”’, 경향신문, 2016.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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