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리의 '정년이'

by 박거행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정년이」는 배우 김태리의 연기 덕분에 한동안 화제를 모았다. 나는 배우의 연기나 성공담보다는, 그 배경과 구조 자체에 더 흥미를 느꼈다. 이 드라마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여성국극’을 무대로 살아가는 소리 천재 ‘정년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성국극은 오직 여성들만 무대에 서는 공연 양식이다. 1948년 여성 국악동호회에서 시작되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고, 한국전쟁이라는 극한의 시대에도 사람들에게 위로를 해주었다. 극 중에서처럼 풍채가 있는 여성은 남자 역할을, 가냘픈 여성은 여인 역할을 맡아 무대 위에서 생생한 삶을 그려낸다. 전쟁 후에 전성기를 맞다가 텔레비전이 나오면서 사라졌지만, 나는 그 기억을 또렷이 간직하고 있다.

1970년대에 초등학생이던 시절. 지금의 ‘창동 간이주차장’ 자리에 대형 천막을 치고 공연하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국극 배우들이 시내를 돌며 홍보하여 여주가 떠들썩했었다. 그 당시 여주에는 극장이 있었는데 극장과 다르게 대형 천막을 치고 공연을 하는 것이 신기했고 여성들이 남성 분장하고 굵은 목소리로 연기하는 것이 새롭기도 했었다. 가수들은 극장에서 리사이틀(연주회)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웹툰’이라는 무성(無聲)의 장르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 깊었다. 이 드라마의 원작은 웹툰이다. 흥미로운 사실이다. 웹툰은 본질적으로 무성이다. 소리를 낼 수 없다. 그런데 정년은 ‘소리꾼’, 곧 소리로 삶을 노래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웹툰이라는 무성의 장르에서 어떻게 소리를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나는 수천 권의 만화를 봤지만, ‘소리’를 본격적으로, 주제로 삼은 작품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단순히 효과음을 넘어서, 인물의 목소리와 리듬, 감정이 독자의 가슴에 들려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정년이」는 그것을 해냈다. 손끝으로 소리를 그리는 만화가의 시도, 독자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느낀다.’ 그 기묘하고도 담대한 발상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이 작품이 내게 던진 질문은 단순히 ‘어떻게 소리를 표현했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왜 소리를 표현하려 했는가?’에 가까웠다. 여성국극이라는 잊힌 예술, 목소리라는 흔하지만, 소중한 도구, 그리고 그것을 되살리려는 누군가의 마음. 나는 거기서 창작자들의 진심을 보았다.

무엇보다 감탄스러웠던 건, 바로 이 ‘발상의 전환’이다.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이지 않는 소리를 그려내며, 잊힌 시간을 복원하는 것.

세상은 늘 익숙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건 언제나 ‘다르게 보는 눈’과 ‘다르게 말하는 입’이다. 큰 울림은 때로 조용한 곳에서 시작된다. ‘정년이’처럼,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어떤 빛과 어떤 소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여성국극도, 천막 아래 사람들의 기대도, 그리고 그 시절의 나도. 이 드라마를 보며 나는 잊고 있던 나의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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