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좋았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 그 이유가 '그냥'인 것처럼 책이 그저 좋았다. 당장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하루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책에 빠져 있으면 나만의 보이지 않는 투명한 보호막이 어지러운 세상사 속에서 나를 지켜준다.
누군가에게는 시간 흘려보내기로 여겨지기도 하는 소설과 에세이 읽기는 여전히 돈이 되지는 않지만, 그것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세상살이에 큰 빛이 된다. 나를 돌아보지 못한 채 하루하루 쫓기듯 걸어가는 인생의 가을이 될 수도 있었지만, 문장에 머무르며 사색할 수 있어 내 마음의 구멍이 메워진다. 살아감을 헤아린다.
책을 읽는 이유는 개인에 따라 다양하지만 나는 목적 없는 독서를 좋아한다. 지식이나 교양 등 무언가를 얻기 위해 책을 읽으면 그조차도 경쟁이 되고 마음에 부담이 된다. 그냥 읽고 싶은 책과 작가를 따라 나만의 로드맵을 만들어 가는 걸 좋아한다. 나에게 있어 책은 삶을 살아가며 언제든지 만나 조언을 구하고 마음껏 생각하며 감정을 풀어낼 수 있는, 삶의 위로이다.
이런 내게도 독서를 쉬어간 시기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나만의 책 읽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수업을 위해 읽어야 할 책들과 첨삭해야 할 원고들로 둘러싸여 있기에 활자 보는 것 자체가 일처럼 고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활에 쫓겨 나를 잃어가다가 마흔의 어느 날부터 틈나는 대로 종일 읽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문득 다시 읽고 싶어졌다. 사는 게 힘들어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더 이상 내 자신에게 허용하지 않자,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독서 시간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때 절감하게 된 것이 있다. 책 읽는 뇌가 형성되지 않으면 책 읽기가 어렵다더니 이론서와 동화책들만을 보다 보니 다른 책들이 처음에는 잘 읽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달 정도 꾸준히 나만의 속도로 읽다 보니 활자를 공감각적으로 담아내는 나만의 노하우가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역시 무엇이든 시작을 이끌어 내기가 제일 어려운 것이리라.
그렇게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일할 때조차 늘 문자와 함께 하다 보니 3년 만에 눈에 이상이 생겼다. 워낙 시력이 좋은지라 밤에도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자기 전까지 책을 읽었던 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남보다 일찍 노화 현상을 겪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백내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걱정스레 찾은 안과에서는 시력도 좋고 눈에 병이 생긴 것도 아니라며 노안이 시작되었으니 돋보기를 쓰라고 했다. 마흔 중반도 되지 않아 노안 안경을 쓰게 되었다는 게 씁쓸함을 주기도 했지만 그 후로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글 쓰는 공간들 조차 최대한 자제하며 오디오북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그중 가장 즐겨 듣는 것은 좋아하는 작가가 운영하는 '월간 정여울’과 오디오북 소설이다. 특히 성우들의 목소리로 듣는 문학 읽기는 라디오의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와서 적극 추천해 주고 싶을 정도이다. 사람이 고루해서인지 아직까지 전자책 읽기는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오디오북은 운전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여전히 마냥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