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들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라 결석 문자가 하나둘 도착했다. 덕분에 어제는 4시에 퇴근을 하게 되었는데 환한 햇살 사이로 운전하는 게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신이 나서 처음으로 간 곳은 동네 병원. 3개월치 고혈압약을 받고 방학을 맞은 막내와 외식을 한 후 소화도 시킬 겸 교보문고에서 책을 둘러봤다.
집으로 들어와서는 둘이 함께 영화를 보았다. 넷플릭스의 재생 버튼을 누르며 시계를 보니 아직 7시였다. 평소라면 마지막 수업이 시작되는 시간인데 소파에 누워 영화를 볼 수 있다니 누군가로부터 시간을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브로커. 명배우들의 연기를 보다 보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해외 영화제 수상 소식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상현과 동수, 소영과 아기, 그리고 한 소년의 예기치 않은 동행을 보며 한 아이가 자라려면 온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떠올랐다. 먹먹한 따스함에 젖었다.
그때 후배를 만나고 들어온 첫째가 배가 고픈지 냉동실에 있던 가래떡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며 아빠 같지 않냐고 농담을 했다. 평소 가족들이 몰입해서 영화를 볼 때 간식을 꺼내느라 부산스러운 남편에게 아이들이 타박했었는데 그런 아빠를 이야기하는 거였다. 게다가 떡을 먹으며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스포 했다.
"우성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너무한 거 아니냐고 막내와 같이 소리치는데 모두의 입가에 웃음이 가득했다. 9시 30분. 퇴근해서 들어올 시간에 영화를 종료하며 소파에 앉았다. 혼자 보면 더욱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영화였지만 아이들과 함께 해서 덜 무거웠다.
미대 입시를 향한 3년의 힘든 노력을 접고
이제 막 새로운 길을 시작하기로 한 고3.
모두가 어울린다고 했던 전공의 길 대신,
예상하지 못했던 꿈을 향해 묵묵히 걷고 있는 대학생.
공모전에 계속 떨어지면서도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나와
그런 셋이 자신이 꿈이라며
우리에게 하늘이 되어 주는 남편.
버거운 연말연시로 하루하루 지치는 내 마음에게 찾아온 선물 같은 시간이 말한다.
"태어나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