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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은 May 22. 2024

봄날의 크리스마스 _ <나 혼자 사춘기>

_ by 오늘 : #사춘기 & [에필로그]


세상에 대한 이면을 느끼며 나의 사춘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열일곱, 겉으로는 평범하고 성실한 학생으로 살아갔지만, 지독한 내면의 아픔과 굴곡의 시간은 고등학교 시절 내내 지속되었어요. 그때 나를 도닥이며 붙들어준 것은 헤르만 헤세와 이해인 수녀의 문장들이었습니다. 깊은 내면의 숲을 걸었던 방랑자 헤세의 글은 마음을 아리게 하면서도 스스로 치유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었고, 단어 하나하나 따뜻하고 고운 이해인의 시는 ‘살아가며 문득 떠올렸을 때 작은 미소 짓게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간직하게 했습니다.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울리는 그들은 그 시절 나의 친구이자 삶의 인도자였습니다.


 '이런 게 사춘기일까?'
 어제부터 나는 어른의 부당한 요구를 따르지 않고 있다. 그 대가로 컴퓨터 게임을 못하고 맛집 장어구이도 포기했다. 대신에 소중한 자존심을 지켰다. 나의 사춘기 증상은 자존심 방어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그래, 오늘부터 나의 사춘기가 시작됐다. 내 사춘기 진단은 내가 내린다. (p.24)


세상과 어른들에 대한 비판 의식으로 나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면 4학년 현우의 사춘기는 자존심 방어로 출발했습니다. 현우는 외동이었지만 사촌 동생 수장이 때문에 화가 날 때가 많았어요. 1살 어린 수장이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놀아달라며 이것저것 허락 없이 만지고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현우는 그런 수장이를 자신의 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 아빠, 부부 팀이 큰 아빠 부부 팀에게 '빌린 돈 갚기'라는 숙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것은 현우로 하여금 부부 팀이 해결하지 못하는 숙제를 자신에게 대신 떠맡긴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적 챙겨 주기'와 '언제나 져 주기'로 말이에요.


하지만 정하나가 보낸 편지를 몰래 읽던 날 현우는 적에게 사과하지 않습니다. 난생처음 혼자서 풀고 싶은 문제가 생겼던 거예요. 현우는 여느 때와 달리 밥 생각이 없다고 말하며 킥보드를 타고 봄날의 저녁을 가로지릅니다. 그러면서 친하지도 않은 그 애가 왜 자기에게 손 편지를 보냈을지 고민하며 자신에게도 사춘기가 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스스로 사춘기 진단을 내린 것에 감동받은 현우는 거실 책장의 동화책들 위에 있는 리모컨을 꺼내며 "나도 엄마 아빠 바꾸고 싶다고! 베프 같은 엄마 아빠로." 하는 생각과 함께 TV를 켰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면에는 "오늘 선택받은 어린이만 살 수 있는 베프 부모님 세트!"라는 글자가 반짝이고 있었어요. 곧이어 하얀 체육복을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나 미소 지으며 주문을 권유했는데, 이 순간만 공짜라는 말에 현우는 화면에 양 손바닥을 대어 구매합니다.


그런데 현우는 뒤늦게 원래의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후 1004로 전화해 구매를 취소하려 하지만 그것은 안 된다는 말을 듣게 돼요. 다급해진 현우는 천사들을 신에게 고발하겠다고 말하는데 그때 마침 엄마 아빠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에 그만 확 작아져서 숨어 버리고 싶다고 혼잣말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현우는 손바닥 위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작은 아이가 되었어요. 그것을 알게 된 엄마 아빠가 원인을 함께 고민하며 다양한 방법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현우는 자신 키만 한 손 편지를 베프처럼 옆에 두고 잠을 자야 했지요.


 "현우야, 아빠가 미안해. 걱정 마. 엄마 아빠는 항상 현우 옆에 있어. 현우가 어른이 될 때까지 지켜 줄게. 어른이 되면 응원하면서 지켜볼게."
 이 순간부터 나는 엄마 아빠를 부부 팀이라고 부르지 않을 거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한 팀이니까. 그러고 보니 엄마 아빠 앞에 이 모습을 처음 보일 때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나를 보호해 줄 거라는 믿음이 내 마음에 뿌리처럼 박혀 있었나 보다. (p.43)

 

엄마 아빠는 현우가 동화 주인공처럼 마음의 키가 자라야 원래 몸으로 돌아올 수 있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꼬꼬마 현우는 정말 마음의 키가 자라고 있었어요. 수장이의 진심을 알게 되고, 편지를 읽으며 정하나와의 기억들을 떠올리다 보니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었던 거예요. 현우는 몰랐지만 현우의 작은 행동과 말들이 하나에게는 고마움과 소중함으로 남아있었습니다.


현우는 15센티미터로 살아가는 동안 편지에 담긴 정하나의 마음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우에게 신이 찾아옵니다. 신은 지금 자신이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들 눈에 보였는데 현우에게는 하나의 모습으로 보였어요. 결국 현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은 사춘기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 종종 보게 됩니다. 왠지 두려움이 느껴지나 봐요. 하지만 현우와 하나의 '봄날의 크리스마스'같던 날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걸 보면, 자신만의 색깔로 찾아온 사춘기를 겪어 내고, 겪고 있을, 또 언젠가 만나게 될 아이들에게도 이 책은 향기 가득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곱고 예뻐서, 따뜻한 봄 햇살 같아서, 귀한 '책연'으로 찾아와 준 현우와 하나에게 고마운 오후입니다.






값비싼 보석보다도
파도에 씻긴 작은 조가비 한 개를 더 사랑하고,
거액의 지폐보다도
한 장의 낙엽을 더 사랑할 수 있는 너의 순수를
누가 어리석다 할지라도
나는 그렇게
어리석은 기쁨만으로 평생을 살고 싶다.

어느 눈 오는 겨울밤,
네가 내 가슴에 쏟아 놓는 하얀 눈물처럼
나도 누군가를 위해 대신 울어 줄 수 있다면,
작은 손 하나라도 이웃에게 건네주며
착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 이해인, 『두레박』, 소녀에게 中



✐ 나의 사춘기에 힘이 되어 준 것은 무엇인가요?







✐ [에필로그]



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들도 많았는데

어느새 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동화를 누가 궁금해나 할까.

10권만 채워봐야지, 아니 5권이라도 할 수 있을까.

호기롭게 연재를 선언했지만,

일을 하며 일주일에 한 번

나만의 시간을 채워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 주만 더' 라는 생각으로 매주 이어가다 보니

50권의 이야기 아코디언을 연주할 수 있었네요.


각박한 세상이지만 아이들이 이 동화들을 통해

따스한 시선과 단단한 마음을 키워갈 수 있기를

간절히 꿈꿔 봅니다.






(PS) 브런치북은 30개만 가능하다는 걸 몰랐네요 ^^;

       마지막 글로 연재를 마감하려 했는데

       이 조차도 미숙함으로 마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응원해 주신 분들께

       깊은 마음으로 감사드려요!

       덕분에 묵묵한 길,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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