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뒷모습
# 이슬빛
: 이슬의 반짝거리는 빛.
뒷모습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밝은 인사를 보이며 제걸음으로 되돌아가는 길. 누군가는 아프고, 하염없이 무너져 내리고, 전에 없이 작아 보입니다. 어느 날은 경쾌하고 당당한 뒷모습 덕분에 환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라보고 있을 사람을 위한 그날의 마지막 배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에 노을이 내립니다.
뒷모습은 가면을 벗은 채 더없이 하늘거립니다. 그래서인지 아끼는 사람일수록 나의 뒷모습을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꾸만 뒤돌아 계속 손을 흔들며 자신이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따뜻한 사람들에게는, 멀어지는 순간까지 애써 내 뒷모습을 밝게 포장하기도 합니다. 나의 그늘이 그 사람의 마음에 드리우지 않도록 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뒷모습은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헤어짐이 못내 아쉬운 애틋함 때문이지요. 그와 더불어 나의 무심함이 그의 아픔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가 쉬 뒤돌아 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낯선 이의 뒷모습에도 자꾸만 눈길이 머뭅니다. 뒷모습을 담은 사진도 좋아합니다. 선생님 따라 산책 나온 작은 아이들의 총총거리는 뒷모습에는 나도 모르게 웃게 되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터덜터덜 걷고 있는 학생의 뒷모습에는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 힘겨워 보여도 두 손 꼭 잡고 걷고 있는 노부부의 뒷모습은 뭉클함을 주고, 홀로 고개 숙이며 걷고 있는 이의 뒷모습은 애잔함을 자아냅니다.
뒷모습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 속에 담긴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또다시 살아갈 위로를 받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따라 걷는 눈길이, 그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은 공감이, 나와 같은 마음의 결이, 그 순간의 나를 토닥여줍니다.
어느새 12월. 올해의 뒷모습을 배웅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끝없이 무거운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신의 형벌 속에서도 고통을 넘어서는 묵묵한 의지를 보여준 시지프스. 그 어느 때보다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그와 같은 참인간의 뒷모습이 그리운 시간들입니다. 그들이 헤쳐가는 처절한 분투의 시간들이 언젠가는 이슬빛 반짝임으로 기록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