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재은 Dec 18. 2024

날빛

_ 여행


# 날빛
 : 햇빛을 받아서 나는 온 세상의 빛.



온전히 시간에 머무르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불문학을 전공했기에 오래도록 동경했던 프랑스에 간다면 눈물이 흐를 것 같아요. 고흐의 그림을 따라 아를의 거리를 걸으면 하루종일이어도 지치지 않을 거예요. 긴 시간 머물며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 카페에서 글 쓰는 상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제는 프랑스어도 영어처럼 초보자가 되었고 비행기 공포증까지 있을 만큼 겁이 많지만 꿈꾸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혼자라도 용기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일상의 무게와 상념을 놓아둔 채 가고 싶었던 곳으로 향하는 설렘도 좋지만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의미 깊은 시간이라면 하루의 작은 조각이라도 구겨진 마음을 다림질할 수 있으니까요. 곁에 소중한 사람이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휴가 기간이 되어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서점 여행을 합니다. 배다리 헌책방 골목을 나와 맛집을 찾아가다가 단정한 입간판 덕분에 우연히 만난 아기자기한 책방 <홍예서림>. 막내딸과 함께 아늑한 공간과 시간을 나눌 수 있었던 <가가77페이지>. 낮게 드리운 구름이 바다 내음 실어 오던 <동아서점>에서의 따뜻한 오후가 생각납니다.


장혜현 작가님이 운영하는 북촌의 <비화림>도 좋았어요. 책방은 생각보다 아담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서점의 분위기를 더욱 아름답고 따스하게 만들어 주었지요. 게다가 책방을 닮은 책방지기님이 우리 집 맞은편에 살았었다는 걸 알고는 어찌나 반갑던지요. 비화림은 ‘비밀의 숲’이라고 하던데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문장을 찾아보라는 것일까요. 그곳에서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하고는 소중하게 담아 온 기억이 납니다.


멀리 떠나는 여행에서도 특별히 기억나는 순간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었습니다. 오사카에서는 잠시 쉬려고 들른 카페에서 바라본 한적한 평일 오후의 거리 풍경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국적인 간판의 가게들 앞을 지나는 네모나고 조그마한 우체국 차를 바라보는데 애니메이션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문득 그 작은 골목 안에 품고 있을 사람들의 일상이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혼자라면 다음 갈 목적지를 미루고 골목 여행을 했을 거예요.


친구 가족과 함께 떠난 마카오에서는 가기 전부터 알아두었던 책방을 다녀오기 위해 미션을 수행하듯 전력 질주하기도 했습니다. 식당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일정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잠시 홀로 다녀오기 위해서였지요. 갈빛 가득한 책방의 이국적인 풍경은 역시나 좋았습니다. 2층까지 둘러본 후 충만함의 감탄을 '하아' 하고 내뱉기도 했을 만큼요.


여행지에서 마주한 눈부신 날빛은 살아온 날들을 가만히 어루만져 줍니다. 바다 풍경 가득 담으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아이처럼 피어오르는 동그란 웃음에 고단한 삶도 잠시 따라 웃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