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전 카페에서 글을 쓴다. 그윽한 원두 향에 어우러지는 음악. 백색 소음 속 간간이 들려오는 커피 머신 소리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문장을 불러온다. 늘 앉는 창가 테이블에서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면 도무지 풀리지 않던 생각의 고리가 글로 엮어진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작업을 위해서는 언제나 조용히 혼자 있을 공간을 찾았다. 주변을 정리하고 쓰는 주제에 따라 음악을 선택해 재생하면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옆에 침대가 있는 등 주로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보니 자유로운 사유의 확장이 어려워지곤 했다.
이후 집에서는 비교적 탁 트인 공간에 자리한 식탁에서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이 있는 시간이면 공용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소소한 일상과 이야기로 집중이 쉽지 않다. 혼자 있을 때도 비슷하다. 눈앞에 정리되지 않은 거실이 보이거나 등 뒤로 설거지가 쌓여 있다면 그것에 신경이 쓰여 쓰기에 몰두하지 못한다. 그래서 앉기 전에 집안일부터 한다. 겨우 앉게 되더라도 빨랫감이 생각나면 세탁기로 향하고 뒤이어 떠오르는 일들로 왔다 갔다 하게 된다. 그렇게 하다 보니 카페에서라면 10분에 작업할 원고를 1시간 이상 쓰는 경우도 생긴다.
온전히 몰두하며 쓰기 위해 카페를 찾게 된 것은 작년부터이다. 올빼미형으로 살아왔는데 나이가 들수록 강의를 하면 모든 에너지가 소모되어 밤에 글을 쓰는 게 어려웠다. 머리가 무거워져 도저히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보지 못했던 가족과의 시간도 중요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그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소홀히 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밤이면 가족과 도란도란하는 시간을 나누거나 아껴두었던 책을 읽었다. 사랑하는 가족의 목소리와 다채로운 문체의 글만큼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건 없으니까.
강의는 주로 아이들 하교 후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출근 전 시간을 활용하게 된 것이다. 처음 카페로 향했을 때는 글이 잘 써질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마음에 맞는 카페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선 커피가 맛있는 카페여야 했다. 심플하고 따뜻한 인테리어에 전면창은 필수다. 흘러나오는 음악의 취향도 맞아야 하고, 따뜻함을 풍기는 직원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렇게 해서 찾게 된 첫 번째 카페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에세이를 구상해 쓰기 시작했다. 커피 맛은 물론이거니와 높은 층고와 테이블 간의 넓은 공간이 깊은 사유를 불러오는 카페였는데, 주인이 바뀌면서 다른 카페를 찾게 되었다. 두 번째 카페에서는 겨울부터 여름까지 에세이를 마무리하며 출간을 위한 퇴고를 하고 있다. 또한 평소 시럽을 넣지 않은 라테를 즐겨 마셨는데, 이 카페 덕분에 진한 원두의 달콤한 플랫슈페너에 빠져버렸다. 처음 이 카페에 들어갔을 때는 작은 공간이어서 순간 망설였지만, 세 계절을 지내오며 아늑한 공간이 주는 매력도 깊이 느끼게 되었다.
여행을 가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 나라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카페도 그랬다. 그저 커피만 사가지고 갈 때나 만남을 위해 들렀을 때는 몰랐는데, 글을 쓰기 위해 정기적으로 카페에 들르다 보니 알게 되었다.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카페를 향한 다음 걸음을 이어지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두 번째 카페에서는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갑자기 재채기가 나오는 바람에 들고 있던 잔을 떨어뜨렸을 때였다. 처음 겪는 일에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는 내게 직원은 언제나처럼 예쁜 미소를 지으며 원래 잘 깨진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얼마 마시지 못했으니 새로운 커피를 다시 가져다주겠다는 것이다. 민폐를 끼쳤는데 무료로 커피까지 더 마시는 건 송구해서 극구 사양했더니, 단골이라 감사하다며 맛있는 마카다미아 쿠키를 서비스로 가져다주는 게 아닌가. 얼마나 감동이었던지 언젠가 책방을 운영하게 된다면 그녀처럼 하겠다는 작은 다짐을 하게 되었다. 따스한 마음을 나누어준 그녀 덕분에 이제 그곳은 단연 나의 최애 카페가 되었다.
적당한 거리 두기와 따뜻한 마음의 온도.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단골 카페를 갖게 했다. 그곳에서의 작은 위로가 깊은 문장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