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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by 유재은


"난 회전목마에서도 스릴을 느끼는 걸."


수업 중 이 말을 하면 아이들의 반응이 뜨겁다. 안쓰럽게 바라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까르르 웃으며 앞다투어 자신만의 놀이기구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회전목마에도 겁을 내는 어른이라니, 선생님보다 잘하는 게 있다는 자부심으로 으쓱해지는 어깨를 보면 귀여워서 함께 미소 짓게 된다. 졸음이 밀려오는 오후가 환해지고, 상기된 얼굴의 아이들과는 순식간에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어린이에게는 어른이, 그중에서도 선생님은 교실에서 절대자와 같다. 그 앞에서는 괜스레 작아지기에 조그마한 칭찬에도 함박웃음을 짓게 된다. 아마도 그런 날이면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엄마에게 그것을 자랑하기에 바쁠 것이다. 우리가 학창 시절 선생님에게서 들은 작은 기대와 칭찬의 말을 평생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평소 부러움을 느끼지 않는 편이다. 어릴 시절부터 찬찬히 돌아보니 그것은 노력해서라기보다는 천성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유일하게 부러운 것은 바로 용기이다. 영화 속 인디아나 존스 박사의 모험을 동경하면서도 꿈꿀 수 없었던 것은 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작은 곤충에 호들갑 떨지 않지 않고 다리가 많은 벌레를 보아도 의연하게 손으로 떼어내는 사람. 다양한 액티비티를 도전하며 새로운 시선으로 삶에 더욱 용감해지는 사람이 부럽다. 극한 스릴과 도전을 경험하게 하는 번지점프나 스카이다이빙까지는 아니어도 좋다. 그저 겁내지 않고 케이블카나 비행기를 타고, 어릴 적부터 내가 소망했던 열기구의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멋져 보인다. 한 번쯤이라도 그렇게 살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층위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고요히 침잠하는 것을 즐긴다. 홀로 몰입할 수 있는 깊은 시간을 좋아한다. 책 읽기에 좋은 재즈 음악과 함께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같이 느끼고 살아가는 시간을 사랑한다. 마음이 복잡하고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을수록 더욱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 애쓴다. 그렇게 한참을 다른 이가 사는 세상에서 그가 되어 살아가면 돌아온 일상에서는 잠시 현실감각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시공간에서 하염없이 문장을 타고 거닐다 보면 살아갈 힘을 얻는다. 무언가에 몰입하면 복잡했던 현실이 객관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풀리지 않는 실타래 같던 일들에서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졸업 후 어느 경조사 자리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동아리 후배가 주차하고 왔다는 나의 말에 놀라기도 했다. 겁이 많은 내가 차를 운전한다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내가 운전하는 걸 마냥 신기하게 여겼다. 어릴 적에도 유일하게 자동차 운전 게임을 좋아하더니 운전하는 걸 즐기는 어른이 되었다. 그것마저 하지 못했다면 얼마나 제한적인 삶을 살았을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차를 타고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괜찮은 삶이다. 언젠가 유럽에서 가족을 태운 차를 몰고 여행하는 것을 꿈꾼다. 홀로 아우토반 같은 곳을 달려보는 것도 말이다.


직접 차를 운전하기 전까지는 자전거 타기를 즐겼고 기차를 좋아했다. 그래서 전철 타는 것도 좋았다. 버스를 타면 멀미를 느꼈는데 전철에서는 적당한 흔들림과 기계소리 같은 백색 소음이 책 읽기에 좋았기 때문이다. 가끔 지상 위를 달릴 때면 스쳐가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출퇴근 지옥철에서도 작은 공간만 있다면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이십 대 때는 그렇게 나만의 세상 속에 빠져 있다가 가방이 찢겨 지갑을 도난당한 적도 많았다. 그 후로는 가방을 앞으로 끌어안고 그 위에 책을 놓고 읽었다. 그렇게 오가는 시간이 많아도 책과 함께 라면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을 즐겼고, 대학 때는 시험 기간 자투리 공부로도 유용했다.


출퇴근 길의 반경이 넓지 않으니 결혼 후에는 지하철 탈 일이 드물다. 그래서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게 되면 청춘이 떠오르고 승강장의 안내방송과 전철이 다가오는 소리를 즐긴다. 교통 카드를 대며 삐- 소리를 듣는 것도 말이다. 지난 6월에도 오랜만에 전철을 탔다. 큰딸과 함께 가는데 엄마인 나는 또 아이처럼 신난다며 웃었다. 전철을 많이 타던 시절에는 청춘이 함께 했다. 그리고 어느덧 생의 반환점을 지나니 성인이 된 딸이 나를 이끄는 모습에 행복해진다. 그게 좋아서 일부러 더 과하게 반응하곤 하는데, 그런 나를 바라보는 딸의 웃음이 좋다. 그렇게 함께 전철을 타고 가며 바라본 한강이 아름다웠다. 서울까지 지하철로 왕복 4시간이 넘는 통학 시간을 보냈기에 지하철이 지겹다는 딸들도 언젠가 지금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까. 그때 몇 번쯤은 함께 한 엄마의 달뜬 마음도 떠올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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