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첫 월급
처음을 함께 하는 것은 마음에 별을 나누는 일이다. 은하수가 되어 흐르는 기쁨이 울컥함을 자아낸다. 그렇게 나란히 걷는 길 덕분에 삶은 더없이 충만해지는 것이 아닐까.
큰 딸 기쁨이가 첫 월급을 타더니 가을에 찾아온 산타 언니가 되었다. 어릴 적 돌봐 주신 외할머니부터 챙기더니 넉넉한 용돈과 사랑 가득 담긴 손 편지로 할머니를 울렸다. 친할머니께도 용돈과 신발 선물을 드리고 삼촌과 이모, 회사 사수 등 고마운 사람들을 챙기더니 동생에게도 용돈을 주었다. 늘 장난을 주고받는 친구 같은 아빠는 화이트 와인과 편지, 나는 이북리더기 크레마와 편지를 선물 받았다. 크레마는 이십 년 전부터 갖고 싶어 장바구니에 넣었다 빼었다를 반복했는데, 그렇게 미루어 두었던 것을 큰 딸에게 선물 받자 울컥 눈물이 났다. 정작 자신의 것은 챙기지도 않는 기쁨이. 유치원 바자회 때도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 장군이 선물만 챙기더니 그렇게 따뜻함을 나눌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전자제품을 사 오시면 나부터 찾았는데 이제 나는 딸들을 찾는다. 그렇게 삶은 주고받음을 이어가는 것일까. 두 딸이 이것저것 사용하기 편하게 해 주는 것을 보니 마음이 뜨거워졌다. 이제 밤에 누워서도 눈부심 없이 크레마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한 손으로도 가벼운 크레마를 들으니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쥔 아이 마냥 달뜬 마음이 되었다.
받을 때부터 궁금했던 편지는 고이 아껴 두었다. 모두가 잠들었을 때 읽을까 하다가 그보다는 나만의 공간에서 성스러운 마음으로 보기 위해 기다림으로 담아두었다. 그렇게 출근 전 카페로 향하며 편지를 챙겨 넣는데 연애편지를 받은 거 마냥 설렘 가득했다. "나의 사랑 pasi님께. 재수학원에서 쓴 이후로 진짜 오랜만에 제대로 편지를 쓰는 것 같네요 ^^" 이렇게 시작되는 세 장의 편지는 첫 문장부터 울컥하게 만들었다. 반기숙 학원을 다니며 집에서는 잠자는 몇 시간만을 보냈던 그 힘겨운 시절에 딸이 보내준 편지는 다이어리가 바뀔 때마다 잘 넣어 두었다. 그것만으로도 한 해를 보내며 문득문득 살아갈 힘이 되었으니까.
"친구들이 늘 말해요. 하고 싶은 일을 굽히지 않고 해내는 게 부럽다고. 근데 진심으로 이건 엄마 덕이라고 생각해요. 힘든 일을 겪어도 늘 온기를 잃지 않고 좌절해도 무언가 계속 해내는 엄마를 보며,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다짐했답니다. 엄마처럼 살아가고 싶어요. 현실의 벽에서 좌절하지 말라고 말해주셨잖아요? 제가 나중에 타격을 받을까봐 해 주신 말인 것 같지만 나는 걱정 안 해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답을 적어내는 엄마를 보고 자랐으니까요. 그렇다고 힘들어하지 않는, 억지로 이겨내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요. 같이 힘듦을 나누는 모녀가 되었으면 한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버텨낸 기쁨이가 엄마를 위로하고 있었다. 어느새 쑤욱 자라 신입 사원이 된 기쁨이의 문장들은 뜨거운 강이 되어 마음에 흐르는 듯했다. 휴대폰 사진에서 기쁨이의 모든 시작의 순간을 찾아보았다. 아기 기쁨이는 유치원에 입학한 후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에 설레는 웃음을 지었고, 밤늦도록 걱정하더니 입학식 날 강당에서는 긴장된 모습으로 흐트러짐 없이 선생님의 말에 집중했다. 그렇게 사진은 중학교, 대학교, 첫 자취하던 날로 이어졌는데 울컥 또 눈물이 차올랐다. 십자수로 배냇저고리와 턱받이를 만들며 설렘으로 기다렸던 때가 선연한데, 이제 그것은 기쁨이가 좋아하는 인형에게 맞을 만큼 작아져있었다.
"앞으로 같이 재밌게 늙어갑시다 ㅎㅎ 라뷰 _ 내 인생 첫 월급날."이라고 맺는 기쁨이의 감동과 웃음을 오가는 편지가 또 하나의 어려운 시절에 빛이 되어준다. 한 땀 한 땀 수놓으며 건네었던 사랑이 한 자 한 자 문장이 되어 나를 안아준다. 세상의 잣대가 아닌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큰 딸. 앞으로도 기쁨이의 처음을 함께 나누며 오래오래 울컥할 수 있기를, 두툼해진 다이어리를 가만히 어루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