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닉네임과 필명
블로그에서 글을 쓰며 처음으로 갖게 된 닉네임은 'pasi'이다. 아주 가끔 '패시'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나를 'pasi' 또는 '파시'로 불렀다. 그렇게 처음으로 일구어간 온라인 공간에서 나의 이름이 익숙해질 무렵 그 뜻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그때마다 고등학교 때 별명이었다고만 이야기했는데, 블로그 6개월 차에 이웃님으로부터 건네받은 10문 10답을 통해 처음으로 소소한 의미를 밝혔다.
어린 시절에는 특별히 불리는 별명이 없었다. 그저 짓궂은 남학생들이 이름의 글자를 조합한 단어로 놀리려고 했지만 그조차도 흘려듣다 보니 자연스레 잦아들었고, 책벌레라는 별명도 반응 없음에 지속적으로 불리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고교시절 친한 친구들로부터 불리게 된 것이 바로 pasi이다. 블로그에서 이웃들이 추측했던 근사한 뜻과는 달리 pasi는 바로... '파시통통'이다. 그 시절 유행하던 비비빅 같은 팥 아이스바. 친구들은 조스바, 스크류바, 보석바 등을 즐겨 먹었는데 나만 유일하게 어르신 같이 파시통통을 고르는 게 아이들은 재미있었던 것 같다. 작은 돌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던 시절, 친구들은 나의 별명을 지어주며 환히 웃었다.
"파시야... 파시야."
친구들이 부르는 그 어감이 좋아서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나 쪽지 끝에는 이름이 아닌 ‘pasi'라고 쓰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쓸까 궁리하며 다양한 글씨체도 만들어갔는데, 언젠가 어른이 되어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게 된다면 꼭 pasi를 넣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스개처럼 한 말인데 수십 년이 흐른 후 그것은 블로그 닉네임이 되었다. 역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공개하자 블로그 이웃들의 재미있는 댓글이 이어졌고 왠지 그전보다 내게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브런치스토리에서도 처음에는 pasi를 필명으로 사용했다. 그처럼 온라인에서는 pasi가 내게 더 친숙했고 이름이 아닌 닉네임 속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실명을 쓰기 시작한 데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왠지 이름만 커다랗게 걸린 어느 가게의 간판처럼 보이며 어색하기도 했다. 한 편으로는 무언가 의미 깊은 필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얼굴이 붉어지는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름을 고스란히 불러주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나의 글에 대한 책임을 갖기 위해서이다. 닉네임이 주는 자유로움도 좋지만 이름을 쓰고 나니 문장 하나하나에 왠지 모르게 조금 더 신중해졌다.
그래도 어색하고 수줍은 마음은 브런치에 들어갈 때마다 나를 흔들었다. 그래서 다시 원래의 닉네임으로 바꿀까도 했는데, 필명을 수정하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 해서 그때까지만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시 바꿀 수 있는 날이 되었음에도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메인 화면이 뜰 때마다 붉어지던 볼은 그 후로도 오래 지속되었고, 실명으로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해지는 데는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부르다'라는 동사는 '이름이나 명단을 소리 내어 읽으며 대상을 확인하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뜻을 찬찬히 새기다 보니 필명을 나의 이름으로 바꾸었던 것은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고 싶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전을 찾다 보니 '이름하다'라는 동사도 눈에 띄었다.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부르는 말을 붙이는 것'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나는 나를 이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이름 속에 담긴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마주하며 단어와 문장으로 안아주고 싶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