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열흘 같은 한 달을 보냈다. 건강 검진 결과를 휴대폰으로 받아 본 게 소홀함을 불러왔던 것이다. 걱정이 되었던 항목과 전체적인 결과 요약만을 살피고 나머지는 훑어보기만 했는데 어느 날 검진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전문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봤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암일 수도 있다니, 그제야 다시 검사지를 살펴보니 놓쳤던 부분이 커다랗게 다가왔다. 사실 이번에는 공단 검진을 하지 않고 넘기려고도 생각했는데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설 연휴 전이라 마음도 바쁜 때였는데 갑자기 병원까지 찾다 보니 온라인상에 생각보다 심각한 경우도 많아서 불안감이 몰려왔다. 동네 병원에는 검사 장비가 없어 큰 병원을 알아보았는데 대기가 5월까지 간다고 해서 최대한 빠르게 검사할 수 있는 1차 병원을 선택했다. 초음파와 확대 촬영 후 전문의는 미세석회화의 모양이 좋지 않다며 암일 가능성이 50%라고 했다. 내 나이대가 발병률 2위라며 빠른 검사를 권해서 연휴 후 스테레오탁틱 조직 검사를 받기로 했다. 일단 연휴 동안은 관련된 생각은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일부러 검색도 하지 않았지만, 내 안을 가득 찬 염려가 문득문득 일상을 뒤흔들었다.
기다림을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쉽지 않았다. 막상 닥치면 어떻게라도 마음을 잡고 대처해 나갈 텐데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시간들이 너무 심신을 지치게 했다. 조직 검사 후 암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빠르게 연계해 준다며 희망하는 병원과 선생님을 알아오라고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통증과 고통에 대한 두려운 후기까지 접하다 보니 평소와 같이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책을 읽어도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많은 후기들이 상상으로 그려지며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의 수술과 치료 과정까지 생각하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검사 당일이 되었고 당일 입원으로 아침 일찍 병원에 도착하자 오히려 편해지는 마음도 들었다. 물론 검사 전 최악의 상황에 대한 담당의의 설명은 식은땀을 흐르게 했지만, 부분 마취 후 조금만 움찔해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된다는 말에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 것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검사 과정에서 기계소리와 마취에 토하거나 기절했다는 사람도 있었기에 눈을 감고 시간을 버텼다. 물론 세게 들어간다던 마취 때 심하게 어지럽기도 하고 검사 과정에서 통증도 있었지만 오로지 한 번에 끝내야 한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다행히 친절하고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그 덕분에 미동 없이 잘 참아낼 수 있어 한 번만에 검사가 끝났다. 오히려 검사 후 지혈과 압박 붕대를 감을 때가 더 아팠던 것 같기도 하다.
이후 다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검사 결과는 평균적으로 일주일이 걸리는데 응급이면 그보다 빨리 담당의가 직접 전화를 해준다는 것이었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한 통보가 추상적인 날짜이기에 검사 후 일주일 동안은 초조한 하루를 보냈다. 상체는 쓰지 말라고 했고 24시간 압박한 상태로 있어야 했으므로 수면과 식사가 너무 어려웠다. 그렇게 불안한 긴 하루를 보내고 병원이 끝나는 시간이 되면 일단 한시름을 놓는 날들을 견뎠다. 애써 평소와 같이 행동하려고 했지만 자꾸만 찾아오는 그늘진 마음이 힘들었던 일주일이었다.
다행히 결과는 괜찮았다. 6개월 후부터 추적 관찰을 하면서 정기 검사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 고맙습니다... 기도했던 마음은 하늘을 향한 깊은 감사를 건넸다. 한 계절은 지나 흐른 것 같은 한 달의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아플 때 내가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고르고 골라 겨우 건넨 말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또 어떻게 닿았을까. 아픈 이들의 고통을 생각했다. 언제나 평상심을 잃지 않았던 이해인 수녀님도 병이 깊으셨을 때 쓴 시는 짙은 외로움이 담겨있었다. 수많은 외로운 사람들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이전과는 또 달라진 나의 마음. 다른 이들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아픈 사람에게 말을 건네기가 더 어려워졌다.
아프면 외롭다. 연차를 내고 종일 붙어 있는 남편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하는 개구진 장난이 너무나도 고맙고 걱정하는 두 딸의 여린 마음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자꾸만 홀로 그늘진 마음이 되었다. 결과가 나온 후 기쁜 식사 자리에서 남편은 딸들에게 나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고 말했다. 언제나 의연했던 사람이었는데, 하고 말이다. 그러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노년이 되니 늘 감기 걸린 상태 같이 되었다는 말도 떠오른다. 그러다 문득 또 각자의 운명자루에 있는 흰 돌과 검은 돌 이야기를 떠올린다. 이제 흰 돌이 더 많아졌겠지.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인데,
사람이면 누구나 다 메고 다니는 운명자루가 있고,
그 속에는 저마다 각기 똑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 돌이 들어 있다더구나.
검은 돌은 불운, 흰 돌은 행운을 상징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이 돌들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란다.
그래서 삶은 어떤 때는
예기치 못한 불운에 좌절하여 넘어지고,
또 어떤 때는 크든 작든 행운을 맞이하여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는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아마 너는 네 운명자루에서
검은 돌을 몇 개 먼저 꺼낸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남보다 더 큰 네 몫의 행복이
분명히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