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심듯 글을 쓴다. 하나 둘 어느새 모아진 글을 보니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작은 틈에 하나씩 심어 놓은 글들이 다채로운 빛깔의 글숲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가며 불현듯 생각나는 단어와 문장은 브런치 내 서랍에 저장해 둔다. 그렇게 모아둔 글의 씨앗들은 각기 다른 서랍 안에 머물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열어보면 발아된 생각이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 그 작은 싹을 마음에 옮겨 심으면, 또 때마침 적당한 빛과 바람을 만나게 되면 그것은 어느새 작은 나무가 된다. 이렇게 자라난 것을 브런치라는 화분에 담아 세상에 내놓으면, 머물다 간 누군가의 마음을 자양분으로 삼아 저마다의 빛깔로 꽃을 피운다.
그렇게 이루어낸 글숲에 다채로운 정원을 가꾸어나가다 보면 눈 밝은 이를 만나는 기적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들은 나의 정원을 아름답게 만들어 더 큰 세상으로 보내준다. 그렇게 떠나보낸 나의 친구는 누군가에 의해 더 예쁘게 자라기도 하고 때로는 그늘 속에서 쓸쓸히 시들어간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내 안에서 자라난 씨앗이기에 환한 자태를 뽐내는 벗을 보면 눈인사로 미소 짓고, 그렇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벗은 마음으로나마 오래 안아준다.
처음부터 근사한 정원을 만들려고 하면 오히려 인위적인 느낌이 든다. 물론 숙련된 정원사라면 그조차도 아름답게 가꿔나가겠지만, 서툰 정원사에게는 정직한 오늘의 씨앗 심기가 최선이다. 그렇게 하나씩 고이 심어둔 씨앗이 어떻게 발아되어 세상으로 향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지만, 조그마한 씨앗을 소중히 다루는 그 모든 무용하지 않은 순간이 아름답다.
어느 서랍 안에는 유독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지난해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집안에서 있는 안온한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이리라. 봄이 오는 길목에서 돌아보니 종일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서 지난겨울에는 눈길을 걸어본 적도 없음을 깨달았다. 굳이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오히려 만나지 않아서 편안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나이 들수록 더욱 그렇게 되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물론 우리 동네가 눈이 귀하기도 했지만 눈 내리는 시간에는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정작 나가려고 하면 눈은 이미 다 녹거나 비로 바뀌어 있었다.
딱 한 번 펑펑 눈 내리던 밤에는 너무 늦은 시각과 극한의 날씨로 창밖만 바라보았다. 젊은 시절이라면 자정이 넘어도 나갔을지 모른다. 그러한 생각이 반짝이자 올해는 조금이라도 세상 구경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찾아왔다. 살다가 계절이 가는 줄도 모르고, 더 이상 사진과 문장으로만 계절을 바라보지 않고, 조금이라도 세상을 걸어야겠다는 마음. 자꾸만 자연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은 나에게도 나이 듦의 계절이 찾아왔다는 것일까.
시나브로 쌓인 연재글의 목차를 바라보니 드문드문 심어 놓은 글의 씨앗이 연둣빛 새싹을 흔들며 미소 짓는 것 같다. 봄이 오고 있다고. 더 늦기 전에 나가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