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 (2017.04.16)

by 파솔

이방의 동네.

해는 지도고 두 어시간, 어두운 데 버스를 내려 돌아 걷는

아무리 살아도 나 나지 않은 동네 길,

아무 뜻 없이 그저 주소에 닿을 뿐인 그 길,

어느 집 세탁 건조기가 돌아가는지,

오래 전에 잊은 아이가 문득 살그머니 나와 빨래 삶는 냄새를 맡는다.


삼십년도 훨씬 옛날, 그 서울 달동네 산동네,

번짓수도 산 21번지,

밤바람 쌀쌀한디 엄마 아빠 저녁 벤또를 배달하고

여덟 살 어린 무릎이 빈 그릇 들고 오름비탈 걸어 돌면

어귀에서부터 하이타이 끓던 냄새,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블럭 장난감 박히듯 들어서,

이야기로만 남은 꼬불꼬불 오종종한 동네 길,

할매가 속옷이며 수건이며 매양 삶아 빠느라

그 더운 냄새, 꽃 냄샌가 뭔 과일낸가

희뿌옇게 끓는 냄새, 깨끗하니 매운 내.

칠순 넘는 노인이 손주 하나 업고 또 하나 옆에 달고

쓸모 달라진 다드미 방맹이로 눌러가매, 보글보글.


춥고 손 시련디 인자 집에 다 와가네.

멈춰 서지 못하고 그저 걷다보니,

아무리 살아도 나 나지 않은 동네,

물 건너 오기는 왔어도, 살기는 살아도

뜻 없이 그저 몸 뉘러 가며 지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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