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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나비의 책공간 Feb 23. 2019

장미공원

일기&일상


장미공원 흔들의자에 앉아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를 읽고 있다. 책 내용이 애인을 더 사랑하는 나가 공감되서인지, 오랜만에 따스한 봄햇살에 기분이 누그러들어서읹지, 다른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커플을 봐서인지 네가 생각난다.


나는 너를 헬스장 아르바이트하며 처음 봤다. 1월 중순이었던가 트레이너 선생님이 남청색 남자 운동복을 입고 있던 너를 보며 빨간색 여성복 입으라고 말해주라고 했다. 그때는 등록하면서 여성 운동복 있다는 걸 안 알려준 줄 알았다.


다음 주 수요일에도 너는 역시 남청색 남자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이번 주에는 말해야지 하고 너에게 다가갔다. 운동복 보관함 맨 밑에 빨간색 여성 운동복 있어요. 등록하시는 분이 안 알려드렸나 보네요 말했다. 너는 큰 것 입고 싶어서 남자 운동복 입는다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때는 그냥 지나갈 헬스장 이용자 중 한 명이었다.


그다음 주 2월 재등록기간이었다. 너는 너와 함께 산다는 대타하는 친구와 왔다. 대타 온 친구랑 살이 쪘다면서 점심 뭐 먹어서 살찐 거 같다는 너의 목소리는 생기가 돌았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서도 너의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재등록을 하러고 너는 책상 앞에 나와 마주서 있었다. 150 정도로 아담하고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지만 큰 눈을 가지고 있고 볼살이 아직 안 빠진 너는 귀여웠다. 게다가 사물함을 등록하면서 키가 작아서 낮은 위치에 있는 사물함을 달라는 그러면서 약간 새침해지는 너의 모습을 나는 보기 좋았나 보다.


다음 주 수요일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하는 저녁 알바라 힘들었지만 너를 한번 더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나는 마음이 들떴다. 남자 자취방 냄새 안 나게 페브리즈도 뿌리고 5시에 샤워를 했다. 그때 잠을 못 자난 여드름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여드름을 가리기 위해 군대 간 동생 몰래 크림을 훔쳐왔다.


그러나 너는 그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오지 않았다. 1월이 끝날 때까지 나는 너를 볼 수 없었다. 어디 사냐고 뭘 좋아하냐고 과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그러다가 수술 때문에 대타 구하던 아르바이트생 때문에 나는 화요일 저녁 마감 대타에 들어갔다. 너는 8시에 너의 친구와 같이 들어왔다 필라테스를 하고 갔다. 너의 웃음을 다시 볼 수 있어서  그날따라 기계가 망가졌다고 성질 내는 손님도 남자 탈의실 바닥에 나뒹굴러 진 젖은 수건을 치우면서도 화가 나지 않았다.


다음 주 화요일 마감 아르바이트생이 친구들이랑  

스키장 가야 한다고 대타를 구했다. 화요일 저녁 8시에 친구랑 함께 오는 너를 볼 수 있다. 너무 대타 자주 해주면 티 날 수도 있을까 봐 대타 생에게 하겠다고 갠톡을 보내 놨다. 너는 일하러 온 친구랑 같이 8시에 왔다. 너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다. 갑자기 아는척하거나 친한척하면 내가 어버버거릴까봐 네가 당황할까 봐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말을 먼저 건네지 않았다. 그래도 너에 대해 조금 알고 싶어 너와 같이 온 친구에게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너는 어떤지 은근슬쩍 물어봤다. 너의 말투를 흉내 내는 친구 모습에서 너를 볼 수 있었다.


마감은 3명이서 같이 일한다. 수요일 마감 같이하시는 분이 다음 주 화요일 마감 대타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속으로는 무조건 ok 였지만 한가해 보이고 싶지 않다는 고집에 잠시 고민에 잠긴척하고 다음날 가능하다고 했다.  너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11시에 일을 끝나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빨리 다음 주가 왔으면 좋겠다고 12월에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꼬마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화요일에 대타를 가보니 근무시간표가 적혀있었다. 새 학기를 맞아 새로운 시간표를 적어두었다. 8시가 되자 같이 사는 친구가 혼자 왔다. 늦잠 자서 늦게 올 줄았지만 8시 20분이 넘어도 넌 오지 않았다. 불안해졌다. 새 학기에 주말에만 일하기 시작하면 다시 널 보지 못할까 봐.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10시 청소를 시작하면 이야기를 나눌시간이 없다. 9시 30분에 그 친구를 카운터 멀리 세탁실로 끌고 갔다. 옆에 있던 아르바이트생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너 친구한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당당하게 어깨 쫙 피고 자신감 찬 목소리로 물어보고 싶었다. 그건 내 생각에서 모습이었다. 나는 너한테 관심이 있는데 옆에 있는 사람 있냐고 물어보는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그걸 끝까지 참고 들어준 너 친구에 고마웠다. 답변은 있다고 했다. 너처럼 귀엽고 다른 사람에 주목을 끄는 애가 없으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괜히 남자 친구 있는데 심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없던 걸로 해달라고 했다. 착한 너 친구는 요즘 네가 남자 친구 때문에 문제 있다며 넌지시 물어보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불편하면서도 희망에 찼다. 다음 주 카톡으로 정보 보내주다가 너 친구는 네가 심란해 보여서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고 했다. 다음 주 월요일 수요일 같이 일하는 분이 대타 좀 해달라고 했다. 너 친구가 같이 일한 다는 걸 알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네가 남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과 너를 볼 수 있다는 기쁨에 복잡하다.


어느덧 다른 흔들의자에 앉아있던 커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비웠다. 겨울은 겨울이다 보니 얇은 청바지를 입은 다리가 시리다. 다음 주 월요일 나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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