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 어릴 적의 나, 딸의 외로움에 대하여
2025/3/14
1/ 딸이 나에게 외롭다고 말했다.
어제 딸이 나에게 외롭다고 말했다. 학교나 학원에 갈 때 혼자 간 적이 없어서, 혼자 있으면 외로워서 싫다고 했다. 방에 혼자 있을 때도 가끔 외롭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나는 나의 엄마에게 "외롭다"라고 말해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학교나 학원에 혼자 간 적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안다. 가끔 혼자 다니기도 했다는 것을. 하지만 아직 어린 딸에게 혼자 가는 일은 여전히 낯설고 싫은 경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금 과장해서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딸은 자기 나름대로 느낀 외로움을 나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것이겠지.
나는 "엄마도 어렸을 적에는 혼자인 게 싫었어. 그런데 지금은 혼자인 것도 괜찮더라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도 있고, 외로움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고."라고 이야기해 줬다.
하지만 이 말이 과연 딸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넘어갔다.
2/나의 어린 시절을 복기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정말 자주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어쩌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불러내어
"너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 그때 어떤 마음이었니? 혹시 그때의 감정이 아팠다면, 아직도 그때를 생각했을 때 조금 쓰라린다면, 이제 엄마가 된 내가 다시 따뜻하게 안아주고 괜찮다고 다독여줄게."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이런 위로는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엄마란 스스로를 치유하는 한 긴 여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3/ 나는 엄마에게 외롭다고 말한 적이 있었을까
사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외로움을 안고 살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어릴 적부터 자주 외로움을 느꼈고,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생이 될 때까지 손톱을 물어뜯어 남아있는 게 없을 정도였다. 외로움을 나만의 방식으로 떨쳐내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외로움을 피하고 싶어 친구들과 더 가까이 지내려 노력했고, 어떻게든 외로움을 떨쳐내려 스스로 나름 애썼던 것 같다. 그때 참 부러웠던 사람들은 외롭지 않은 사람들이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하게도, 이상하게도 엄마에게 외롭다고 말해본 기억은 없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지금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이야기했어도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고 흘러갔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엄마에게 내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땐 왜 그랬을까. 엄마와 아빠는 어릴 적 내가 봤을 때는 많이 바쁘셨고, 그런 와중에도 자식의 끼니와 생활을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 감사하게 여겼다. 그래서 내 세세한 감정이나 친구 관계에 대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와 달리, 내 딸은 나에게 "외롭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딸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편한 엄마인가 싶기도 하다. 딸이 언제까지 내게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녀의 마음을 최대한 공감하고 이해해 줘야겠다고 생각한다.
4/ 그렇게 컸던 나의 외로움은 어디로 갔을까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고,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나의 외로움은 점점 작아졌다. 사실 이제는 외로울 틈조차 없다. 분명 내 안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아직 존재하지만, 그것을 느낄 새도 없이 다른 걱정과 생각, 감정들이 먼저 줄을 선다. 가끔 외로움이 얼굴을 내밀면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다. 외로움이 커질수록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잘 된 거라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