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이 필요할 때 세탁기 소리를 듣는다.
작년, 오래 쓰던 통돌이 세탁기를 드럼 세탁기로 바꿨다.
그동안은 통돌이 세탁기를 고집해 왔지만, 작은 세탁실에 건조기까지 함께 넣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았다.
특히, 세탁기 위에 렉을 설치해 건조기를 올려두었더니, 건조기의 높이가 너무 높아 쓸 때마다 번거로웠다.
어느 날, 건조기가 고성을 지르며 사망했다..
건조기가 고장 난 김에, 큰 마음을 먹고 적당한 가격을 검색해 드럼 세탁기와 건조기 세트로 바꿨다.
(이 순간을 기다린 건 아니었다만..)
그렇게 드럼 세탁기가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드럼 세탁기가 예상치 못한 시간을 선물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드럼 세탁기는 앞이 유리로 되어 있어, 빨래가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동그란 창 너머로 물과 함께 회전하는 빨랫감, 그리고 ‘찰박찰박’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괜스레 마음이 평온해진다.
어느 날 문득, 세탁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바다의 파도가 떠올랐다.
잔잔하게 밀려오고, 다시 나가는 파도.
세탁기 안의 물살도 그렇게 반복된다.
차르르르, 찰박찰박, 차르르르, 찰박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의 걱정거리, 복잡한 생각들도 물소리에 씻겨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빨랫감이 많은 우리 집 세탁기는 이틀에 한두 번 정도 일한다.
오늘도 세탁기가 돌아가는 시간이면 잠시라도 그 앞에 쭈그려 앉아 멍하니 동그란 유리문을 바라본다.
찰박 찰박, 차르르르, 찰박찰박, 차르르르.
물건이 내게 주는 예상치 못한 선물 같은 시간 또한 고맙다. 잘 아껴 써야지.
오늘도 그렇게, 빨래와 함께 내 마음도 씻겨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