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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심 Feb 23. 2017

엄마와의 추억

엄마에게 드리는 편지 2.


하늘이 독감에 걸렸는지 잔뜩 이마를 찌푸리고 있다가 연신 재채기를 시작하자 바닥과 하늘 사이에 무지갯빛 미끄럼틀이 생겼다ᆞ 땅 세상이 궁금했던 빗방울들이 미끄럼틀을 타고 신나게 바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ᆞ 타닥타닥 빗소리와 비 냄새는 내 발걸음을 뜨거운 국물이 일품인 칼국수집으로 향하게 했다ᆞ

원래 즐겨 먹던 음식이지만 비 오는 날은 왠지 더욱 구미가 당겼다ᆞ오늘은 특별히 더 엄마를 모시고 가서 같이  먹고 싶었다ᆞ

차가운 눈을 품은 겨울바람이 지나가면서 우리 고운 엄마 머리 위에 하얀 눈을 아무렇게나 흩뿌리고 갔는지 검게 빛나던 엄마의 젊은 시절 머리카락은 그렇게 매서운 칼바람운 이기지 못하고 하얀 노을에 물들어버렸다ᆞ그런 엄마의 손을 잡고 난 칼국수집으로 향했다ᆞ




칼국수집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다ᆞ 그런 줄을 보면 나는 사람의 녹녹지 않은 인생살이의 냄새를 맡아본다ᆞ'저 사람들은 칼국수집에 어떤 추억을 숙성시켜 인생 장독대에 담았을까?` 이런저런 사념들이 길게 늘어선 줄들을 잡아먹었는지 벌써 우리 차례가 되었다ᆞ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일은 어린아이가 소풍 가는 날처럼 기대에 부푼 시간이다ᆞ음식이 나오기까지 난 매번 기분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음식 맛에 대한 기대를 해본다ᆞ 오늘은 왠지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진한 국물이 되고 어린 시절에 내가 기억하는 엄마 모습이 칼국수 면발이 되어 잘 어우러져 나오는 추억의 맛이 날것같다ᆞ     




20여 년 전, 엄마는 내가 태어난 지 처음으로 외식을 시켜주시겠다며 나의 조그만 손을 잡고 이 곳 칼국수집으로 오셨다ᆞ

엄마의 젊은 시절, 나는 우리 어린 남매를 먹여 살리시겠다고 밤낮없이 고생하시다 결국 녹슬어버린 지문 없는 거친 손을  따뜻하게 한 번을 잡아드리지 못하고 철없이 반찬투정만했다ᆞ

다른 친구들은 외식을 하는데 왜 우린 외식 한 번 안 하냐며 보챘다ᆞ그때 내 말을 칼이었을테다ᆞ엄마의 유리 같은 마음을 갈기갈기 긁어댔을테니ᆞ엄마는 매번 같은 옷만 입으셨다ᆞ 낡고 떨어져도 옷을 바느질의 리듬에 맡겨 다시금 입으시는 알뜰한 엄마셨다ᆞ일을 하고 누우실 때면 항상 옷을 엄마 베개 밑에 다 두시고 주무셨다ᆞ일을 하고 오셔서 고단한 엄마를 붙들고 내가 외식하자고 보챌 때마다 그 베개 아래 낡은 옷이 나를 꾸중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그 철없던 시절에는 나의 외식 경험이 더 중요했었나보다ᆞ엄마는 가슴을 눈물로 채우며 속앓이 하시다 결국 숨겨둔 구겨진 돈을 꺼내 들고 내 손을 잡고 이곳 칼국수집에 오신 것이다ᆞ구깃한 돈이 꺼내질 때 엄마의 고생도 줄줄이 따라나왔으리라ᆞ

나는 칼국수 하나만 시키신 엄마를 원망하며 또 엄마의  가슴을 파란 노을로 멍들게 해버렸다ᆞ




그 원망도 잠시, 국물을 한 모금 넘기고는 난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ᆞ 진하디 진한 육수가 얼마나 맛있는지 국물을 마시는 동안 시간이 멈춰있는 우주에 떠있는 듯한 기분이었다ᆞ 마치 다른 사념들은 사라지고 오롯이 미각만이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다ᆞ 입안을 둥글게 감싸는 그 진하디 진한 육수는 내 차갑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다ᆞ 면발을 후루룩 흡입하자 탱글한 면발과 내 혀가 한 덩어리가 된 듯 매우 밀착했다ᆞ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칼국수 한 젓갈과 그 위에 빨간 김치를 턱 하고 한 점 올려 후후하고 불어 후루룩하고 넘긴 후 뜨거운 국물을 그릇째 들고 꿀꺽꿀꺽 마시면 꿀맛이 따로 없었다ᆞ  진한 육수가 식도를 타고 돌 때마다 나는 느꼈다ᆞ맵고 뽀죡했던 나의 외로움이 맛있고 둥그스름한 행복으로 변하는 과정을ᆞ혈관을  타고 도는 따스함을 통째로 느낄 수 있었다ᆞ     




그리고 그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나의 어머니를 모시고 이 곳 칼국수집에 다시 오게 된것이다ᆞ 친구들과 다시 온 적은 있었지만 그 시절 처음으로 이 맛을 보게 해 준 내 어머니를 모시고 온 건 처음이었다ᆞ

다시금 어머니 앞에서 그때 그 시절 아이가 된 나는 그때 그 메뉴를 시켜 놓고는 아이처럼 들떠있었다ᆞ 칼국수가 나오고 제일 먼저 국물을 들이켰다ᆞ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릴 때 어릴 적 기억의 파편들이 퍼즐 맞춰지듯 제자리로 돌아왔다ᆞ  그 후 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ᆞ 그 가난하고 힘들고 외로웠던 내 어린 시절이 국물에 고스란히 녹아있었기 때문일것이다ᆞ 오늘은 칼국수 면발이 처음은 있는데 끝이 없다ᆞ면발은 부녀의 관계처럼 탱탱하다ᆞ




어머니도 칼국수 한 그릇을 뚝딱 비우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ᆞ

"이 칼국수 한 그릇에 우리 추억이 뜨겁게 녹아있는보다ᆞ"

우린 한동안 부둥켜안고 교감을 나누며 한참을 뜻 모를 울음을 울었다ᆞ울음이 공기로 서서히 퍼져나가며 그때 그 시절의 나를 불러왔다ᆞ칼국수집에서 먹은 칼국수 한 그릇이 우리를 추억으로 돌아가게했다ᆞ먹고 나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해맑게 웃고있었다ᆞ우리는 손을 잡고 한참을 거리를  거닐며 부녀간의 데이트를 즐겼다ᆞ

어머니와의 추억을 맛있게 선물해준 칼국수집에게 감사해하며 아쉬움을 뒤로한 채 펜을 놓아본다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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