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Trainer
"잘 지내니? 우리 회사에서 사람 뽑는데 한 번 지원해 보지 않을래? 내일모레 결혼한다고? 아, 그렇구나. 이번엔 좀 그렇겠네... 아쉽.... 어? 지원하겠다고? 진짜? 되겠어? 그래. 그러면 원서는 먼저 보내."
꼭 누구 얘기를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나타난다. 일이 많을 때 일이 더 몰린다. 기회는 예고 없이 닥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혼의 순간, 이직의 기회가 왔다. 우리 업계에서는 누구나 선망하는 최고의 회사다.(P사라고 하겠다.)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트레이너였던 선배님의 전화다. 그 선배님은 P사에서 일하신 지 몇 년 되었다. 내가 MKT 부서에 있다가 교육 부서로 경력을 바꿀 때 조언을 듣고 싶어서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의 인연이 더해져서 나에게 연락을 해 주셨다. 당시는 내가 한 다국적회사의 작은 한국 지사에서 트레이너로 일한 지 2년 정도 되는 때였다. 선배님 전화를 받은 날은 정확히 결혼식 2일 전이었다. 그날 밤늦게까지 이력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그리고 결혼식을 했다.
우리 업계의 commercial 경력은 보통 영업으로 시작해, MKT을 하면서 계속 승진의 사다리를 밟는 경우가 통상적이다. 또는 영업으로 시작해 트레이닝을 하다가, 영업 지점장이나 MKT을 하는 것도 보편적인 길이었다. 어찌 됐든 commercial에서는 MKT이 핵심이다. 가장 바쁘고 힘들지만 승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유리한 경력이다.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업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직과 함께 MKT 부서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1년 정도가 되었을 때, 사내 HR Talent development 프로그램에 선정되어서 중국 북경으로 3달간 파견되었다. 당시 내가 담당하고 있는 제품이 중국에서 상당히 잘 나가고 있었고 그들의 마케팅을 배워오라는 차원에서 선발됐다. 정말로 큰 행운이었다. 젊고 혈기 가득한 싱글인 청년이었기에 호기심과 기대를 한가득 안고 가벼운 마음으로 중국 북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북경에서 보낸 약 100일간의 시간은 나의 인생을 바꾸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
원래 파견이라는 것이 좀 한가해지는 법인가 보다. 초반에는 나에게 이런저런 업무들을 주었다가 내부적으로 어떤 의견차이가 있었는지 내 업무를 많이 줄였다. 한국에 있을 당시, 매일 아침 7시 반부터 11시까지 일하며, 매달 대전, 대구, 광주, 부산을 적어도 한 번씩은 돌아다녀야 했다. 그랬던 나에게 줄어든 업무와, 혼자라는 상황, 짧은 출퇴근 시간은 기대하지 못했던 많은 여유를 주었다. 결론적으로 그 특별했던 여유는 나에게는 좋았고 회사에는 좋지 않았다. 망가졌던 몸과 마음을 챙긴 나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왜 내가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지?"
"삶의 의미가 결국은 뭘까? 이렇게 살면 그 끝은 뭐지?"
"이렇게 해서 성공하면 행복한 걸까?"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뭐지? 나는 어디에서 보람을 느끼지?"
고민 끝에, 마케팅은 나의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다른 일을 찾아보리라. 그렇게 한국에 돌아왔다. 인생은 참 묘하다. 마음이 있으면 길도 열리는 것일까? 회사에서 함께 기도모임을 하던 옆 팀장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트레이너 자리를 추천해 주셨다. 나에게 어울릴 것 같다며. 그렇게 MKT을 그만두고 트레이너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가면 후회한다고. MKT에 있다가 트레이닝이라니, 그런 거꾸로 가는 경력은 이해할 수 없다고. 그리고 가려는 회사도 지금보다 더 작은 회사 아닌가?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너무도 분명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가라고. 세상을 따라가지 말고 내 길을 가라고.
결국 A사에 트레이너로 지원을 했고 이직에 성공했다. A사에서 일한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내 입사에 대한 뒷얘기를 들었다. 가히 극적이었다. 그때 면접관들의 마음에 딱 맞는, 훌륭한 후보자가 있었다고 한다. 모든 면접관들이 그 사람을 뽑기로 결정하고, 좋은 사람 뽑았으니 마지막 면접은 빨리 끝내고 집에 빨리 가자는 기대로 마지막 지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들어갔다.
"왜 트레이닝에 지원하셨어요?"
"하고 싶어서요. 정말 하고 싶어서요."
하고 싶어서 왔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물론 여러 가지 이유와 자격 조건과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갔다. 마지막 질문과 내 대답이 아직도 생생하다.
"트레이닝 경력은 없는데 어떻게 잘할 수 있죠?"
"아 네. 저도 제 인생에 배팅 한 겁니다. 저도 배팅한 거니까 상무님도 배팅하시죠? 못하면 제가 스스로 나가겠습니다. "
내 눈이 너무나 반짝반짝했단다. 하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과 열정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기존의 결정을 뒤집고 A사에서는 나를 선택했다. A사 첫 출근날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유난히 맑고 따뜻했던 날, 지하철역 출구 계단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웠고, 마치 출구 계단 밖은 나를 새로운 인생으로 인도해 줄 것만 같았다. 머리가 맑고 마음이 너무도 가벼웠다. 그렇게 트레이너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인생에는 다 때가 있다. A사는 조직의 규모가 작았고 시스템과 조직 문화도 어려운 점이 많았다. 회사 시스템은 약했지만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A사에서 나는 트레이너로서의 기초를 쌓을 수 있었다. 여러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했는데 이 훈련 기간이 없었다면 P사에도 갈 수 없었다. 더없이 훌륭한 징검다리가 돼 주었다. 전 회사의 마케팅에서 근무할 때의 나는 제법 깐깐하고 거만했다. 그리고 너무 바빴다. 아무리 소개팅을 해도 오래가지 못했고 연애를 하지 못했다. A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지금의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삶에는 소위 대세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보통 대세에 올라타 거기에서 앞서려고 노력한다. 그게 세상이 주는 신호다. 하지만 대세라는 것은 결국 바뀌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신호에 충실했을 때 세상적으로 잘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정작 '나의 삶'은 잃게 될 수도 있다. 나는 어제도 고민했고, 오늘도 고민하고, 내일도 또 고민할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다. 하지만, 나를 여기까지 이끈 나의 선택들을 돌아보며 또 나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두 번의 면접을 거쳐 P사에 합격했다. 정말로 기뻤다. A사에 사표를 냈다. 결혼하자마자 퇴사를 하는 상황에서 별명이 붙었다.
"먹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