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 아빠 힘내요! 1 #일상
아차! 바로 문 앞에서 지하철을 놓쳐 버렸다. 집으로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태산 같은데, 급한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관광객들이 에스칼레이터를 막고 서서 내려오는 바람에 바로 눈앞에서 놓쳐 버렸다. 환승 거리를 가장 줄일 수 있는 칸으로 이동하면서 집에 전화를 건다.
“아빠 어디야? 아빠 늦게 와?”
“응, 지금 열심히 가고 있어. 지하철 소리 들리지? 우리 딸 밥은 먹었어?”
7시쯤 지하철에서 하는 우리의 통화 내용은 거의 같고 늘 ‘빨리 갈게’로 마무리된다. 가끔 영상전화가 오면 아이는 지하철 여기저기를 보여달라고 한다. 아직 지하철을 많이 타보지 않은 5살 아이에게 지하철 광경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다.
아직도 채 회사일이 머리에서 다 떠나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회사 메일을 보며 마무리 짓지 못한 일, 내일 할 일을 살펴본다. 가방에는 늘 자기 계발서 한 권과 영어공부를 위한 책이 있다. 짧은 시간이라도 읽는 게 도움이 된다. 책이 잘 읽히지 않는 날에는 팟 캐스트나 유명 강사의 강의를 유튜브로 듣는다.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다.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다른 대부분의 승객들처럼 나도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한시도… 한시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제법 멀리 이사를 갔다. 초등학생이 이사를 가면 의례 전학을 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통학을 선택했다. 그때부터 지하철로 아홉 정거장 거리를 통학했다. 지하철로 한 30분 남짓한 거리. 만원 지하철을 이겨내야 하는 등굣길은 늘 고됬지만, 하굣길 지하철은 늘 한산했다. 지하철이 지상으로 나오면 창문 밖을 구경했다. 그때는 지하철이 4호선까지 있었는데 노선도가 참 단순해서 모든 역을 외울 수 있는 정도였다. 승객들은 대부분은 신문이나 책을 봤다. 내지는 일행과 대화를 하거나 아니면 그냥 갔다.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지하철로 통학을 하는 어린이에게 말을 거는 어른들이 제법 많았다. 몇 살이니? 어디까지 가니? 어디에 사니? 가방 들어줄까? 지하철에서 아기에게 젖을 먹여도 아무 흠이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4개 노선밖에 되지 않았던 지하철이 늘어나고 늘어나서 이제는 인터넷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원하는 역을 찾기도 어렵다. 그만큼 나의 삶도 내 머리도 많이 복잡해졌다. 잠시라도 남는 시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은 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멍 때리기 대회도 열렸다는데, 난 왜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할까? 회사에서 집까지 지하철에서 1시간. 공부하기에도, 일을 하기에도 좋지만, 바쁘게 일하는 나에게 여유를 주기에도 정말 좋은 시간이다.
책을 가방에 집어넣고 추억이 담긴 노래를 켠다. 그리고 핸드폰은 주머니에 넣는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이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