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삶

나를 위한 삶과 가족을 위한 삶의 균형

by Passion fruit

날씨가 참 좋다. 바다 건너 파란 하늘에 저 빌딩 너머 산 뒤에서부터 높이 솟아오른 하얀 뭉게구름. 그 뭉게구름 사이로 여름의 햇살이 강하게 내리쬔다. 바로 보기에는 눈이 부시지만 햇살이 살갗에 닿는 느낌이 따뜻하고 좋다. 바다를 따라 쭉 뻗은 산책로로 향한다. 여기저기 열명, 스무 명씩 모여 태극권이나 율동을 하는 할머니들이 보인다. 모여서 운동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할머니 들이고 할아버지들은 보통 혼자 하시는 경우가 더 많다. 해변 도로를 건너는 긴 육교를 지나 공원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뛰고 있다. 이곳은 늘 활기차다.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어서 찔끔찔끔 이것저것 해봤지 뭐 하나를 제대로 길게 해 본 적은 없다. 아이들이 생기고부터는 운동하고는 담을 쌓았다. 군대에 있을 때에는 중대 체력장에서 1등을 하기도 했었고, 20대 까지는 또래 중에서도 제법 괜찮은 체력이었는데, 어느새 정말 저질 체력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뛰어본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온몸의 마디마디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홍콩에서는 싱싱한 열대 과일을 비교적 싸게 맛볼 수 있다.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망고, 키위, 오렌지, 화미과(멜론과 참외의 중간 정도 되는 과일이다), 망고스틴, 석가(슈가애플인데 대만산이다) 등등, 한국에 비해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요즘은 망고와 키위가 제철이다. 두리안도 철인데,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아서 사지 않는다. 대신 딸아이가 키위를 정말 좋아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키위는 제스프리인데, 제스프리도 다 같은 제스프리가 아니다. 마트와 시장에서 파는 게 다르다. 시장에서 파는 키위가 훨씬 크고 달고 싸고 맛있다. 단, 시장에서는 그날그날 아침에 물건을 들여오고 좋은 물건은 대부분 오전에 다 팔리기 때문에 되도록 오전에 가는 것이 좋다. 며칠 전 사온 키위는 크기도 크고 상태가 정말 좋았다.


딸을 위해 냉장고에 떨어지지 않게 키위를 채워놓는다. 처음에는 반으로 잘라 티스푼과 같이 줬지만, 요즘은 더 먹기 편하라고 껍질을 다 까고 먹기 좋게 잘라준다.


"아빠, 이번 키위 정말 맛있다."


큰 키위 한두 개 정도는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 맛있는 음식은 늘 아이들 먼저 주는 것이 습관이 됐다. 가장 좋은 음식은 아이들과 아내에게 먼저 준다. 아이들이 다 먹고 남으면 나도 먹는다. 아이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이게 어느새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정작 그 맛있는 키위를 나는 많이 먹어보지 못했다. 나의 이런 행동들은 아마도 부모님에게서부터 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나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나의 어머니 아버지는 충분히 그렇게 하셨을 분들이시다.

"아빠, 나 키위 줘."


아침부터 키위를 달라는 딸. 오늘은 키위를 두 개를 잘랐다. 하나는 아이 것, 하나는 내 것. 나도 큰 키위 조각을 입에 넣어본다. 상큼함과 달콤함이 입안 가득 과즙과 함께 터진다.


"아, 이번 키위 정말 맛있네."


아, 이 키위, 한 개 얼마나 한다고 애들만 줬었을까?




"오빠, 내일은 혼자 오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


아내와 연애하던 때에 아내의 말을 듣고 적잖이 당황해했었다. '뭘 하지?'라는 생각에 막막해졌다. 사실 이 질문은 젊은 시절부터 나를 괴롭혀 왔다. 특별히 나만을 위해서 시간을 쓴 적이 없었다. 학생 때에는 할 것을 했고, 연애할 때에는 아내와, 결혼 후에는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았다. 사실 100퍼센트 그렇게 산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고 살고 있다. 그런 삶의 양식이 과일 하나를 먹는 데에도 배어 있었다.


망고도 제일 맛있는 부분은 가족을 위해 주고, 고기도 제일 좋은 부위는 아이들에게 먼저 준다. 아이들은 3년째 수영 강습을 듣고 있지만, 나는 유튜브를 보며 연습을 했다. 최근에는 배드민턴도, 권투도 재정에 대한 염려도 다 끊었다. 산을 좋아하긴 하지만, 솔직히 산은 돈이 들지 않기 때문에 더 산을 찾게 되는 이유도 있었다. 이게 잘 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어느 정도는 이렇게 살고 있을 거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이게 삶의 작은 부분 부분에서도 너무 배어있어 정적 나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이 문제다. 스스로 즐기는 법을 모른다.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을 해 본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부모가 되면, 나처럼 살기를 바라는가?"


1초도 고민되지 않는다. 답은 '아니다'이다. 나의 아이들은 자기를 위한 시간을 쓸 줄도 알고, 스스로 즐기고 누리는 법을 알기를 원한다. 맛있는 과일이 있으면 아이들과 같이 나눠 먹고, 아이들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쓰는 만큼 스스로를 위해서도 돈과 시간을 쓰기 원한다.


"여보, 나 이제부터 키위 더 먹을래."


아내는 진작 그러지 그랬냐며 따뜻한 핀잔을 준다. 그리고 수영 개인 강습을 듣기로 했다. 나도 나에게 투자해서 수영 배워보련다. 아이들에게 아빠도 아빠를 위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보여주기로 마음먹는다. 나를 위한 삶과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한 삶에도 균형이 필요함을 새삼 깨닫는다. 나는 너무도 가족으로 치우쳐져 있기 때문에, 나를 위한 쪽으로 많이 애쓰면 된다.


"얘들아, 학교 잘 갔다 와. 아빠는 뛰러 나간다!"

"아빠 잘 갔다 와."


활기찬 아침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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