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

by Passion fruit

"비리리리리릭, 비리리리릭"


초인종 배터리가 거의 달았다. 원래도 좋지 않던 초인종 소리가 늘어지며 기괴한 소리를 낸다. 아이들이 북클럽에 다녀올 시간이다. 문을 열었다. 평소 같으면 팔을 활짝 벌리며 안아주는데, 오늘은 아이들이 더 빨랐다. 문이 열리자마자 미끄러져 들어오며 큰 아이는 오른쪽 다리를, 작은 아이는 왼쪽 다리를 붙들고 앉았다.


"아빠아~~~ 한국 가지 말자. 홍콩에 있고 싶어. 한국 가지 말자아~~~~, 진짜 한국 가야 해? 홍콩에 있자."


그냥 서 있었다. 뭐라 할 말도 없고,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내.


"응. 아빠도 홍콩에 있고 싶어."

"나 여기에서 계속 학교 가고 싶어. 홍콩에 있으면 안 돼?"


홍콩도 한국도 상관없다던 큰 아이는 눈물을 보인다. 눈이 벌겋다. 아내는 내가 더 속상할까 봐 살피는 눈치다.


2025년 오늘.



"엄마, 아빠 나 이제 캠프는 안 가면 안 돼? 다음 학기에 베이징도 가기 싫어."


지난가을, 3박 4일 캠프를 다녀온 딸아이가 간절하게 호소한다. 캠프에서 새로운 경험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도 잘해 냈지만, 그만큼 고생을 많이 했다.


"아침엔 너무 맛없는 죽 같은 게 나왔어. 그래도 살려면 먹어야지. 텐트에서는 거의 자지 못했어. 우는 아이들도 있었고, 떠드는 아이들도 있어고. 화장실을 꼭 두 명 이상이 가라고 했는데 친구가 새벽에 계속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3번이나 같이 갔어."


조심성이 많지만 또 야무진 아이다. 아마도 불편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꾹 참으며 다 잘 해냈을 거고, 집에 오니 참았던 마음이 툭 터진 것 같다. 웬만하면 투정이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내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트라우마처럼 남은 것 같다. 점점 커가면서 부모로부터 떨어지게 마련인데 더 껌딱지가 되어가려고 한다.


"그래, 베이징은 가지 말자."


얼굴이 활짝 핀다.


2024년 어느 가을날.



"새 학교는 어때?"


새 학교에 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큰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 친구가 생겼어. 나랑 생일이 2일밖에 차이가 안나."


딸아이는 이내 그 친구와 베프가 됐다. 홍콩 아이인데 중국어는 잘하지 못한다. 아주 밝고 예의 바른 아이다. 이 친구 덕분에 제법 무심한 딸아이가 많이 밝아졌다. 베프는 항상 딸아이의 치킨 너겟을 뺏어 먹는다. 그래서 치킨 너겟을 싸 줄 때는 넉넉하게 싸 준다. 아이의 부모님들도 재미있고 또 참 좋은 분들이시다. 곧 모든 식구가 친해졌고 자주 왕래하곤 한다. 계속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은 딸의 친구고 가족이다.


2023년 새 학교에서.




"둘째 것도 사야 할까?"


첫째가 면접을 먼저 봤다. 합격을 해 놓은 상태였고, 둘째는 면접 일정만 잡힌 상태였다. 첫째 교복을 사러 갔다. 둘째 교복을 살지 말지 아내가 물었다.


"응, 사자. 당연히 합격하겠지. 여기 언제 다시와. 미리 사놓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여름 겨울 교복과 체육복, 외투, 모자, 구두까지 두 아이들의 모든 입학준비를 했다. 아이들도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모른다.


...


"조금 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면접으로 확실히 답변드릴 수가 없네요."


둘째 아이 면접을 본 날, 면접 결과를 들으며 적잖이 당황했다. 바짝바짝 속이 탔다. 무엇보다 첫째와 둘째의 학교가 달라지면 모든 일정을 맞추기가 정말 힘들어지는데, 보통일이 아니다.


"아이가 집중을 잘 못합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명상. 둘째 아이를 붙들고 되지도 않는 명상을 했다.


'마음을 가라앉혀라, 그러면 붙는다.'


두 번째 참여수업을 하고, 학년 부장 선생님께 가정에서의 지속적인 지원을 절절히 약속한 후에야,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둘째도 합격을 했다.


2023년 학교 옮기던 때.




처음 홍콩에 왔을 때는 아직 코로나로 대면 활동이 상당히 제한되던 때였다. 외국으로,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직책을 담당하니 적응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홍콩의 문화도 달랐지만 이곳 조직문화도 쉽지 않았다. 사는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집을 구하고, 인터넷을 깔고, 가구를 사고, 유치원을 정하고...... 멘털이 심하게 흔들렸다.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집에서는 가급적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근무를 마치고 집에 오면 밝게 웃는 아이들이 위로가 됐다.


"OO아, 학교 재미있어?"


내 마음은 너무나 어두웠지만, 티 내지 않고 딸아이에게 묻는다.


"응 아빠, 정말 재미있어."


'그래? 네가 좋다면 아빠가 다 견딜게. 정말 다 견딜게. 걱정 마.'


2022년 어느 날.


그리고 오늘.


"아빠가, 너희들 하고 싶은 거를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를 위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