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진면목이 드러난다.
"위기가 기회다"
정말로 자주 듣는 말이다. 이 말이 널리 알려진 건, 그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말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기로 인해 안 좋게 마무리된 사람들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삶에서 위기가 없을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위기는 있고 언제 어떻게 겪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위기도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오듯이, 그 결말이 좋을지 안 좋을 지도 사실 알 수 없다.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도 정말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위기가 주는 유익이 분명히 있다. 이 유익을 경험한 사람과 아닌 사람은 그 이후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다를 것이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상황이 좋을 때는 다 좋다. 마음이 편하고 자신감이 있다 보니 말과 행동에도 크게 거칠게 없고, 주변의 시선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동료들과의 관계도 다 좋다. 개인뿐 아니라 조직도 그렇다. 매출이 좋으면 잠재적 문제들을 간과하기 쉽고 모든 게 용서되는 분위기로 흐르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는 위기에서 드러난다.
위기를 겪게 되면 관계가 드러난다.
퇴사한 것이 알려지고 지인들로부터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왔다. 위로의 말, 힘을 북돋워주는 말들, 또 여기저기 연결해 주려는 연락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연락해 주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그런 중에서도 한 후배는 일이 있을 때에도 없을 때에도 계속 안부 전화를 주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한 고등학교 동창과는 우연히 퇴직의 경험을 함께하게 되며 더 자주 연락을 하게 되었다. 늘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준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그동안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는 내 주변인들과 지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대했는가, 친절했는가.
꽤 오래전 한 화가 선생님과 우연히 대화를 하게 된 적이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결혼을 했는지 얘기해 주셨었다. 핵심은 자신이 경제적 상황도 좋지 않고 건강도 가장 좋지 않던 때에 청혼을 했는데, 그 이유는 자기가 가장 안 좋은 상황에서 하는 청혼을 받아주는 여자는 끝까지 자기와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단다. 평범하지는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혜이기도 하다.
배우자와의 관계도 위기상황에서 더 잘 드러난다. 상황에 관계없이 나를 계속 지지해 주는 배우자가 있는 것은 정말로 정말로 큰 복이다. 때때로 젊은 청년들과 결혼에 대해서 얘기할 때면, 현재 상황과 배경을 너무 따지기보다는 어려운 상황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고 조언해주곤 했다. 배경과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고 인생에서 위기는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실직의 위기에서 나를 향한 아내의 태도와 지지에 깊은 감사함과 존경심을 느낀다. 연애할 때는 줄곧 아내에게 "오빠 믿지?"를 내가 묻곤 했었는데, 요즘은 보이는 아내의 모든 행동은 나에게 "오빠 믿어"라고 줄곧 말해주는 것 같다.
이런 아내의 지지 가운데에서 아이들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을 점점 찾아가고 있다. 이곳 친구들을 떠나 이제는 제법 낯설어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큰 아쉬움과 거부감이 있었지만 아이들도 이제 받아들이고 마음의 준비를 해 나가고 있다. 며칠 전 어린 아들의 기도에 깊은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집과 학교, 친구들, 아빠의 직장도 하나님께서 다 잘 준비해 주세요."
내가 잘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가정의 평화는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조직 문화도 위기에서 더 잘 드러나는 법이다.
특히 상업부서와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 실적이 좋으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암묵적 규칙을 많이 경험하곤 했다. 정말로 실적이 좋을 때에는 서로를 다 칭찬하고 넉넉한 보너스를 즐기며 또 작은 실수나 오점들은 그냥 넘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적이 좋지 않은 위기의 순간에는 책임을 돌리고 서로 공격하거나 필요 이상을 방어하는 경우도 종종 보곤 했다. 이런 조직은 본질적으로 팀워크나 건강한 조직 문화가 그냥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올바른 리더는 흔들리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을 애써 포장하지는 않지만 항상 긍정적인 미래를 바라보고 견뎌나간다. 직원들과 단합해서 전략적 방향성을 잃지 않고 더 고민하고 더 뛰고 꾸준히 활동해 나가며 결국은 상황을 이겨낸다. 어려울 때 보이는 모습이 진정한 리더십이고, 진정한 팀워크이다.
코로나 시기에 대한민국 교회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모여서 예배드리지 못하게 되자 많은 성도들이 이탈했다. 더 웃지 못할 상황들은, 성도의 이탈을 염려한 일부 교회들이 국가의 가이드를 어기고 대면 예배를 강행하거나 ARS헌금 시스템을 도입하는 모습이었다. 코로나는 분명 위기였지만, 너무나 긍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 위기가 진짜 성도와 가짜 성도를 드러냈고, 참 목자와 삯꾼 목자를 드러냈다.
개인적인 신앙도 위기 때 그 본질이 드러나는 법이다. 상황이 좋았을 때 헌금하고 봉사하며 "진실로 믿습니다."라고 말하기가 얼마나 쉬웠던지 새삼 깨닫는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끌어내셨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하기 시작한다.
"광야에는 물이 없다. 우리를 죽이려고 하시는가?"
"노예로 지내던 이집트가 더 나았다. 그때는 향신료와 고기를 배불리 먹지 않았던가?"
"이집트에는 무덤이 없어서 우리를 죽이려고 광야로 인도하셨나?"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주겠노라고 약속하셨다. 광야를 지나면 곧 약속된 땅이 주어진다. 그래서 광야를 지나가야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불평과 불순종으로 짧게 끝날 수 있었던 광야에서의 훈련을 40년이나 받고 나서야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내가 다 돌보겠다. 그래서 정말로 믿는다면 염려하거나 불안해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이게 쉽지가 않다. 지금이 시험이고 훈련의 때다.
위기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 피하기보다는 머무르고 더 깊이 들어가 보자. 그 바닥의 끝에 닿았을 때 새로운 시작이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