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맑음

사랑과 응원이 힘을 내게 한다.

by Passion fruit

“너는 진짜 복 받은 거야.”


오랜만에 형과 식사를 했다.

집을 보기 위해 정말 갑작스럽게 서울로 왔다. 형에게 갑자기 연락했지만 흔쾌히 개인 운동을 포기하고 서울역 노포 맛집을 소개해 줬다. 오랜만에 나누는 대화. 어느덧 반평생을 살아온 형제들의 대화에는 갖가지 인생의 쓴맛들을 식욕을 돋운다.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홍콩 정리는 차곡차곡 되어가고, 한국에 살 집을 아직 구하지 못했다. 장모님께서 여기저기 부동산에 연락해 주시고 수소문해 주시며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전세는 매물이 많지도 않거니와 가격도 만만치 않다. 어머님 연락으로 집을 보기 위해 당일 티켓을 끊고 급하게 한국으로 왔다.


첫날 집 몇 개를 보고 난 후, 카페에서 장모님께 그간의 일들을 말씀드렸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 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는지 등등. 장모님은 사정을 들으시고는 말씀하셨다.


“맘고생이 많았겠네…. 나는 그런 일이 있는 줄 전혀 몰랐네.”


가슴이 뭉클했다.

어떤 질문을 하실까, 어떻게 답변을 드릴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질문보다 걱정이 먼저셨다. 장모님은 인품이 참 좋으시다. 힘들게 시장에서 일하시며 자식들을 키워내셨으면서도, 여기저기 친척분들과 주변분들 돕기를 주저 않으셨다. 그 덕을 딸과 사위인 우리 부부가 받는 경우가 많았다. 어디를 가서 친척분들이나 지인 분들을 만나도 항상 환대받곤 했다. 아내도 어머님의 인품을 닮아서 그런지 별로 싫은 소리를 안 한다. 형도 이런 내 아내 성격도 알고, 처가댁 상황도 안다. 반면, 형은 처가 상황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장인어른은 일찍 돌아가셨고, 장모님이 건강 문제로 오래 고생하셨다. 처제들도 다치고 병이든 경우가 많아, 집이 가깝고 또 힘 있는 사위가 여러모로 발품 팔고 도와드리면서 많이 고생했다.


나도 처가 상황을 알아서 아내를 사랑한 것도 아니고, 형도 힘든 처가상황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와 이별한 것도 아니다. 사랑하게 된 여자와 가정을 이뤘고 주어진 상황을 각자 짊어지고 산 것뿐이다. 인생이란 게 이렇다.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 어느덧 시간은 늦어졌다. 담배를 한 개비 든 형. 담배연기 너머 저 쪽으로 시위대가 지나간다.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깃발도 보인다. 시끌벅적 꽤 긴 행렬을 바라보다 형이 말한다.


“걱정 마라. 다 살길 있다.”


우린 가정형편이 정말로 어려웠었다. 생존이 급급했기에 부모의 돌봄은 기대할 수 없었고, 가장 어린 나는 6살 때부터 혼자 있었고, 8살 때부터 밥하고 설거지를 했다. 형제 중 막내인 내가 공부를 곧 잘했다. 당시에도 치마바람은 있었지만,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나는 항상 반장만 했고 부모님은 그게 자랑이셨다. 형들은 공부를 잘하지 못했고, 그래서 부모님은 나를 더 이뻐하셨다. 나도 느낄 정도니, 형들은 오죽했으랴. 그 차별 대우는 형제들에서 며느리로도 은근하게 옮겨갔다. 어머니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하시는 것 같지만, 내가 봐도 어머니가 며느리들을 대하는 방식이 좀 달랐다.


“형, 우리 부모님이 차별이 있으셨잖아.”

“알지 알아. 지금도 그렇다 뭐.”

“응. 그런데 형, 또 어머니의 그 강한 성격 아니었으면, 우리 이렇게도 못 살았을 거야.”


앞뒤가 안 맞는 말 갖지만, 삶을 공유한 형제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한다. 조카들이 보고 싶은 형은, 한국에 오면 빨리 한번 만나자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형제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다음날, 부동산과 집 6개를 보기로 약속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하는 일정이었다. 아침 일찍 처가댁으로 갔다. 장모님은 일이 있어 아침 일찍부터 어디를 가셨다. 기다리는 동안 장인어른과 차 한잔 했다. 장인어른에게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장인어른께서 나에게 지금 직장 상황, 앞으로의 계획 등 하나도 묻지 않으셨다. 속으로는 엄청 궁금하셨을 텐데, 한 마디도 묻지 않으셨다.


장인어른 차를 빌려, 장모님을 모시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돌고 돌다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났다. 그리고 주저 없이 바로 계약했다. 다행히도 집주인이 근처에 있어 바로 계약을 마칠 수 있었다. 집이 해결되다니, 마음이 시원하다. 이제 한국으로 오는 길, 성큼 큰 걸음을 내디뎠다.


결국 힘이 나게 하는 건, 사랑과 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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