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을 뒤로하며

감사한 일들만 남았습니다.

by Passion fruit

국제이사는 쉽지 않다. 한국에서 홍콩 올 때는 회사에서 업체들을 다 붙여줬었다. 그래도 쉽지 않았던 것은 한국 세금 관련회사, 홍콩 세금 관련 회사, 국제 이사 회사, 홍콩의 부동산 에이전시, 비자 대행사, 여행사, 언어 교육 회사 등을 다 따로 연락해야 했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회사에서 도와주는 것은 없기에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했다.


홍콩에서 나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파트 계약 중도 해지다. 일반적으로 1+1 계약을 한다. 첫 1년은 무조건 사는 기간, 다음 1년은 상황에 따라 집주인도 세입자도 미리만 알려주면 이사 갈 수 있는 기간이다. 다만 집주인은 첫 1년 후에 집세를 올릴 수 있다. 나의 경우 2년 고정 계약을 하는 대신 월세를 할인받았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2년간 공실이 생기지 않으니 이득이다. 그런데 홍콩을 떠나게 되어 계약 기간의 다 이행하지 못했다. 이런 경우 보증금 -통상 월세 2달치인데 홍콩의 월세를 생각하면 큰 금액이다- 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집주인 마음이다. 이사 두 달을 앞두고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집주인은 우리가 떠날 때까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면 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이 정도면 정말 좋은 주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정말로 운 좋게 우리가 떠나는 다음날 입주 하겠다는 홍콩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계약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놓고 가는 가전과 가구들의 일부를 새로운 세입자에게 중고로 매매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돈 옮기는 일이다. 그동안 홍콩에서 모았던 돈을 한국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사람들마다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좋은 환율로 국제 송금만 하는 어플도 제법 있다. 나는 최대한 현금으로 들고 오는 방법을 택했다. 홍콩은 어른 미성년자 상관없이 1인당 120,000 HKD를 소지하고 나올 수 있다. 제법 큰 금액이어서 안전한 방법은 아니다. 홍콩 은행에서 출금할 때마다 왜 출금하냐며 계속 묻는다. 솔직하게 얘기했다.


"한국에 가는데 현금으로 가져가서 환전하는 것이 환율이 가장 좋아요."


그렇게 가져온 현금은 명동 환전소에서 환전했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은행에 비해 1달러에 1.0~5.0원 정도 더 좋은 환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 보통 환전소에서 환전하고 나면 바로 근처 은행에 가서 입금을 한다. 나머지는 안전하게 은행 간 이체를 했다.


국제 이사에서 성가신 것 중 하나가 전기, 수도, 가스 그리고 핸드폰과 인터넷 통신이다. 그래도 홍콩 전기나 수도는 서류만 제출하면 바로바로 처리해 준다. 어려운 게 없다. 다만 통신은 다르다. 보통 2년 약정으로 계약하는데, 중도 계약 해지 시, 앞으로 남아 있는 계약 기간에 물어야 할 비용을 한 번에 물어야 한다. 인터넷은 3개월이 남아서 그렇게 지불했고, 핸드폰은 아이 것, 아내 것 그리고 내 것까지 3개의 계정에 대해 위약금을 물으려니 비용이 너무 크다. 정말 운 좋게도 통신사의 한 직원이 영구적으로 홍콩을 떠나는 경우 위약금을 면제해 줄수도 있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고객센터에 연락하고 사정을 얘기하고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3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지만 결과적으로 아내와 아이 계정은 위약금 없이 취소해 주었고, 나에게는 월 48 HKD의 1년 상품으로 새로운 계약을 해 주었다. 그 편이 나에게도 훨씬 이득이었다.


음식처리가 또 큰 일중에 하나다. 한국에서 나올 때에야 부모님이나 형제에게 고추장, 된장 같은 먹던 음식도 넘기고 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홍콩에서 나갈 때에는 그게 되지 않는다. 최대한 비워보고자 냉파를 시작한 지 한 달. 냉장고는 휑해서 밥 지어먹으려니 뭐가 없고, 나가서 먹자니 냉장고 음식이 비워지지 않는 딜레마에 빠진다. 최대한 드릴 수 있는 것들은 주위분들께 드리고,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이 버렸다. 정말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정신이 없다. 거의 매일 저녁 외식을 한다. 홍콩 직장 동료들, 그리고 교회 분들께 인사를 드렸다. 짐을 정리하고 중고 가구를 내놓고, 출국 전 머물 호텔을 예약하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른 아침부터 장대비가 내렸다. Black rain. 가장 높은 수준의 호우 경보다. 아침 일찍 아이들을 지인 분 집에 보내기로 했다. 처리하지 못했던 약 30마리의 구피와 어항을 지인분께서 받아주시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물고기를 옮겼다. 커다란 지퍼백을 플라스틱 통에 넣고 옮기는데 물이 자꾸 플라스틱 통에 찬다. 지퍼백을 들었더니 구멍이 나있다. 시간이 없다. 서둘러 새 지퍼백에 물과 물고기를 옮기고, 다시 통에 넣고, 어항을 두어 번 헹구고, 산소기와 자동 급식기를 챙겼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 비 때문에 택시비가 2.5배가 올랐다. 비가 줄어들까 하여 30분을 기다리다가 포기, 택시를 불렀는데 취소당하고, 다시 연결해서 오는데 또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결국 1시간 만에 아침도 못 먹은 채 아이들을 보냈다. 그 사이 이삿짐 차가 들어왔고 이사 작업이 시작됐다. 나는 마지막으로 인터넷 모뎀기기를 반납하러 통신사에 갔다. 한 달 전에 연락했었더라면 시간 맞춰서 기사가 왔을 텐데, 늦게 연락한 탓에 직접 반납하러 갔다. Black rain을 뚫고.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비 온다고 통신사 고객센터가 문을 열지 않았다. 오늘 반납 못하면 영영 반납 못하는데......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전 회사 동료에게 연락했다. 동료는 재택근무 중인데, 기기를 회사에 맡겨놓으면 다른 날 본인이 반납하겠다고 했다. 그간의 관계를 생각하면 서로 그 정도는 당연히 해 줄 수 있는 관계이지만 서도 정말 가는 날까지 친절하게 대해주는 동료가 눈물 나게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왔고, 곧 이삿짐이 마무리되었다. 비 때문에 예상보다 1시간 정도 늦게 끝났다. 이제 30분 뒤면 부동산 업자와 집주인이 온다. 집 상태를 점검하고, 약속한 가전기기와 가구를 넘기고, 키를 넘겨야 한다. 그리고 보증금을 받아야 한다.


이사업체가 끝내고 간 자리는 먼지 투성이다. 소파 밑에 있었던 먼지들, 책상과 침대 밑에 떨어져 있던 장난감, 나사들 까지 엉망이다. 업체가 청소까지 하지는 않는다. 이제 30분 남았는데 이 상태로 넘길 수는 없었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걸레를 들고 방을 휩쓴다. 에어컨을 켰음에도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렇게 아내와 애써 20분 만에 구색을 갖추고 커다란 쓰레기봉투 하나를 밖에 내놓았다. 마침 아파트 청소부를 만났다. 지난 며칠간 너무 많은 쓰레기를 내놓았던 미안함과 고마움에 팁을 주었다. 아, 이제 10분 남았다. 마무리만 지으면 된다. 무심코 전자레인지를 열어봤다.


"어, 이게 뭐야. 옥수수잖아!"


아, 아침으로 먹으려고 돌려두었던 옥수수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옥수수는 버리면 되지만 접시는?


"오빠, 그거 내가 아끼는 접시야. 가져가. 가져갈 거야."


불안한 마음에 서랍들을 다시 확인한다. 두둥~~! 건조기에서 빨래들이 나왔다.


"이런, 이거 어제 말려놓은 건데.... 어떻게 하겠어. 짐에 다 실어!!!"


그렇게 접시 한 게, 마지막 빨래들을 케리어에 쑤셔 넣었다.


부동산 매니저와 집주인 측이 왔다. 우리가 입주하기 전과 똑같은, 사실은 더 나아진 집 상태를 보고 정말 좋아했다. 창문에는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도 달았고, 주방 어두운 곳엔 등을 달았고, 커튼도 정말 깨끗하게 남겨주었다. 홍콩 집주인들은 한국 사람들을 좋아한다. 아파트를 깨끗하게 쓰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자기 집도 아닌데 고쳐 쓴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을 좋아하고 또 세입자들도 한국사람들이 살았던 집을 좋아하는 편이다. 에어컨 리모컨 4개, 현관문 열쇠 4개, 아파트 키 4개, 우편함 키 1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넘기고, 보증금은 주중에 입금받기로 약속을 받고 집을 나왔다. 2년 가까이 편하고 아늑하게 살았던 집인데 작별의 정은 나눌 새도 없이 캐리어 5개를 아내와 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대형 택시를 불러 바로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은 홍콩공항이 가까운 동청에 잡았다. 짐을 놓고 다시 아이들을 데리러 한 시간 정도 전철을 타고 갔다. 아내와 나는 거의 녹초가 되어있다. 지인 분의 집에서 마지막 따뜻한 저녁을 먹고, 마지막 야경을 담고자 홍함 바닷길을 걸었다. 지인분도 너무나 안타까워하시고, 아이들도 아쉬워했다. 캐리호텔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몰려있다. 토트넘 팀이 온 날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손흥민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서 있었다. 인파를 뚫고 택시를 불러 아이들과 호텔로 왔다.


그렇게 홍콩에서의 마지막 밤을 호텔에서 보냈다. 다음날 체크아웃을 하고, 짐은 맡겨놓은 채로 Citygate outlet에서 마지막 쇼핑을 즐긴다. 처음 3시간 까지는 즐겼지만 그 이후는 너무 힘들다. 홍콩 쇼핑몰에는 앉은 곳이 별로 없다. 아이들도 지치고 아내와 나도 지친다.


아직 인사를 못한 교회 분들과 마지막 저녁약속이 남았다. Citygate 굽네치킨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감사하게도 남은 2시간을 집으로 초대받아 편하게 쉬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도 교회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 집사님과 전도사님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줄을 대신 서 주셨고, 목사님 내외분이 공항까지 배웅을 나오셨다. 시간은 밤 10시. 모든 수속을 마치고 공항 카페에서 홍콩식 팥라테를 마시며 11시까지 대화를 나누다 드디어 출국장으로 들어간다. 마지막까지 뜨거운 배웅을 받으며 포옹하고 헤어졌다.




위의 모든 일들이 출국 전 2주 동안 있었던 일이다. 운이 좋았고, 타이밍이 잘 맞았고, 잃어버린 돈도 짐도 없고, 무사히 잘 돌아왔다. 정말로 많은 분들께 너무나 큰 사랑을 받고 뜨거운 환송을 받고 돌아왔다. 모든 일이 운 같지만 이건 분명한 하나님의 돌보심이다. 물론 믿기에 따라 다르다. 지난 3개월 동안 직장을 잃고, 직장을 찾아보고, 귀국을 결정하고 하는 모든 과정 가운데에서 내가 경험한 것은 내버려 두지 않는 돌보심이다.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라고 말씀하신 돌보심을 삶에서 경험한다. 홍콩에서 보낸 지난 4년을 돌이켜 보면 모두 감사한 일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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